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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극장 뮤지컬 입덕기-2/2

어쩌면 해피엔딩을 기다리며

by 말자까

따뜻한 현악기와 피아노 연주자들이 먼저 무대에 올라와 앉았고, 무대와 객석의 고요한 정적 후에 극이 시작되었다. 소극장 뮤지컬은 연주자와 배우가 함께 무대 위에서 어우러진다는 걸 처음 알았다. 올리버와 클레어가 주인공이고, 나의 본진 배우는 제임스 역할로 멀티 역을 소화하는 조연배우여서 비중은 몹시 적다고 들었다. 하지만 만화를 찢고 나온 것 같은 그 실체가 진짜 코 앞에서 '우린 왜 사랑했을까'를 노래하며 움직이고 있는 그 광경에, 올리버와 클레어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눈은 공연 내내 제임스만 따라다녔다. 공연 중간에 제임스가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 있는데, 얼마나 또 진지하고 유려하게 연주하는 지, 나는 여기서 깨달았다. 내 덕질이 한없이 깊어질 것 같다는 걸.


공연 스토리 안에는 '제주도'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있고, 제주도의 '반딧불'을 보고 싶다는 구체적 상황까지 나와서 괜히 반가웠다. 전미도 배우는 원래도 뮤지컬계에서는 유명했다고 했고, 이후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의 매체 주연을 맡으며 현재는 누구나 아는 대배우가 되었다. 그 당시에 나는 전미도 배우를 몰랐는데, 어찌 저런 목소리와 사랑스러운 웃음소리를 가지고 있을까 너무 예뻐서 신기할 따름이었다. 올리버 그 자체였던 정문성 배우 역시 당시의 나는 잘 몰랐으며, 이후에 심지어 슬의생을 보면서도 이 분이 내가 과거에 만났던 그 뚝딱거리던 로봇 올리버였다는 걸 아주 늦게야 깨닫게 되고 정말 깜짝 놀랐다.


이 극은 정말 예쁘고도 슬프다. 자첫(공연을 처음 보는 것) 때는 본진에 눈이 팔려서 극의 모든 내용을 담지는 못했기에, 결국 몇 달 후 앵콜공연이 올라왔을 때 자둘(공연을 두 번째 보는 것)을 하게 되었다. 자둘을 결심하게 될 때에는 이미 공연이 많이 입소문을 타서 예매가 꽤나 힘들어졌다. 티켓팅 전쟁 속에 나는 공연장 가장 뒤쪽이자 가장 오른쪽 모퉁이 자리를 힘겹게 얻게 되었다. 내 머릿속에는 어햎(어쩌면 해피엔딩)의 넘버(뮤지컬 속에 나오는 노래들)들이 몇달간 종일 구름처럼 둥둥 모호하게 떠다녔다. 공연이 끝나면 다시 볼 수 없기에, 그 사라져 가는 순간의 기억이 너무나 아쉬웠다.


자둘페어는 '최수진-정문성-고훈정' 배우님이었다. 올리버와 클레어가 주인을 찾기 위해 제주도를 오는 것처럼, 나는 극을 못 잊어서 결국 또 서울로 올라가서 기어코 그 공연장의 가장 뒤 구석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는 심지어 천장이 낮아서 나중에 커튼콜 때에도 온전히 허리를 펼 수 없었던 자리였다. 하지만 자둘매직(공연을 처음 볼 때는 감흥이 없다가, 두 번째 볼 때 갑자기 공연이 나에게 제대로 박히는 그 매직 같은 현상)이 나에게 일어났다. 그 구석쟁이에서 난데없이 공연 중반부터 눈물이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야말로 오열을 하며 눈물 콧물을 마스크 안에 숨기며 진이 빠지도록 울었다.



현실의 상실 속에서 우울감 외투를 너무 무겁게 걸친 나를, 그 극은 그 외투를 벗어도 된다고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뭐가 그리 슬펐을까, 뭐가 그리 감동적이었을까, 뭐가 그리 벅찼을까. 따뜻한 바이올린, 피아노 연주와 배우들의 목소리, 그 행동, 그리고 관객들, 뭐랄까 그 모든 것들이 뒤섞여서 생긴 거대한 덩어리 자체가 나를 매만졌다. 그날의 그 순간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날의 그 순간 나는 따뜻하게 만져졌다. 단순히 배우 실물을 보기 위해 찾아갔는데, 나는 그 극 전체에, 그리고 차차 관극이라는 행위 자체에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간 여러 극을 만나고 감응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내 벨소리와 차량 노래 리스트는 어햎 넘버일 만큼 어햎은 나에게 특히 소중하다.


