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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한알 Oct 10. 2024

나와 아이들을 키운 건 동네 도서관이었다

프롤로그

 “안녕하세요. **시 도서관인데요. 이번에 책 읽는 가족이 되셨어요. 상패랑 상장받아 가세요!”

자주 이용하던 집 앞 도서관에서 연락이 왔다. 그 해에 책을 많이 읽은 가족을 선정해 상을 주는데, 그중 한 가족이 우리 가족이 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기뻤는지 나도 모르게 양손을 들고 만세를 외쳤다. 다섯 살 큰 아이와 두 살 둘째 손을 잡고 근처 도서관을 처음 갔을 때가 떠올랐다. 그 후 셋째, 넷째가 태어난 후에도 우리는 키즈카페 대신 도서관을 다녔다. 그렇게 십 년을 꼬박 보내고 나서 받은 상이라 그동안 도서관 이용을 잘했다며 받는 공로상 같은 기분이 들어 더 기뻤다.



 도서관에 가서 상장과 상패를 받아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우리 가족처럼 도서관에 진심인 사람 없을 것 같아"하고 말하는 둘째의 말에 "그럼 이렇게 가족 수대로 다 채워서 빌리는 사람도 없을 거야"라고 말하는 첫째의 대답과 함께 "맞아 책이 얼마나 무거운데" 하는 셋째의 말에 모두 웃었다. 우리 가족에게 가장 친근하고 편한 공간을 꼽으라면 도서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아이들은 지금도 시간이 남는 휴일이 되면 도서관을 가자고 조른다. 휴가지를 갈 때도 항상 도서관을 챙겨 들르다 보니 지방 여러 곳과 해외까지 다양한 도서관을 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방방곡곡 다니면 다닐수록 수많은 책들과 시설을 무료로 이용하는 것에 대한 고마움과 기쁨이 커졌다. 정말 아이들에게 나쁠 것이 하나도 없는 곳이 도서관이다.


 처음부터 도서관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워킹맘으로 큰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주말에는 아이를 데리고 키즈카페로 백화점으로 호텔패키지로 평일의 힘듦을 보상이라도 하듯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 그곳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정서는 안중에도 없이 아이와의 시간을 때우기에만 급급했었다. 그러다 둘째를 낳고 회사를 퇴사하면서 신혼살림을 차렸던 시댁에서 육아를 했다. 모아둔 돈 없이 결혼해 시댁에 살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지만 남편 직장이 가까운 서울이라 감사했다. 하지만 감사도 잠깐이고 남편이 출근하고 난 뒤, 위아래층으로 시어른과 시어머니가 계신 집에서 종일 지낼 때면 문득 답답함이 찾아왔다. 둘째가 말하고 걷기 시작하자 시도 때도 없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나가자는 통에 그 핑계로 집을 나와 동네를 돌기 시작했다.


 어느 날. 무작정 유모차에 막 돌 지난 둘째를 태우고, 다섯 살 큰 아이 손을 잡고 동네를 둘러보다 은행 옆 주민센터 건물에 있는 작은 북카페를 발견했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간 곳에 도서관은 큰 안방을 터논 것처럼 널찍했고, 바닥은 따뜻한 온돌목으로 되어있었다. 직접 와플과 쿠키를 구워내 달콤한 향기가 풍기는 스낵바가 딸린 곳이었다. 유아들 눈높이에 꼭 맞춘 두서너 칸의 최대인 낮은 책장들이 있는 쪼르륵 있는 것까지 꼭 맘에 들었다. 그다음 날부터 마을버스로 두 서너 정거장 거리에 도서관에 출근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걸어서 유모차를 밀고 가기엔 먼 거리였지만, 아이와 서로 끝말잇기를 하며 걷다 보면 금세 20분이 지나가곤 했다.


 신기하게도 현실세계는 두 개의 시간이 공존했다. C.S루이스의 나니아연대기의 네 남매가 옷장의 문을 열면 나니아라는 새로운 세계로의 모험이 시작되는 것처럼 도서관을 들어서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쌓여있는 빨래와 설거지감과 갖은 물건으로 어질러진 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먼저 스낵바에 가서 와플을 사 먹고, 두어 권 책을 읽어주고 놀다 보면 두 아이는 차례로 까무룩 잠이 들었다. 금세 잠든 아이들을 기저귀 가방에 싸 온 담요를 덮어 주고, 그림책 몇 권과 내 책 한 권을 대출했다. 아이들이 일어나면, 대출한 책을 유모차 한쪽에 걸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뿌듯한지 일당을 받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오늘 일처럼 생생한 장면이 떠오른다. 햇살이 통 창의 절반까지 들어오던 도서관에서의 어느 오후. 아이들과 책을 읽던 그때를 혼자 곧잘 책을 읽던 첫째와 한글을 모르던 둘째,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던 셋째까지도 모두 앉아 사그락사그락 책장 넘기는 소리만 나던 찰나의 순간. 그때 알았다. '육아가 어렵지 않겠구나. 우리는 좋아하는 것이 같으니 다른 어려움을 이 시간들로 이겨낼 수 있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자라 세 아이는 사춘기 십 대가 되었다. 취미를 같이했던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좋아하는 공간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책을 통해 수많은 경험을 하며, 자신의 관심사와 꿈을 찾아갔다. 큰 아이는 영어책을 좋아해 영문학도가, 곤충을 좋아하던 둘째는 공학도로, 동생 책을 잘 읽어주는 셋째는 선생님이 여섯 살 넷째는 공룡박사가 되고 싶단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글을 쓰는 엄마가 되었다.



  네 아이들이 빌린 책의 무게가 암울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것은 도서관이 나와 아이들을 키워주었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네 아이들의 내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마음의 근육을 키워주었으며, 엄마인 내게도 육아의 불안과 염려를 줄여준 고마운 곳이다. 도서관은 네 아이를 즐겁게 양육할 수 있는 엄마이자 친구이자 스승 같은 곳. '하버드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은 독서하는 습관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다"라고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잡스의 말은 이미 너무 유명해진 말이다. 하지만 그 유명한 말을 바꿔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 가족을 책 읽는 가족으로 키워준 것은 동네 도서관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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