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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탄생

우리 아들이 천재인 것은 아니지만

by 허니스푼

이전 글에 아이들이 꽃처럼 피어나고 있다고 썼다. 중학생 고등학생, 한창 사춘기의 아이들이 어떻게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걸까? 기대치를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아이들이 피어나는 게 보인다.


오늘은 오랜만에 둘째에 대해서 쓴다. 나의 예전 글들을 보면 아이들 악기 가르치다가 실패한 이야기, 그리고 수학에 재능있어 보이던 둘째의 선행교육이 잘 안 된 이야기들이 종종 있다. 나는 이 아이가 어려서부터 공부머리가 있다고 느꼈다. 머리가 좋다는 뜻과는 다르다. 우리집 첫째는 머리가 좋지만 공부머리가 있다고 느낀 적은 없었으니까.


나는 공부머리 = 새로운 것들을 더 알려는 호기심, 그리고 그 새로운 정보들을 체계적으로 머리에 넣는 논리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건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공부를 잘하고 싶은 강한 의지'가 있을 경우 타고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익힐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둘째는 공부머리는 있는데 그걸 받쳐주는 멘탈이 부족했다. 약간의 완벽주의 + 불안함. 전학을 여러 번 다닌 것도 이유가 되었을까? 미국에서 가장 위상이 낮은 아시안 남아라는 것도 이유였을까?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신경질을 잘 냈고, 체격이 작고 운동을 싫어했으며, 집에서 간식 먹으며 게임하는 걸 가장 편안해했다.


그래서 뭘 더 시키지 않았다. 공부도 더 시키지 않았다. 초등 저학년 때 배우던 피아노도 그만뒀다. 운동은 종목을 바꿔가며 계속 시켰지만 그건 하루에 최소 한 시간은 집 밖에 나가 움직이라는 것이었지 성과를 내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결국은 다 그만뒀다. 아이의 그릇보다 넘치게 부을 수 없었다.


첫째가 중학생이었을 때 내가 중학교 시절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건 “다양한 관심사를 시도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아가는” 것이었다. 장래 직업을 정하거나 대학교 전공을 고르라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중학교 때는 이것저것 하고 싶은 대로 다양하게 시도하다가 고등학교 때 4년 동안 꾸준히 계속할 활동으로 연결하기를 바랐다.


둘째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6학년) 학교 밴드에서 색소폰을 시작했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수준이 너무 허술해서 개인 레슨을 붙여주었다. 7학년이 되면서 학교 밴드 선생님이 바뀌었는데, 바뀐 선생님의 영향인지, 개인 레슨이 효과를 보기 시작하는 것인지, 밴드 친구들의 영향인지 아이가 음악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매일, 주말에는 하루에 몇 시간씩 음악을 연습하는데, 본인 악기인 색소폰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트럼펫을 독학하고 잘 치지 못하는 피아노를 뚱땅거린다. 트럼펫을 어느 정도 익히고 나면 클라리넷도 독학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나로서는 음악을 직접 탐험하며 스스로의 영역을 넓혀가는 건 좋지만 생산성이 좀 떨어지지 않나, 그냥 색소폰을 집중적으로 연습해서 실력을 확 올리고 성과를 내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얼마 전 봄방학 때 아이들과 함께 뮤지컬 영화 <해밀턴>을 봤다. 한동안 아이들이 완전히 빠져서 해밀턴 노래만 계속 불러댔고 나도 카 스테레오에 CD를 걸어두고 매일 출퇴근길에 듣고 있다.


<해밀턴>은 첫 노래를 들었을 때부터, 반복해서 들을수록 더욱, 아 이 뮤지컬은 천재가 만들었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내용 형식 소재 전부 다. 해밀턴의 비천한 출신, 치열한 인생, 화려한 부상, 그리고 쓸쓸한 몰락까지 린 마누엘 미란다는 잊혀진 역사 속 인물을 현대 미국에 완벽하게 되살려 냈다. 해밀턴의 뛰어난 능력과 치명적인 단점, 그리고 그가 남긴 영원한 유산을 유색인종 배우들이 부르는 힙합과 랩이라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서로 연결되지 않는 것들을 가져다가 솜씨 좋게 이어붙여 완전히 새롭고 멋진 것을 만들어내 한 시대를 흔드는 게 바로 천재 아닌가.


물론 우리 아이가 린 마누엘 미란다 같은 천재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나는 그래도 이게 인재를 키우는 토양이라고 생각한다. 2년 전 이맘때 <Range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라는 책을 읽고 감상문을 썼는데 그 때부터 이미 같은 생각이었다. 아이들은 반듯하고 검증된 일직선의 성공가도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이리저리 에둘러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자기 자신의 길을 만들어갈 때 인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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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좋지만 야심도 부족하고 끈기도 없는, 관심가는 것들을 이리저리 건드려 보다 마는 자식을 둔 부모의 정신승리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내 인생을 살아 봤고, 그래서 조금은 거리를 두고 아이의 인생을 바라볼 수 있다. 그 마음의 여유가 내가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부모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며칠 동안 아들은 제2외국어 불어에서 추가 점수를 받겠다며 벼락치기로 불어로 된 시를 하나 외우고 있다. 폴 베를렌의 <가을의 노래>인데, 서둘러 외우느라 제대로 못하니 선생님이 내일까지 하루 더 여유를 주셨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괴롭다. 일단 발음이 너무 나쁘고, 시의 문법과 단어를 공부해서 전체 구조와 내용을 파악해야 쉽게 외워지는데 마음이 급하니 그건 다 뛰어넘고 모르는 말을 닥치는 대로 반복하고 있다. 외워질 리가. 붙들어 앉혀놓고 한 구절씩 해석시키고 따라 읽으라고 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중이다.


아들이 불어에 관심은 있는데 미국 학교에서 배우며 듀오링고로 익히니 발음도 문법도 어휘도 엉망이다. 그렇지만 불어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엄마가 섣불리 가르치려 나서면 찬물을 끼얹는 것. 내가 인생에서 갈고닦은 것들을 아이에게 다운로드하려 들지 말아야지. 중요한 건 불어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돌고 돌아가는 과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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