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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울 것 같아

전학을 앞둔 겨울방학

by 빈틈


오른팔 깁스 중인 딸을 대신해

하루 전날 담임 선생님께 부탁드려

내가 대신 아이의 짐을 가져왔다.

친구들은 모두 무거운 짐을 낑낑거리며 나오는데

혼자 의기양양하게 가벼운 몸으로 나오겠지?

생색 좀 내야겠다.

마침 딸이 하교 후 전화가 왔다.


"딸, 학교 잘 마쳤어? 엄마 덕에 좀 편하지?"

"엄마... 나... 울 것 같아."




전학을 앞두고 있다.

아이는 태어나 지금의 동네 외 다른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어린이집, 유치원 모두 전학 없이

한 곳에서 모든 과정을 마치고 졸업했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나를 시작하면 우직하게 끝까지 마무리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뜻과 아버지의 직장을 옮길 일이 없는 탓에

타 지역은 고사하고 다른 동네로 이사할 일조차 없었다.

대학을 타 지역에서 다녔어도

직장과 결혼 후 신혼집까지 내가 나고 자란 동네를

벗어나지 않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참 보기 드문 일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이사를 간다.

아이들은 자연히 올해 3월부터

타 지역 타학교 학생이 되는 것이다.


아이는 초등 1학년부터 지금까지

그렇다 할 단짝친구가 없다고 했다.

쉬는 시간이 되어 우르르 몰려가는 친구틈에 끼긴

무언가 부담스럽고 소란스럽다 했다.

그렇다고 교실에 앉아 있기는 지루하여

종합장에 만화를 그리고 시를 쓰는 일이 잦았다.

학교에 가져가는 책도 금세 다 읽어서

집에 다시 가져오곤 했다.

그러다 3학년 2학기를 지내며 한두 명의 친구를

언급하는 일이 잦아졌다.

종합장의 만화와 시도 새로운 작품이 끊긴 지 오래였다.

책을 가져가도 친구와 수다 떤다고 못 읽었다며

며칠을 들고 다니기도 했다.

두루 잘 지내는 정도에 그칠 줄 알았는데

조금씩 자기만의 관계를 쌓아가는 아이가 기특했다.


여태껏 만난 담임선생님 모두 아이가 좋아했다.

하지만 올해 담임선생님은 유독 아이가 잘 따랐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 학생들의 모습에

화가 나실 법도 한데 늘 차분한 모습으로

학생들을 한결같이 대하는 자세에

아이는 감동한 듯했다.

아이가 선생님을 이야기할 때마다 미소를 머금었다.

그날의 체력에 따라 감정이 널뛰듯 하는 어미와

비교가 돼서 그런 걸까 내가 괜히 찔리기도 했다.


친구들과 급식소에서 서로가 다 먹기를 기다려주던 일.

축농증으로 코가 불편한데 수업시간이 코 풀기를

부끄러워하는 아이를 담임선생님이 배려해 주신 일.

급수 줄넘기를 친구들과 가르치고 배운 일.

남쪽 지방에 보기 드문 눈이 내린 날

선생님과 친구들이 운동장에 나가 놀았던 일.

팔을 다쳤을 때 친구들이 식판을 들어주고

알림장을 대신 써준 일.


아마도 아이가 울먹이며 나에게 전화를 걸었을 땐

이 모든 일이 아이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갔을지 모른다.



"엄마라도 우리 딸처럼 울었을 거야.

친구들과 선생님하고 인사 잘 나눴니?"

"응! 서로 다 안고 인사했는데

선생님이 나 진짜 꽉 안아줬어.

내가 좋아하는 붕어빵 모양 손지갑도 선물로 주셨어!"

"너무 감사하겠다~!

울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고 예쁜 모습 보여주고 나와.

집에 와서 펑펑 울어! 엄마가 같이 있어줄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는 짧은 문장을

아이는 그 어느 때 보다 깊이 느꼈으리라.

그렇다면 그 이별 뒤 찾아올 또 다른 인연도

아이는 그 누구보다 반갑고 감사히 여길 것이다.

새로운 이들과 만들어갈 또 다른 행복한 추억을

기대하면서.



사진출처 : 픽사베이 무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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