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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류작가 강은영 Oct 11. 2021

뒷담화 하지 않는 사람

나의 시댁은 강원도 홍천이다. 곧 있으면 결혼 16주년이니 그동안 수십 번 홍천을 다녀왔다. 시댁에 갈 때마다 동네 분들이 들러 먹을 걸 주고 가거나 시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역시 시골 사람들은 정이 많고 인정이 후하구나'라고 여기며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시어머니는 그 동네에서 소위 '인싸'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찾는 사람이다. 친화력이 어느 정도냐면 다른 집에 농사일을 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도 주인보다 어머니를 더 좋아한단다. 명절이라며 선물을 보내오고 평소에는 따로 식사를 하다가도 어머니가 그 집에 가면 함께 앉아 밥을 먹는다고 한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시니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는 거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추석 때 무심코 나눈 대화에서 그 비결을 드디어 알아냈다. 어머니는 남 뒷담화가 제일 싫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뒷말을 할 때 가만히 있거나 너무 듣기 싫어서 자리를 뜨기도 하신단다. 좁은 동네일수록 동네 사람의 이야기를 대화 거리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뒷담화는 좋은 말보다는 나쁜 말, 흉보는 말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앞에서는 떳떳하게 하지 못하는 '뒷'말, '뒷'담화가 된 것이겠지.



사람을 사귈 때 뒷담화 하면서 친해지거나 가까워지는 일이 종종 있다. 적의 적은 동지라고 했던가.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상대방도 싫어한다면 순식간에 결속력이 다져진다. 나 역시도 그렇게 해서 친해진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뒷담화를 즐겨하는 사람 곁에는 오랜 친구나 좋은 친구가 없다.    

    

우리 시어머니처럼 뒷담화를 하지 않고 싫어한다면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저 사람은 어디 가서 내 욕은 절대 하지 않겠구나!" 싶은 거다. 그래서 시골 동네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것 같다.


남편 역시 시어머니를 닮은 건지 다른 사람을 욕하거나 흉보는 것을 들은 적이 거의 없다. 사람이 밉고 싫을 법도 한데 누구에 관해서든 좋은 말을 하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남편도 원래 뒷담화를 싫어했는데 결정적으로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공군 장교로 근무하던 시절, 남편의 사관학교 동기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안부를 주고받은 후 대뜸 어떤 후배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그 녀석 별로지? 사람들이 싫어했잖아"라며 남편의 의견을 물었다. 평판이 좋지 않은 후배인데 남편도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터라 순간 후배의 흉을 볼 뻔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장점을 이야기하며 괜찮은 녀석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껄껄 웃으며 "역시 너는 남 뒷말을 하지 않는구나! 지금 그 후배랑 같이 있어"라고 하더란다. 순간 남편은 등골이 오싹해지며 자신을 시험한 친구에게 화가 났다. 뒷담화를 유도하는 친구에게 걸려들었으면 그 후배와는 영영 척을 질 뻔했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론 고마운 생각이 들었단다. 어떤 상황에서든 무슨 일이 있어도 남 뒷말을 함부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유유상종이라고 뒷담화를 즐기는 사람은 부정적인 말을 주로 하는 사람들과 어울린다. 군 관사에 10년 정도 살면서 다른 사람을 안주거리로 욕하고 흉보는 일이 내게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뒷담화는 하면 할수록 기분이 나빠지고 힘이 빠진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가장 먼저 그 말을 듣기 때문이다. 타인의 단점, 안 좋은 일, 나쁜 소문을 듣거나 이야기하면 그 에너지를 내가 고스란히 다 받는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는 뒷담화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을 흉보고 남 얘기하는 시간이 가장 아깝게 느껴진다. 안 좋은 말을 하고 나면 덩달아 내 기분도 나빠지고 뒷담화 하는 사람들 틈에 있으면 에너지를 빼앗기는 느낌도 든다. 긍정 에너지가 감소하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감정 상태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단점이나 잘못 보다는 장점과 잘하는 것을 찾아 이야기해야 한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지키기가 어려운데 다른 사람을 욕하는 것은 꽤 흥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뒷담화를 하면 나도 모르게 동조하고 휩쓸리기도 한다.


타인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장점만 보려는 사람은 말과 행동에서 품위가 흐른다. 내가 시어머니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을 다 품고 이해하려 노력하신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긴 뜻깊은 명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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