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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다미 샤르프의 <당신의 어린 시절이 울고 있다>

나의 감정과 느낌에는 언제나 뿌리가 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 꼭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더 중요한 것은 현재‘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나의 앞길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것이다.(p191~192)”


보통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알아서 한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는 것의 중요함에 초점을 맞춘 책들이 많다. 하지만 ’안다‘고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끔은 그 ’앎‘이 변명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지금의 문제에 대한 이유를 ’과거의 상처‘에 얽매여서 현재를 살지 못할 때도 있다. 그리고 안다고 해도 변화하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알지 못하면 변화할 수 없다.


사람의 몸이 말보다 훨씬 더 진실하다


이런 장르의 다른 책들과 이 책이 다른 점은, 어릴 적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말이 아닌 몸이 말해 주는 의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그리고 이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트라우마에 대한 개념을 알아야 한다.


쇼크 트라우마는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발생하지만 이 책에서 더 깊게 다룰 발달 트라우마는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스트레스 사건에서 싹튼다. (p27)”


일반적으로 말하는 트라우마는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발생한다. 하지만 저자가 중시하는 것은 ‘발달 트라우마’이다. 저자가 오랫동안 사람들을 상담한 결과, 트라우마에는 이 두 가지가 있고, 이 둘은 개별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쇼크 트라우마의 이면에 발달 트라우마가 감춰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p28)”이었다. 이 숨겨진 발달 트라우마를 알기 위해서 저자가 선택한 것은 바로 ‘몸’의 언어이다.


삶의 질을 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자기 자신을 얼마나 잘 조절하는지얼마나 안정적으로 유대감을 유지하는지에 달려 있(p240)”다. 그러나 이 행동 패턴은 떠올리지도 못하는 그림자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언어화할 수 없다. 그래서 저자는 사람의 몸이 말하는 언어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 안에 있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것들이 내 삶을 결정하고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해보라나의 감정 상태와 생각의 패턴이 내 것이 아닌 내 몸에 각인되어버린 과거에서 온 것이라면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일까우선 우리는 몸이 감정뿐 아니라 생각까지 결정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이것을 잘 알게 되면 을 통해 감정과 생각도 바꿀 수 있다.(p52~53)”


이 책 중 가장 깊이 남은 표현은 ‘몸 안에 산다’는 말이다. 몸은 감정뿐 아니라 생각까지 결정하며, 이것을 알게 되면 감정과 생각도 바꿀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는 과연 몸 안에 살고 있을까. 아니었다.

그동안 취미로 그려온 그림들, 좋아하는 나무나 뿌리, 그리고 자주 느끼는 공허함,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찾고 싶다는 오랜 바람, 존재의 이유. 이 모든 것들이 내가 몸 안에 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로 해석되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땅에, 내 몸에, 뿌리 내리지 못했기에 내가 뿌리내릴 수 있는 곳, 내가 있어도 된다고 하는 곳이 필요했고, 내 존재의 이유를 알고 싶어서 그렇게 오랫동안 책을 찾아 읽었던 것이다. 존재의 이유에 대한 책이나 현자들의 답은 ‘이유 따위는 필요없다’였다.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하라고 한다. 그럼에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이유가 필요했다. 그리고 가끔 나의 일상을 흔드는 혼란이 찾아오면 뿌리가 큰, 혹은 종이의 대부분이 뿌리인 그림을 그린다. 내 삶에 뿌리 내리고 싶다는 열망을 담아서.


치유란 통합의 과정이다


과거는 지울 수 없다. 친구는 가끔 말한다. 십 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살아보고 싶다고. 나는 그녀의 그 말에서 그녀가 현재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녀가 현재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내 눈에 그렇게 보이는) 중 하나가 어쩌면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해서가 아닐까란 생각을 한다.


내가 생각하는 치유는 통합한다는 의미이다과거에 벌어진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과 통합한다는 뜻이다.(p12)”


인간은 참 연약한 존재이다. 쉽게 상처 받고 쉽게 무너진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내 안에 새겨진 상처들을 들여다보며, 습한 곳에서 꺼내어 습기를 말리고 햇볕을 쐬어주는 작업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치유’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는 치유보다는 ‘통합’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하다고 본다. 여기서 말하는 통합이란 ‘나의 과거의 상처’와 ‘그 상처로 인해 현재의 내게 나타난 감정과 느낌, 행동’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벌어진 이야기를 바꾸거나 지워버릴 수 없다과거는 그냥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 하지만 잘 치료하면 달리고 뛰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부러졌던 부분이 더 단단해질 수 있다몸은 상처가 난 부분을 과도하게 보상하려고 하기 때문이다이와 마찬가지 맥락이다트라우마 치유라는 개념은 내가 더는 과거의 내 모습으로 규정되지 않고 다른 여러 가지 가능성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트라우마 경험을 성공적으로 통합했을 경우 이를 외상 후 성장이라 부른다.(p125~126)”


나는 단점이 곧 그 사람의 장점이자, 그 사람의 개성이 된다는 말을 좋아한다.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말을 좋아한다. 자신의 콤플렉스가 곧 그 사람의 개성이며 장점이 된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참 많은 실패를 했다. 내 기억 속 아버지는 성공한 적이 없다. 항상 성실하게 일을 하셨지만 하는 사업마다 실패했다. 그러나 지금의 아버지 일은 그 모든 실패 위에 서 있다. 수많은 사업실패의 경험이 지금의 아버지 일을 천직이라고 웃으시며 말씀하실 수 있게 만들었다. 그 천직을 만나기 위해 아버지는 그동안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것이 아닐까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외상 후 성장.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니 지우려고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지우고 싶은 건 아니지만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나가 분리된 채, 몸에 살지 못하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과거로 돌아가지 않아도, 지금 그대로의 당신으로도 충분히 앞으로의 삶을 잘 해낼 수 있다고, 자신을 믿으라고 말하고 싶다.


몸 안에 살다


몸을 제대로 느끼는 작업즉 (...) 육체화 과정을 잘 거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느낄 수 있다자신의 몸을 안식처라 생각하고 편안하게 느끼며 자신이 세상에 존재할 마땅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느끼고 다른 사람들과도 어렵지 않게 유대감을 맺는다.(p64)”


몸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실제로 감지하고 느낄 줄 알아야 한다어떤 공간이라는 것은 경계가 있을 때에만 존재하고 이는 안전을 의미한다하지만 동시에 한계를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 몸이 아니라 정신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대개가 죽음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몸을 통한 삶에 제대로 발을 들여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몸을 자각하는 육체화 과정은 오히려 두려움과 고통을 수반한다특히 처음에는 많이 힘들 수 있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머무르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우리가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 그냥 내맡겨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p74~76)”


언제부터인지 존재의 의미,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땅에 뿌리 내리지 못한 채 몸 밖에 살고 있는 나와 달리, 삶에 굳게 뿌리 내리고 있는 그. 그를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존재의 의미는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아직도 삶에 뿌리 내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인지 완전히 알 수 없기에 혼란이 찾아오면 뿌리 그림을 그리게 된다. 


몸 안에 살다. 너무나 좋아하는 단어를 오랜만에 만났다.이 책을 통해 나는 나의 그동안 내 안에서 부유했던 감정들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색깔을 입히는 이런 분류 작업들을 통해 내가 내 몸 안에 살게 되는 방법을 조금씩 알게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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