그런데 올해, 어마어마한 경사가 있었다. 어햎이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영어 버전으로 극을 올렸다는 소식 자체도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는데, 미국의 4대 예술상이라고도 불린다는 '토니 어워즈'에서, 한국 창작뮤인 어햎이 무려 6관왕을 했다는 경사가 정말이지 꿈이라 느껴질 만큼 놀랍고 이루 말할 수 없이 벅찼다. 미국인도 이 어루만짐을 공감한다는 게 벅차고 또 벅찼다. 수상 이후, 어햎은 그야말로 지붕을 뚫어버렸다. 매체에서 어햎 스토리를 창작한 박천휴 작가님의 일상도 볼 수 있고, 이제는 이 뮤지컬 이름을 말하면 왠만한 사람이 다 아는 친숙한 존재가 된 것이다. 정말이지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잘 키운 아이가 세계적인 스타가 된 것 같다고 본진도 인터뷰에 참 자랑스러워하던데, 나 역시 10년전 초연 제임스 역이 바로 내 본진이었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싶을 만큼 어깨뽕이 올라갔다.


올 겨울 어햎이 초연 10주년을 맞아 다시 돌아왔다. 짝짝짝. 이번에는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이다. 이번 시즌에는, 이제 극이 조금 더 커졌다. 또한 감사하게도, 그 시절의 배우들이 '특별출연'하는 회차도 몇 번 포함이 되었다. 내 본진도 제임스로 돌아와서 특별출연을 몇 번 한다. 극이 성장한 만큼, 티켓 구하는 일은 이제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이건 더이상 창작소극장 뮤의 소소한 티케팅이 아니다. 정말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마침내 나는 내가 엉덩이를 붙일 자리를 딱 하루 택일받게 되었다. 아직도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어리둥절하다.


관극하려면 아직 한 달도 넘게 남았는데, 나는 10년 전 그때처럼 이미 너무너무 설렌다. 뮤는 캐스팅 발표부터 막공까지 그 축제같은 설레임이 끝도 없이 지속되는 마력이 있다. 매번의 디테일이 다르고 페어에 따른 분위기가 달라서 덕구들은 회전문(같은 극을 n회차 계속 보는 관극형태) 을 돈다. 나는 극장에 입장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사실 영광인데, 그 시절 제임스와 올리버와 클레어 배우가 모두 다시 돌아온다니, 정말 자다가도 번쩍 눈이 떠질 만큼 설렌다. 박천휴 작가님의 일상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 덕분에 나는 어햎이 어떻게 스토리가 만들어졌고, 어떻게 극까지 올라오게 되었는지 보다 상세히 알게 되었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음악과 창작극을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혜화의 흔한 덕구 한 마리가 되어버렸다.(성장했다고 표현하고 싶다.) 본진은 감사하게도 여전히 가열차게 여러 극에 임하고 있으니, 나 역시 쉴새없이 가열차게 덕질 중이다.


미래의 나는 또 어떻게 되어 있을까. 스스로의 한계와 그 길을 끝없이 고민했다는 박천휴 작가님의 긴 인터뷰 영상을 보다 보니, 정말 인생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시골의 내 영역에서 말(horse)만 보며 살던 내가, 난데없는 교통사고 같았던 우울 덕분에 덕질을 시작했고, 부지런하게 다채로운 활동을 꾸준히 하는 본진 덕분에, 나 역시 음악도 스토리도 하나씩 눈을 뜨며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시골쥐 뮤덕구로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큰 그림이 되어서, 혹시 내가 나중에 뮤지컬이든 드라마든 그 스토리와 음악을 직접 고르며 창작하는 대작가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신나는 공상도 해보며, 나는 어쩌면 해피엔딩일 그 모든 가능성을 일단 열어본다.


내가 이 세계를 모른 채 죽었다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등골이 서늘할 정도다. 사람의 감정을 이렇게 직관적으로 감성적으로 여러 감각을 동원해서 펼칠 수 있는 예술이 또 있을까? 뮤지컬, 특히 사람 사이가 특히 가깝고 호흡을 같이 느낄 수 있는 소극장 뮤지컬, 나는 AI 가 본격화되는 시대에는 오히려 사람들이 더 그리워하는 마지막 남은 공간이 어쩌면, 웃음과 눈물과 땀이 가득 밀집되어 있는 혜화의 여러 작고 허름한 공연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배우와 객석이 직접 눈을 맞추고 느끼며 만들어가는 표현할 수 없는 진한 감정 교류는, 더 가까울 수록, 더 밀집할 수록 더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대학로 상권이 점점 무너지고, 창작극의 제작 여건은 늘 어렵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와 객석, 음악과 환호와 눈물이 뒤섞인 그 에너지, 창작 예술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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