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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농촌 유학"

구례, 봄 3

by 빈틈

함께 학교 봉사를 했던 다른 학부모님들과 연말 모임을 가졌다. 그중 한 분은 나와 2년을 꼬박 학교 책 읽기 봉사를 해오신 분이었다. 다음 해에 해외로 유학을 떠나게 되어 더 이상 봉사를 함께 하지 못하게 된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어머, 유학 가시는구나! 저도 가요, 농촌 유학."


"농촌 유학"이라는 제도를 처음 알게 된 것이 벌써 4년 전이다. 코로나 창궐 후 일상적인 교육에 온라인이 도입되는 과도기, 또는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외부 활동이 어려워진 시기라는 설명이 더 정확할 듯싶다. 경기도 지역에 사는 지인이 SNS에 노을이 지는 사진에 큼지막한 텍스트를 얹어 피드를 올렸다.

"저... 유학 갑니다."

당시 지인은 이럴 때 일 수록 더욱 본인과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었다는 글과 함께 서울교육청과 전남교육청이 함께 진행 중인 "농산어촌유학제도"에 대해 운을 띄웠다. '유학? 해외로 가는 것만 유학 아니었어?' 도시 쥐도 학을 떼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만든 곳이 바로 시골이다. 거기다 우리나라 교육의 메카, 경기도에 사는 분이 제 발로 시골로 들어가신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좌뇌가 이성적인 판단으로 혼란스러워할 동안 우뇌는 잠시 다른 상상에 빠져있었다. 시골집 대문을 열면 노을은 잘 익은 밀밭을 더욱 누렇게 비추고 풀벌레 소리는 고슬고슬 밥 짓는 냄새를 더욱 진하게 한다. 아이들은 집 앞에서 까르르 뛰놀다 밥 먹자는 한 마디에 집으로 달려들어온다. 시끌벅적하면서 평화로운 저녁식사가 끝나면 여유롭게 책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 와중에 좌뇌가 여름의 모기와 겨울의 추위를 끌어들일 때를 노리기는 했지만 실패했다.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 시골에 대한 나의 첫 상상은 이렇게 끝났다. 그리고 나는 다시 현실 속으로 숨어들었다.


2년 뒤 또 다른 지인이 농산어촌유학을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시 우뇌가 스멀스멀 시골 라이프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좌뇌도 동조하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시골로 가는 길이 이렇게 흔한 일인가? 하나도 아니고 벌써 둘이나 시골로 갔네.' 두 지인 모두 한창 학원 다니기 바쁠 초등 고학년 자녀를 둔 가정이었다.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텐데 무엇이 그들을 시골로 이끌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오랜만에 좌뇌와 우뇌가 힘을 합쳤다.


'시골 생활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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