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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재 Sep 13. 2024

산(山)- 소설(1)

아버지가 되어버린 산에 대하여

산은 우리에게 어떤 장소인가. 그것은 사랑하는 이의 무덤이 있는 곳이며, 여우빛깔의 다람쥐들이 뛰어 노니는 곳이며, 가을을 맞이하여 얇은 이불을 여러 겹 덧대어 덮은 이불속에 잠을 자는 이름 모를 벌레들이 숨 쉬는 곳이다. 오늘날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도시에 사는 탓에, 어린 시절 산에서 뛰노는 야릇한 추억도 더 이상은 나눌 수 없는 것이 되었지만, 나의 아버지의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산은 롯데월드니 에버랜드니 하는 놀이공원보다 더욱 놀 것이 많은 동산이었음이 틀림없다. 웃기게도 내 친구 중에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60-70년대 때나 그런 것 아니냐고 의문을 표하는 녀석들도 종종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후 일찍 결혼해 일찍 아이를 나았다면, 내 또래의 아버지는 적게는 40대 중후반쯤의 나이를 먹었을 테니 녀석들이 하는 소리가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민주복지완성이라 불리던 새마을 운동의 끄트머리를 지나며 도시화되고 산업화된 서울에서, 텁텁한 매연과 달큼한 문명의 맛을 뼛속 깊이 느끼며 자랐던 누군가에게 산과 계곡이 주는 어머니 같은 편안함은 꽤나 먼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녀석들의 할아버지 세대 정도는 되어야 산의 포근함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세상 꼴이 이상해졌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나 또한 그 놈들과 크게 다르진 않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가족 휴가 때 계곡에 가거나 주말에 아버지와 등산에 가는 것이 산에 대한 추억의 전부일뿐. 하지만 조금 다른 점은 나이를 꽤나 먹었음에도 늦둥이 하나 낳고 길러주신 아버지 덕에, 함께 등산을 가는 날이면 지독하게 산과 얽힌 유년시절의 추억을 산행의 초입부부터 등산에 이를 때까지 지겹도록 들었다는 점이다. 오래된 고목에서 풍겨오는 향긋한 나무내음처럼 깊고 짙은 아버지의 음성으로 듣던 산 이야기들은 때로는 듣기 싫기도 했지만 대개는 재밌었다. 아버지는 IMF 전까지만 해도, 걸출한 사업체를 몇 개씩 가지고 계셨고, 비록 사업체들은 빚더미와 함께 사라졌지만 여전시 수려한 언변과 카리스마를 갖고 계셨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의 이야기가 재미가 없어지는 것은 세 번 정도 반복될 때쯤이었다.-첫 번째, 두 번째까지는 재미있게 들을만했다.-아버지의 옛이야기는 동네 술집에서 아저씨들이 들려주는, 기회를 놓친 과거에 대한 한탄과 괴로움과는 다른 고급스러움이 있었다. 그것은 희석식으로 담아낸 알코올들로 털어내기에는 무례하다 싶을 만큼, 잘 숙성되어 있었다. 위스키니 럼이니 하는 고급 양주나 다른 값비싼 술들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굳이 아버지의 이야기들이 어떤 술이냐 물어본다면 고급 양주나 잘 증류된 고급 전통주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된 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산은 나에게 어린 아버지와 청년이 된 나를 이어주는 쌉싸름한 물줄기가 뻗친 공간. 더 쉽게 말하면 아버지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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