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운동하며 군살이 조금 정리된 김에, 과감하게 쨍한 크롭티를 주문해 보았다. 막상 입으니 나이에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민망해서 딸에게 물었다.
“어때? 넘 안 어울리지? 이거 너무 작아서 너에게 어울리겠다. 너가 입을래? “
(원하는 답: 아니 괜찮은데?)
“응. 나 줘. “
“아...그래.”
항상 ‘아니’를 달고 사는 그녀에게 정말 오랜만에 ‘응’이 나왔다는 사실에 난 놀란 나머지, 얼떨결에 “그래”라고 대답해 버렸다. 나른 고심해서 산 옷이었지만, 오래간만에 나온 긍정 제안을 내가 튕기기 싫어서, 나는 그냥 옷을 주기로 했다.
저녁에 아들에게 똑같이 물었다.
“어때? 너무 어색한가?”
(원하는 답: 아니 괜찮은데?)
“뭐가?”
“...”
때론 무관심이 더 나은 순간도 분명 있다. 아들의 대답을 내 방식대로 해석한 나는, 이번엔 진짜 내 크롭티 한 장 더 사야겠다고 용기를 얻었다. 다 자기 해석대로 사는데 뭐 어떤가.
2. 쩍 들러붙는 여름방학이 드디어 지난주에 끝났다. 개학 후 다시 한밤의 라이드가 일상이 되어, 밤에 졸린 눈을 비비며, 큰애를 데리러 갔다. 갑자기 바뀐 패턴에 아들은 지난주 내내 죽상이어서 말 한마디 건넬 틈이 통 보이지 않았다. 난 그냥 운전수였다. 오늘은 무슨 말이 심기를 덜 건드릴까 싶어서, 고심하다 아들이 차에 탔을 때 최대한 가볍고 밝게 물었다.
“야. 벌써 1주일이 지났네. 이제 생활 좀 익숙하지? ”
“응... 근데 익숙해도 피곤한 건 매한가지야.”
나는 빵 터졌다.
“매한가지라니... 그런 단어를 말로 하다니 진짜 신기하다.! “
“아. 방금 국어영역을 계속 풀다 와서 그래. “
ㅎㅎㅎ
ㅎㅎㅎ
오래간만에 근황을 이야기해주는 이 짧은 대화 하나로 난 한주가 엄청 행복해지고, 내 빈 속이 채워졌다. 내내 미소가 나왔다. 나는 이 한마디를 단서 삼아 이 아이의 일상을 마구마구 상상해 본다. 물론 꼬리 질문은 금지다. 이 틈에 파고들었다가는 역풍이 세게 온다. 쿨하게 빠져줘야 한다.
아들은 시험 차분히 잘 보길. 딸은 수학여행 별 탈 없이 잘 다녀오길. 엄마역할, 이 나이 돼서야 내 엄마가 얼마나 많이 내 뒤통수만 보며 나의 하루를 상상하며 살아 왔을지 깨닫는다.
*반전: 이래도 나는 부모님께 행동이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