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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헌트 Aug 30. 2024

동티모르 EP.11(스핀오프) : 봉주르와의 만남이별

[헌트의 동티모르 시절 이야기]

앞으로 전개될 모든 이야기들은 제 핸드폰 or 드라이브에 담긴 사진의 순서대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처음 동티모르로 떠났던 게 2016년이니 기억들이 많이 미화됐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지난 사진들을 보고 당시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걸 보니 여전히 저한테는 특별한 기억들인가 봐요.


앞으로 전할 이야기들도 재밌게 봐주세요:-)



16.04.11.~25.

지난 에피소드에서 이야기한 대로 함께 지내던 간사님들이 돼지를 키워보고 싶다고 하셔서 다 같이 500불이라는 당시 우리한테는 나름 큰돈을 모아서 돼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심지어 이름도 봉주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름이 봉주르가 된 이유는 당시 사무소에는 봉구라는 개를 키우고 있었다. 그래서 봉자 돌림이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고민하다가 나름 고급스럽게 봉주르라 이름 지어주었다.


아무튼 첫날부터 봉주르는 코스토디오 아저씨네 집에서부터 우리 집까지 오는 길 내내 돼지 멱따는 소리(여러분들이 아는 그 소리)를 내며 집까지 왔고, 집 담벼락 밑에 내려놓는 순간까지 난리를 피웠다.


물론 봉주르의 마음도 이해는 하지만, 당시 폭우가 쏟아지던 중이라 너무나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막상 봉주르를 데려왔는데, 봉주르를 어디에 키울지는 아직 제대로 계획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업지로 모니터링을 나갈 때마다 현지 분들은 울타리를 어떻게 만드나 관찰하며 봉주르 집을 짓기 위해 심도있게 고민했다.



처음에는 또 꼴에 군대도 다녀왔다고, 혼자 집 지어줄 재료도 구입해서 이리저리 기둥도 박아보고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결국 쪼만한 외국인 남자애가 고생하고 있으니, 이웃집 아저씨가 오셔서 도와주시겠다고 하셨다. 이때도 여전히 현지어는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오브리가두(Obrigadu, 감사합니다.)만 연신 뱉었다.



마침내 이웃 아저씨의 도움으로 마당 한구석에 봉주르의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엉성해 보이지만 나름 잘 만들었다며 아저씨와 하이파이브도 하고, 이제 봉주르를 잘 키우기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사나운 봉주르를 집(돼지우리)안에 넣어주니 뭔가 한결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자세히 보면 보일지 모르겠지만, 봉주르가 우리 집으로 이사 오는 과정에서 다리에 줄을 묶은 채로 왔었는데 난리를 치다가 어깨 탈골 부상을 입었다.


그래서 집 안에서도 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밥은 주니 잘 먹길래 빨리 낫기를 기도하며 나름 매일매일 들여다보며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주가 됐을 무렵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봉주르 탈주 사건'



아침밥을 주려고 나왔는데, 이상하게 조용한 느낌이 들어서 울타리 안을 들여다봤는데 봉주르가 사.라.졌.다.


도저히 나갈 방법이 없는데, 점프도 할 수 없을 높인데 하면서 간사님들을 불러 모았다.


누가 훔쳐 간 건지 생각도 해봤지만, 선명하게 남아있는 봉주르의 탈출 흔적.


그렇다. 봉주르는 2주 동안 아픈 척하면서 호시탐탐 주는 밥 먹어가며 체력 충전한 뒤, 땅 파서 탈출한 것이었다.


핑크 돼지가 아니라 멧돼지처럼 생겼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렇게  봉주르와의 우리의 인연은 단 2주 만에 끝이 났고, 500불도 하늘로 사라졌다.


동티모르 EP11. 스핀오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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