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는 기가 막힌 곳을 찾았다. '바라나시 책골목'이라는 곳이다. 엄청 조그만한 주택 내부가 그냥 북까페다. 인도 음악을 들으며 짜이를 먹을 수 있다. 이런 스타일의 곳을 처음 가본 나는, 처음엔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게 책읽는게 어색했다. 조용히 눈알을 굴리다가 책상에 방명록 종이더미를 발견했다. 조그만한 메모지가 정말 엄청 많이 있었는데, 그거를 한두장 읽다가 울다 웃다 시간을 다보냈다.
어디 술집이나 관광지 식당 가면 있는 방명록에는 보통 '개똥이 왔다감. 우리사랑 영원히. 누구야 건강하자. 등등'의 뻔한 글이 있다. 그런데 이곳의 방명록은...정말이지 하나하나가 작가님이고 인생이다. 겉보기만 봐서는 절대 모를 모든 이들의 속내, 또는 좋은 글구절, 또는 기막힌 그림 등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고민 '부모와 나의 정체성과의 어쩔 수 없는 갈등‘이 적힌 슬픈 글이 있었다. 놀라운건 그 뒷장에 답글이 빼곡하다. 몇개월, 몇년이 지나서 또 모르는 사람들의 응원답글이 아주 여러개가 적혀있다. 원글이가 과연 볼 지는 모르겠지만, 읽던 내 눈이 뻘개질 정도로 답글이 깊고 따뜻했다.
방명록중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북까페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께 감사를 표했다. 그럴만 한게, 이 곳이 그리 돈이 될만한 곳은 아닌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존재 자체만으로 너무 많은 여행객들의 위안처이자 숨쉴 곳이 되어버렸다. 그것만으로 사장님은 죽어가는 영혼 수백명을 살리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아마 덕을 엄청 쌓고 있으셔서 영혼이 되어도 행복하게 사실 것 같다.
방명록 속 많은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고뇌와 희망을 훔쳐보다 보니, 피상적으로 보이는 것들 - 돈, 명예, 정치, 건강, 가족, 소유..- 이 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들 그런 피상적인 말로 삶을 살고 하루를 보내는 것 같지만, 그 속내는 이리 깊고 또 다양하다는 것, 나만 처지는 것도 아니고, 나만 잘난 것도 아니며, 사람 사는 거 이렇게 다양하지만 이렇게 똑같다는 게 그 많은 메모 더미를 보면서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힘주고 살았던 불안과 긴장이 풀리고 너무 편안해졌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내 글벗들은 이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곳 말고도 제주에 좋은 북까페가 많다고 들었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글벗들. 답답할 땐, 또는 일상을 벗어나 환기를 하고 싶을 땐, 한번 낯선 동네의 북까페에 한번 슬쩍 들러보기를. 평안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