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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성환 May 11. 2022

팀장도 똑같이 두렵다

그래도 두려움을 분노로 표현하진 말자

"팀장님 큰일 났습니다."


막내 팀원이 초점 없는 눈과 창백한 얼굴로 와서는 이야기했다. 뭔지는 몰라도 그의 표정을 보는 순간 내 심장박동수도 올라갔다. 난처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팀원에게 나도 덩달아 불안한 마음을 드러낼 수도,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다른 팀에서 알면 안 되는 정보가 담긴 대외비 문서를 실수로 첨부하여 다수의 다른 팀원들에게 메일로 발송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악용하거나, 문제 삼아서 이 사실이 퍼지면 우리 본부의 구성원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블라인드' 같은 곳에 올리면 공격당하기에 딱 좋은 소재였다.


"야, 정신이 있는 거야? 그런 내용은 수신자 확인하고, 첨부파일도 잘 봐야지, 일을 왜 이렇게 어설프게 해"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대신, 침을 삼키고 숨을 내쉬었다.


실무를 많이 해본 팀장들은 팀원들의 실수에 동병상련을 느낀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그 순간 예전에 비슷한 실수를 했던 주니어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사원 때였던 것 같다.
엑셀 파일 내에 작업용 시트를 포함해서 작업하다 Key값을 맞추기 위해서 민감정보들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작업이 끝나면 이를 지우고 저장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대로 메일을 발송했다. 다행히 친한 동료가 빨리 발견하고 알려주었지만, 이미 메일은 퍼지고 난 후였다. 빨리 수습을 해야 했다.

팀장에게 보고하러 가는 그 짧은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났다.

'컴퓨터가 이상했다고 할까?'
'보고하지 말고 뭉개 볼까'
'아 썅, 그냥 그만둬버릴까'


막내 사원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온갖 생각을 하면서 왔을 것이다. 그래도 숨기지 않고 빨리 이야기해 주어서 다행이라고 나 스스로에게 위로했다. 놀란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웃으며 이야기했다.


"와,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너도 그런 실수를 하는구나. 예전에 나도 너랑 거의 같은 실수를 했어. 신경 쓴다고 했는데도 말이야, 그때는 나 때문에 회사 망하는 줄 알았는데 망하지는 않더라.
우선 빨리 수습하는 게 먼저겠지?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아? IT부서에 연락해봤니?"


이렇게 말하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래도 질책은 하지 않았다.


질책을 받을수록 더 긴장되고 생각은 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기가 다른 팀원에게도 전파되어 누구도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지 못할 테니까.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빨리 문제를 수습하고 이런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한 프로세스를 만들고 공유하는 일이었다.


몇 년 전 일인데,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IT부서에 연락해서 회수하고, 메일을 읽은 분들께 팀원 전원이 나누어 연락해서 양해를 구했던 것 같다. 다행히 회사가 망할 정도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조치했다고 팀원들은 해이해질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원팀이 되었다. 수습을 다 하고 고기를 먹어서였는지도 모르지만.




'굿 피드백, 팀장은 팩트로 말한다'(플랜비디자인)에서는 격을 높이는 피드백 스킬로 '상대의 기분을 알아차리고 관리하는 감정 센스'를 소개한다.


"피드백에 앞서 먼저 지금 자신의 기분이 어떤지 점검하라. 부정적 감정이 올라온다면 피드백을 할 때가 아니라 멈춰야 할 때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자신의 마음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팀장도 당연히 두렵다.

모든 것을 해결할 힘도 능력도 없다.

두려움이 올라오면 순순히 그 감정을 인정하고 잠시 멈추자. 차분하지만 신속하게 팀원과 생각을 나누고, 필요하면 도움을 구하자.

우리 모두는 팀장과 팀원이기 전에,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보내고 싶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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