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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유학" 가요

구례, 봄 2

by 빈틈


"자기, 내년에도 학교 봉사 할 거지?"


둘째가 입학한 해부터 꼬박 2년, 나는 학교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첫째가 입학하던 해에는 직장을 다니고 있던 터라 안내장으로 날아오는 학교 봉사활동 신청서를 받아오는 족족 분리수거장을 향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나는 마음 한편에 묻어둔 학교 봉사 신청서에 내 이름 석 자를 적었다. 내 이름 옆에 아이들의 이름까지 적고 나니 "봉사"라는 이름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내 아이가 집 다음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는 이곳 학교의 문턱을 넘으려면 학교 봉사에 참여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이들만의 사회생활이 시작되는, 어쩌면 아이들 입장에서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일 수 있는 이곳 학교. 그래도 아직은 부모라서 학교에 대해 더 잘 알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 봉사는 탯줄이 끊어진 이후 나와 아이들을 연결해 주는 또 다른 고리 역할을 했다.


격주로 저학년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봉사를 했다. 아침 일과가 시작하기 전에 읽어줘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 갈 때 서둘러 따라나서야 늦지 않게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머리가 좀 컸다고 엄마와 함께 손 잡고 학교 가는 일을 아이들은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그림책 읽어주는 날 만큼은 아이들과 등굣길을 함께 하는 것을 허락했다.

"오늘 책 읽기 봉사날이라 엄마도 학교 가야 해! 같이 가자!"

우리 아이가 몸 담은 반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는 원칙이 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이가 원해도 부모가 봉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초등 아이들은 그것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리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의 서운함이 가시기 어려운 때이다. 학교라는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옆 반으로 책을 읽어주러 오고 가는 길에 목을 빼고 아이를 찾기도 했다. 엄마는 곁눈질로도 아이를 재빨리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지금 생각해도 참 주책이다. 그래도 혹시나 이 책을 읽고 있는 분이 혹여 부모라면 나의 입장을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그림책을 읽어주러 가기 전에는 내가 맡은 반 아이들에게 읽어줄 그림책을 고를 때 우리 아이들과 상의했다.

"엄마가 이번 주 그림책 당번인데 어떤 책을 읽는 게 좋을까? 봄이니까 꽃이 있는 책 하나는 골랐는데 다른 하나는 네가 좀 골라주겠니?"

그때부터 아이들은 자기 나름대로 진지하게 몇 가지 책 제목을 이야기해 줬다. 그럴 때면 '아이를 품에 끼고 무릎에 앉혀놓고 책을 읽어줬던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구나'하고 그 시절 고단함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책을 함께 고르지 못하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게 읽었던 책 중 하나를 골라 가방에 넣기 전에 꼭 생색을 냈다. 그런 책은 나에게 "흥행 보증 수표" 같은 존재였다. 우리 아이들이 몇 번을 읽어줘도 재미있게 봤던 책이라 더 자신 있게 읽어줄 수 있었다. 그렇게 책을 읽어주고 온 날이면 아이들이 나에게 확인한 것이 있다.

"오늘 책 읽기는 성공했어?"


한 달에 한 번은 학교 도서관으로 사서 봉사를 하러 갔다. 아이들 점심시간에 맞춰 시작하여 오후 3시면 마무리되었다. 점심밥 냄새가 급식실에서 계단을 타고 학교 도서관까지 솔솔 풍겨오는 오후 12시. 도서관 창문을 열고 청소기를 밀고 나면 본격적으로 도서관 문을 열 준비가 끝난다. 우리 아이들도 비염으로 콧물 재채기를 달고 사는 지라 훌쩍이며 들어오는 다른 아이들을 보면 남일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도서관 봉사일이 되면 서둘러 이른 점심을 고 봉사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청소에 더욱 열을 올렸다.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몰려오기 전 서둘러해둬야 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신간코너 훑어보기. 유튜브 영상이 알고리즘을 따라 내 취향에 맞게 쉼 없이 업데이트되듯 나도 아이들의 이목을 끄는 책이 무엇일까 미리 스캔을 해두는 것이다. 혹여 그날 아이가 도서관을 오지 못하면 집에 가서 큰일이 났다는 듯 소란을 떨었다.

"오늘 네가 기다리던 시리즈 신간 들어왔던데!"

아이는 다음날 여지없이 도서관으로 달려가 신간코너 앞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봉사활동은 나에게 "봉사"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힘이 닿을 때까지는 학교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싶다. 하지만 이 학교에서는 아니다.


"저 유학가게 됐어요. 아무래도 내년 봉사는 힘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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