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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마리아 Jul 23. 2024

점순 할머니

점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97세. 지금은 90세 장수가 당연하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아니 코로나 전만 해도 90세를 넘기면 장수한다고 여겼던 때였으니 97세는 초고령 장수였다. 점순 할머니의 임종은 온 시내에 알려졌다.  방송에서 할머니의 죽음을 보도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97세가 될 때까지 건강하셨다. 95세가 넘어가면서 무릎 관절이 안 좋아서 걷는 것이 불편한 외에는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었다. 타고난 건강이었고 건강한 생활 습관 덕이었다.


할머니는 땅끝 해남에서 18세 꽃다운 나이에 한 살 연상의 남편과 혼인하였다. 3남 3녀의 자식을 두고 부농의 안주인이 되었다. 상주하는 머슴 일군들과 시시로 부리는 놉 일군들을  대고, 일을 시키고 먹이고, 품삯을 계산하고, 수확하여 내는 일까지 척척해 내어 여자 대장부라 불리었다.


그렇다고 할머니가 억척스럽거나 거친 것은 아니었다. 조그맣고 단아한 풍채에 조용하고 수줍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식구들 외의 외간 남자, 사위들에게까지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말도 직접 하지 못할 만큼 부끄러움을 타셨다.


장성한 자식들은 공부를 위해 모두 도시로 떠났다. 도시에서 공부를 마친 자녀들은 직장을 잡아 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시골에는 공무원 생활을 계속하시는 할아버지와 그동안 지어오던 농사를 계속 짓는 할머니만 남았다. 농사가 힘에 부쳤지만 철 따라 도시에 사는 자식들에게 보내재미로 힘든 것도 모르고 열심히 수확을 기다렸다.


할아버지는 정년이 되어  공무원 생활을 마치셨다.  연세가 많아진 할머니도 농사일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을 느끼게 되셨다. 도시에 사는 자식들은 시골 살림을 모두 정리하고 도시로 나오시라고 성화를 대었다. 그럴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한 할머니 부부는 시골 살림을 정리하고 도시로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시골의 땅과 살림들을 처분하면서 도시에 집을 마련하고 이사 갈 준비를 하였다.


그렇게 도시와 시골을  오가면서 이사 준비를 거의 끝내갈 무렵 할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하여 세상을 떠나셨다. 갑작스럽게 할머니 혼자 남게 된 상황이 되어버렸다. 경황없이 장례를 치르고 이미 처분해 버린 시골집에 남을 수도 없게 되자 할머니는 큰아들네와 림을 합하여 함께 살기로 하셨다.


조용하셨지만 활동적이셨던 할머니는 도시 생활에 적응이 빠르셨다. 시골에서 하던 일 대신 매일 경로당과 경로대학과 교회에 나가는 것으로 낙을 삼으셨다. 늦게야 알게 된 배움에의 열정이 솟구쳐 오르셨다. 날마다 배우는 찾아다니셨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셨다.


그날도 아침에 큰아들이 경로당에 모셔다 드리고 출근하였다. 12시 반에 나오는 점심도 맛있게 드셨다. 그런데, 점심을 드시고 조금 있다가 속이 불편하다고 하셨다. 먹은 것이 나올까 봐 휴지통을 부여잡았지만 나오지 않았다. 경로당에서는 할머니를 병원으로 옮기도록 아들에게 연락하였다. 급차를 부르고 회의 중에 급하게 나온 아들이 병원으로 옮겼다. 구급차 안에서 아들은 할머니에게 자꾸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대답하던 할머니가 어느 때부터 대답이 없었다. 병원 응급실에서는 검사나 치료보다 할머니를 지켜보는 것이 낫겠다고 이야기하였다.

그 사이에 자식들이 달려왔다. 근처에 있던 딸이 제일 먼저 달려왔다. 딸은 어머니에게 돌아가실 것 같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딸은 할머니 귀에 대고 아무 걱정 말고 편히 천국으로 가시라고 말하였다. 자식들 잘 키워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들으며 할머니는 눈을 감았다.


점심을 드시고 1시간이 못 되어 일어난 일이었다. 병원에서는 이렇게 깨끗하게 돌아가신 분은 처음이라고 감탄하였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얼굴이 더할 수 없이 평안하고 예뻤다. 할머니를 지켜보던 의료진이나 주변 사람들도 모두 이런 죽음 복을 타신 분은 처음이라고 감탄하면서 할머니의 생전의 삶이 평안하고 평탄하셨던 것 같다고 말하였다.


할머니는 생전에 저녁마다 잠자리에 들면서 이렇게 기도하셨다고 한다. 잠자듯이 가게 해 주시라고. 잠자다가 깨어보면 천국이게 해 주시라고. 돌아가시던 날, 할머니는 자신의 마지막을 아신 것처럼 방안 청소를 깨끗하게 하셨다. 방안에 들여놓았던 요강을 화장실로 가지고 가서 깨끗하게 닦고 화장실 청소를 하였다. 무릎걸음으로 다니면서 방걸레질을 하고 경로당으로 가셨다고 한다.

병원 사람들에 의해 할머니의 아름답고 평안한  죽음이 알려지면서 지역 방송에서까지 복되고 순탄하게 삶을 마무리하신 점순 할머니의 마지막아름다운 임종이었다고 보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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