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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면 쓰레기를 버려야지

나가고 싶어서

by 빈틈


"엄마, 밖에 눈 많이 와!"


(10분 뒤)


"엄마 쓰레기 좀 버리고 올게."




최근 2년 내가 사는 곳은 유독 눈을 보기 어려웠다.

오죽하면 이번 겨울,

그러니까 작년 12월이 되자마자 가족여행으로 간 곳이

다름 아닌 일본 북해도, 그리고 강원도 스키장이다.

두 군데 모두 눈 보러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곳이다.


그런데 이번주 시작부터 모습을 드러내던 눈이

오늘은 더 오래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들 방학을 맞아 집에만 있다 보니

날씨 예보를 확인하지 않은 탓에

하얀 눈이 더욱 반가웠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쌓이는 건 무리겠지.

웬만큼 추운 날씨가 아니면 적설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검정 아스팔트와 붉은 블록은

어느새 그 경계가 무색하게 하얗게 물들어갔다.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데리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행여 넘어질까 손 붙잡고 걷는 것도

집에 들어가자, 더 놀겠다 실랑이하는 것도

조용조용 가만히 내려앉는 눈과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겨울에 못내 나갈 일은 쓰레기 비우는 일뿐.

급히 저녁 식재료를 다듬기 시작했다.

마침 야채비빔밥을 할 예정이었다.

냉장고 자투리 채소 껍질을 까고 먹기 좋게 썰었다.

행여 눈이 그칠 새라 손놀림은 빨라졌다.


꽉 찬 음식쓰레기와 분리쓰레기를 양손 가득 들고

아이들을 향해 외쳤다.


"엄마, 쓰레기 버리고 올게!"


엘리베이터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창 밖을 바라봤다.

이 풍경을 보고 어찌 나가지 않을 수 있을까.


급히 나오느라 미쳐 외투를 입지 못했.

하지만 머리 위로 소복이 내려앉는 눈을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잔뜩 움츠러들어

분리수거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면

오늘은 아무도 밟지 않은 곳을 골라

한 발 한 발 발자국을 찍었다.

하얀 눈 밭에 내 발자국만 찍힌 그 희열에 비하면 쓰레기를 비울 때 후련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쓰레기장으로 가는 길이 이리 설렐 일인가.




어른이 되면 눈이 성가시다던데

나는 아직 이리 설다.


아니면 아직 철이 덜 들었던가.



사진출처 : 픽사베이 무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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