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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부인이 되다

남편과 아이들은 시댁으로 보낸다

by 빈틈


"엄마도 같이 가면 안 돼?

나 엄마 보고 싶단 말이야.

밤에 잘 때 엄마 없으면 무서워."

"엄마 없으면 TV 봐도 잔소리할 사람 없고 좋지.

아빠랑 같이 자면 엄마 없어도 든든할 거야."


영영 헤어지는 게 아니다.

무서워봤자 3일이니 그 정도는 괜찮다.




방학식 직후 아이들은 할머니댁로 휴가를 갔다.

3일이라는 시간은 나와 아이들이

거리 두기를 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이라 생각했다.

1년의 하반기를 꼭 붙어지내면서

잠시 놓칠 뻔한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 말이다.


방학식날 학교에서 급식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소식에

얼른 도시락부터 준비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고기유부초밥.

아빠가 1시간을 운전해서 가는 동안

행여 심한 장난으로 아빠 심기를 건드릴까

충분히 만든다고 했는데도

뭐든 잘 먹는 둘째가 특히 불안했다.

과일 간식과 만화책 몇 권도 함께 챙겼다.



아이들이 갔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처음 아이들을 시댁에 보낼 때 보낼 때

하룻밤 떨어지는 것도 아쉬워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틀밤 내내

울적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수첩에 미뤄둔 일들을 쭉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짰다.



도서

자칫 하루사이에 연체될 수 있는 책들을 모두 반납했다.

다행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도 죄다 빌릴 수 있었다.

방학 동안 읽었으면 하는 시리즈 물도 빌렸는데

아이들이 푹 빠져 읽어줬으면 좋겠다.


쇼핑

며칠 전 키보드 자판 하나가 빠져 너덜거렸다.

마침 수리센터가 마트 옆에 자리했다.

키보드 수리를 맡기고 다음 주 방학 돌밥 식재료와

아이들, 남편 옷 쇼핑을 즐겼다.

마음이 여유로워서일까.

내 것을 사지 않아도 쇼핑이 꽤 만족스러웠다.


운동

기온 6°C.

주말 날씨가 딱 러닝 하기 안성맞춤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추웠을 텐데 5Km를 달리다 보니

겨울 공기는 어느새 에어컨 바람처럼 시원했다.

기분도 좋겠다 들어가는 길에

아이들 오면 간식으로 줄 케이크도 샀다.

꼭 그 영화를 같이 보면서 먹어야지.


비움

밤이 오고 넷플릭스 정주행을 시작했다.

더불어 책장 정리 또한 시작했다.

아이들과 뒹굴며 묵혀둔 책들을 하나둘 상자에 담았다.

그림책이 빠진 자리에 조금은 작고 두꺼워진

문고판 책들을 꽂으면서 아이의 몸도 마음도

한 뼘 자랐음을 실감했다.


아이들이 집 떠난 지 3일째 되는 날.

평소와는 다르게 아이들이 얼른 오길 바랐다.

아이들 올까 봐 겁내며 시계를 보던 여느 때와는 달랐다.
아이들을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던 것들을

하나둘 처리하니 굳이 나를 위한 일이 아니더라도

만족감이 꽤 컸다.

무엇보다 깨끗해진 집과 맛있는 간식을 보면

가족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싶었다.

아이들 오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저녁시간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아이들이 도착했다.

집에서 TV만 보게 하지 않으려고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도 가고 책도 읽혔다며

의기양양한 남편의 품에 새 옷을 안겼다.

수고했노라는 토닥임과 말 한마디는 덤이다.

오른팔 깁스로 팔이 들어가지 않아

겨우 맞는 내 옷으로 열흘의 시간을 보낸 딸은

쭉쭉 늘어나 팔이 쏙 들어가는 분홍 스웨터에

시선을 빼앗겼다.

막내는 그저 케이크가 본인이 좋아하는 초코맛인지

재차 확인하는데 여념이 없다.


이제 집안에 미뤄둔 일이 없다.

저녁도 간단히 해결했다.

내일은 방학이라 지각 걱정도 없다.

나는 아이가 있어도 진정한

자유부인이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무료사진,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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