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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한알 Oct 21. 2024

나만의 도서관 이름 짓기

서대문구 도서관

 "오늘 디저트는 뭘로 할까? 쿠키? 크림빵? 와플?"

"나는 와플 먹으러 갈래"  "나도!"

"와플 당첨!"

오늘의 행선지는 집 근처 주민센터 안 작은 북카페다. 와플이 먹고 싶을 땐, 와플맛집인 북카페로 간다. 아이들을 맞아주시는 카페 사장님의 박꽃같이 환한 미소와 함께 갓 구워낸 따뜻한 와플을 한 입 베어 물면 마음을 따뜻해지곤 했다. 북카페 마련된 작은 스낵바에서 구워 파는 1,000원짜리 와플이 얼마나 맛있는지, 6세 큰 아이가 한 입을 베어 물고 흡족한 얼굴로 "여기는 이제 와플도서관이에요"라고 했다. 그날로 우리는 수시로 와플도서관에 갔다. 평소에 단 간식을 많이 사주지 않는 터라 와플도서관에 가서 먹는 와플은 별미가 되었다. 와플 도서관은 집에서 가까워 언제든 갈 수 있어 아이들 손잡고 가기  인 곳이었다.


 6, 3, 2세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북카페를 몇 달 동안 다니다 보니, 근처 걸어서 갈 수 있는 다른 도서관들도 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유모차를 밀며 도서관기행을 시작했다. 북카페에서 큰 길가로 200미터 더 내려가면 구립도서관이 있었다. 구립도서관 서가는 북카페에 비해 어린이책이 더 풍성하고 다양했다. 사서선생님은 처음 온 아이들의 얼굴을 도서관 카메라로 즉시 찍어서 회원증도 만들어주셨다.  "은총아 네 얼굴이 카드에 있어. 뽀로로 책 좋아?  뽀로로 책 언니가 빌려올게" 자기 얼굴이 새겨진 카드가 신기한 큰 아이는 동생 책까지 챙겨 대출대에 잔뜩 쌓아놨다. 그렇게  아이들 카드 별로 골고루 책을 대출해 간 날. 아이들은 신용카드나 생긴 것처럼 뿌듯해했다. 도서관 입구에 비치된 자판기 음료 "코코팜"이 정말 맛있다며, "이제부터 여기는 코코팜 도서관이야." 이름 붙이기 재미 들린 첫째는 두 번째 네이밍도 찰떡같이 지어냈다.


 7세 큰아이가 한 참 발레에 빠져 주말마다 배우러 가던 충현동자치회관에도 1층에도 도서관이 있었다. 큰 아이가 발레를 배우는 동안 4,3세 동생들과 온돌로 된 도서관 유아실에서 그림책을 읽어주곤 했다. 집에선 책 한 권 읽어주려면 집중해야 하는데, 이곳에선 책 밖에 없으니 딱 책만 읽어주기만 하면 되니 편했다. 그 덕분에 둘째는 도서관에서 책 읽어주다가 한글도 스스로 뗐다. 아이들과 출출해지면 도서관 앞 빵집에서 크림빵과 피자바게트 같은 빵을 하나씩 사 먹곤 했다. 따로 이름을 짓지 않았어도 자동적으로 이곳은 "크림빵 도서관"이 되었다. 그렇게 용기가 생긴 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타요 얼굴이 붙어있는 연두색 마을버스 6번을 타고 도서관을 다니 시작했다.


 서대문구구립이진아도서관을 시작으로 각 동네마다 있는 크고 작은 도서관은 각각 다양한 위치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근처 독립공원에 안에 있는 이진아도서관은 도서관 창밖으로 사계절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미국 유학 중에서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은 가족이 생전에 책을 좋아하던 딸을 기리며 건립기금을 마련해 지은 도서관이라 의미가 남달랐다. 가족의 슬픔을 타인에 대한 나눔으로 승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존경스러웠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참 귀한 일이라는 깨달음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다.  이 곳은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장애우 언니오빠들이 음료를 제조하고, 초콜릿이 콕콕 박힌 손바닥만큼 큰 쿠키도 구워주었다. 이곳의 이름은 볼 것도 없다. 만장일치 '쿠키도서관' 그렇게 네번째 도서관이 생겼다.


  디저트로 우리만의 도서관이름 짓기는 도서관의 문턱을 낮추고 친근하게 만들었다. 평소에 자주 사주지 않던 간식들은 도서관에서 만큼은 허락되었으니 아이들도 좋아했던 것 같다. 여러 곳의 도서관 여행 마치고, 가까운 와플도서관, 책이 많은 코코팜도서관, 발레를 배울 수 있는 크림빵 도서관, 뛰어놀기 좋은 쿠키도서관 이 네 곳을 우리만의 도서관으로 정했다. 도서관에서 만큼은 오롯이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집중해서 그림책도 읽어주고, 숲에서 놀고 간식도 먹고, 잠이 오면 잠깐 낮잠도 드는.. 그렇게 한두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오는 일정은 루틴이 되었다. 동네 슈퍼나 키즈카페를 다니는 대신 습관처럼 도서관을 찾게 되었다. 시댁에서 분가하기 전까지 정말 우리 도서관인 것처럼 네 곳을 번갈아 4년 동안 열심히 다녔다. 십 년이 넘은 지금도 아이들과 그때 도서관 다니며 먹었던 크림빵이며, 쿠키이야기를 하면서 독서습관과 함께 충치도 함께 얻었다며 웃곤 한다. 


 문득 김춘수의 시 꽃이 떠올랐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우리가 이름을 지어 부르기 전까지는 그냥 동네 도서관이었던 그 곳들. 이름을 지어 부르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도서관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도서관은 나에게로 와서 나의 도서관이 되었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그렇게 우리만의 도서관은  잊혀지 않는 추억의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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