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
누가 나를 가장 잘 알고 있을까. 부모님도 모르는 나의 모든 면을 알고 있는 그런 사람.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와이프가 아닐까.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그런 사람은 8년째 함께 있는 와이프가 맞는 것 같다.
와이프에게 나의 실패일지에 대해 아직 말하지는 않았다. 채 3일이 되기도 전에 포기했던 수많은 과거 전적들을 알고 있는지라 섣불리 말하지는 못했다. 그냥 약간의 다짐 정도를 넌지시 이야기했다. 그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생각 없이 그냥 해보겠다는 다짐. 그리고 그 일을 하나하나 할 때마다 와이프에게 달라진 나를 자랑했다.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스피커를 당근에 올리고 와이프에게 자랑하고, 식탁 위에 놓여있던 국민연금 환급 신청서를 작성하여 팩스를 보냈다고 자랑하고, 눈에 보이는 먼지 좀 닦고 청소기까지 돌렸다고 자랑하고..
와이프가 그랬다. 딱 1주일만 가도 좋겠다고. 나는 오늘이 3일째라서 너무 대단하지 않냐며 그렇게 또 자랑을 했다.
사람들에게 나의 목표를 이야기했을 때 반응을 보면 그간 내가 살아온 길을 알 수 있다. 만약 내가 잘 살아왔다면 나에게 반드시 할 수 있을 거라는 응원을, 그 반대라면 내가 할 수 있겠냐며 코웃음을. 지금 와이프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잠깐 만났던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 아이는 공부를 무척이나 잘했고 나는 공부를 무척이나 못했다. 중학교 졸업식 날 그 아이가 나에게 이별을 건넸다. 너는 이해를 잘 못 할 수도 있겠지만 자기는 공부를 위해 이제 연애 따위에 관심이 없다고. 공부도 못하는 너 따위가 감히 자기의 깊은 뜻을 알겠냐는 그런 논조로 나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까딱하면 실업계를 갈 뻔한 나의 성적으로 겨우 인문계 고등학교를 입학한 나의 고등학교 1학년. 친구들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공부라는 것을 해보겠다고.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코웃음뿐 아무도 그 말을 믿어주진 않았다. 그들은 이미 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왜 그때 그렇게 자존심이 상했던 걸까. 그들에게 무시를 당해서일까 아니면 초라한 나에게 화가 났던 걸까. 공부와 친하진 않았다는 것을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는데 무엇에 그렇게 화가 났던 걸까.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공부라는 것을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PC방, 당구장, 노래방 등 친구들과의 일탈까지는 쉽게 바꾸지는 못했다. 미친 듯이 죽어라 노력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잔 적은 없었다. 과외 1개를 제외하고 학원을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는 최선을 다 했던 것 같다.
5월이 되고 중간고사가 끝이 났다. 선생님이 교탁 앞에 서서 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내 이름이 가장 먼저 불려졌고 나는 45명 중 1등을 했다. 그때부터 내가 하는 말에 대해 모두들 응원을 해줬던 것 같다. 터무니없는 목표를 이야기해도 나는 뭔가 다른 것 같다며 응원을 했다. 공부하는 방법은 잘 몰랐지만 그래도 나에게 재능이 없지는 않았나 보다.
지금 글을 쓰다 보니 알게 됐다. 이때부터 나에게 실패하는 습관이 자리 잡았다는 것을.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고 있는 아주 지독한 습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