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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의 무게

영화 <철도원> 감상

by 빈틈


이번주 내내 이어지는 눈과 한파는

얼마 전 다녀온 북해도를 상기시킨다.

이곳의 눈이 그곳의 것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눈은 행복한 기억을 불러오곤 하니까.


나에게는 그 기억이 바로

"이쿠토라역의 추억"이다.




일본을 다녀오는 길

비행기에서 2000년 개봉한 영화 <철도원>을 봤다.

일본영화를 본 지 오래되었지만

<철도원>의 배경이 된 이쿠토라 역을 갔던

기억을 더듬어 영화까지 찾게 되었다.


이쿠토라 역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반긴 건

다름 아닌 하얗게 내려앉은 눈.

바닥이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쌓여있었다.

마치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게 하려는 것처럼.


철도원인 주인공, "오토"는

혼자 호로마이역을 지키고 있었다.

인적이 드물고 오래된 마을을 찾는 이가

점점 줄어들수록 역은 존폐위기에 놓였다.

그럼에도 우직하게 그곳을 지키는 그에게도

사연은 있다.


17년 전 혼자 역을 지키다 보니

결혼 후 갓 태어난 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도

몸이 약한 아내의 임종도 곁을 함께 하지 못했다.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내지 못하고

기차시간이 끝난 후에야 병원으로 향했다.


어찌 보면 역을 지키는 일 또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함일 수 있는데

그의 책임감은 가족을 부양한 것 이상의 차원이었다.


왜 죄책감이 없었겠는가.

오토는 죽은 딸의 영혼을 마주했을 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보인다.

그는 아내와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누구나 알지만 가늠할 수 없는 크기의 죄책감을

하얀 눈에 파묻기라도 하려는 듯

호로마이역 하얀 눈 밭에 쓰러져 생을 마감한다.


이 시대의 모든 아빠, 엄마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생업전선에 뛰어든다.

우리 가족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문 밖을 나서지만

정작 아이에게 일어나는 가까운 일들은

챙기지 못하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

나 또한 그런 엄마 중 하나였다.


업무 중에도 죄책감과 책임감이 뒤엉켜

혼란스러운 당신에게

등을 토닥이며 말하고 싶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런 당신을 보며 아이는 스스로 이겨내고

퇴근 후 비로소 꼭 껴안으며

서로를 위로하게 될 겁니다."




최근 독감을 걸리는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직장에 다니는 분들의 고충을 듣습니다.

부디 빠른 시일 내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사진출처 : 네이버 <철도원>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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