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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훈 Nov 21. 2020

가난, 현실 그리고 배움

'왜 우리 집은 이렇게 가난하지?'

요즘 아이들을 보면 대부분 아파트에 살면서 주말에는 키즈 카페라는 좁은 공간에서 뛰며 웃고 즐기고, 집에 있을 때는 유튜브라는 것에 푹 빠져 있다. 그리고 5살만 되어도 부모의 손에 등 떠밀려 영어학원 등을 다니기 시작한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당연한 시대 흐름 같지만은 내가 살아온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회상해 보면 지금의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지금의 아이들은 우리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 깜짝 놀라며 어떻게 그렇게 커 왔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것이다.


내가 기억나는 시점은 초등학교 때부터이다. 당시는 국민학교였다.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로 바뀌었으니 시간은 한참 지난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조금은 옛날 사람 같은 느낌을 자아내게 만든다. 초등학교 입학 후 3학년까지 나는 시골에서 살았다. 부모님은 양계장을 운영하셨고 그때 닭이 약 2천 마리 정도 키웠으니 규모는 작지 않은 듯하다. 그 시절 나는 학교까지 걸어 다녔다. 내 기억으로 약 1시간 이상 걸린 듯하다. 지금 그때 기억이 나서 예전 살았던 동네를 가보면 차로는 20여 분 정도 거리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시절 꼬마 아이인 내가 등교 하기에는 상당한 거리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혼자 종종걸음으로 혼자 등교를 하고 그것은 당연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이후 아버지의 사업으로 나름 인근 대도시인 대구로 이사를 했다. 건설업을 해보지도 않은 아버지가 건설업에 도전을 하셨고, 당시 대구에 거주하시던 할머니 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전문성이 전혀 없으셨던 아버지의 사업은 당연히 잘 될 리가 없었고, 할머니와 어머니 두 분의 갈등으로 우리는 다시 내가 13살이던 때 전셋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방이 2개였던 것 같다. 우리 집 대문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화장실도 지금의 양변기는 아니었다. 흔히들 말하는 아래가 보이는 푸세식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화장실 이야기를 들으면 제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겠지만 나는 시골에서 이미 경험을 해본 터라 그 부분은 크게 놀랄 일이 아니었다. 단, 먼가 모르게 네 식구가 살기는 작은 집과 누군가의 집에 붙은 듯한 공간이 조금은 낯설었다. 그 당시 내 생각에 어디도 우리 집보다 누추한 집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에서 말하지만 할머니 집에 놀러 왔던 친구들이 이사 간 집에 왔을 때 그 눈빛이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눈빛이었던 것 같다. 어린 나로서도 조금은 작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시골 생활등을 해본 터여서 조금은 덤덤하게 생각하고 그 친구들을 이사 간 집으로 초대하곤 했었다. 그 시기 나는 무언가 모를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 누군가의 눈치를 크게 보지 않고 당당하게 남 앞에 서는 용기, 그리고 내가 비록 실수를 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자신감 있게 밀어붙이는 태도는 그 당시에 배운 것이라 생각한다.


사업 실패 이후 아버지는 여러 차례 도전을 하셨지만 경험 없는 도전인 탓에 매번 실패로 이어졌다. 이러한 우리 가정을 일구어 나간 건 바로 어머니였다. 대구로 오고 나서 요구르트 판매원, 파출부, 식당 잡일 등 흔히 말해 전문성이 없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 보신 것 같다. 당시 내가 너무 어렸기에 생각이 안 나겠지만 더 힘든 일도 많이 하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아이들은 부모의 손을 많이 타고 자라나고 있다. 나 역시 우리 아이들이 잘 크도록 보살피고 하나하나 꼼꼼하게 봐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 시절 나뿐이었다. 집에 오면 라면을 끓여 먹는 일이 빈번했다. 이때 매일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내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혼자 커오면서 자립심도 함께 가지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평생 그 짐을 안고 가고 있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나의 어린 시절은 지금의 아이들과는 다르게 조금은 힘들지만은 그 환경 속에서 좋은 점을 크게 나의 지금으로 만들어 온 듯하다. 일게 친구들을 보면 그 시절 부정적인 부분을 더 크게 받아들여 어긋나게 간 친구들도 상당수 있다. 하지만 나를 인정해주고 지지해준 가족과 주변 환경이 나를 지금의 긍정적인 나로 인도해 주었다.

모든 것이 잘되면 내가 잘한 것이고 잘못되면 주변을 탓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같은 환경에도 내가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나의 삶은 차이가 있는 것을 직접 경험해 보았다. 이러한 것을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최대한 주고 싶다. 물론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것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런 부분을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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