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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의 무난한 행복

내려놓으니 생활의 질이 올라갔다.

by 허니스푼

나이도 그렇고 신체의 변화도 꼼짝없이 갱년기를 맞는 중이고 집안의 아이들은 한창 사춘기를 지나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의 행복도는 매우 높아서 이건 꼭 기록해 두어야겠다. 언젠가 이 글을 다시 보며 힘을 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므로.


남편은 작년 여름에 직장을 그만두고 1년 4개월째 집에 있다. 남편의 고연봉이 끊겼으니 좋아할 일은 아니다. 20여 년 간 일중독자처럼 일하던 남편은 지쳤는지 다시 취직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는 남편이랑 하루종일 집에 같이 있는 것에 적응해야 했다. 다행히 풀재택으로 일하던 내가 봄부터 주3회 사무실로 출근하게 되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좋은 점이 더 많다. 먼저 우리는 더 이상 고소득 가정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히 2-3년 동안 남편 앞으로 회사에서 약간씩 나오는 지급유예 보너스가 있고 내가 버는 돈이 있어서 걱정 없이 생활을 꾸려갈 수 있다. 딱 그 정도다. 걱정 없이 생활을 꾸려갈 정도. 유럽여행이나 집안 인테리어, 또는 사립 고등학교나 대입 컨설턴트 같이 큰 돈 드는 일들은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이전에는 우리는 고소득이지만 아이들에게 물려줄 정도의 자산은 없어서 종종 불안했다. 아이들이 우리보다 잘 살 수 없을까 봐. 지금의 풍요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나약하게 자란 후 본인들은 고연봉을 받지 못하면 불행해질까 봐. 그때마다 아이들에게 "우리는 부자가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로 편안히 살면서 부자가 아니라고 아이들에게 강조한다니 이게 무슨 모순인가? 그렇지만 아이들이 우리를 부유하다고 착각하고 인생관이 느슨해질지 모르니 "우리는 부자가 아니야" 라는 말을 꼭 해야 했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충분히 가진 게 많아" 라고 말할 수 있다. 예민한 중고등학생 시절에 아빠가 직장을 그만두고 매일 집에 있는 걸 본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집안의 경제 사정에 대해 궁금해하고 가끔은 불안해하며 쓸데없이 돈 많이 드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혹시 아빠는 언제 다시 취직하는지, 우리는 집세를 낼 수 있는지, 대학은 갈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아이들에게 "걱정 마라, 우리는 이 집을 잃지 않고 식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너희는 대학을 갈 수 있어. 우리는 여전히 가진 게 많아." 라고 말하며 감사를 느낀다.


소득은 줄었지만 그대신 집안에 어른 한 명 분의 시간과 노동력이 늘어났다. 그걸 돈으로 환산한다면 상당한 액수였을 것이다. 아니, 나만 조금 더 부지런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테니 내가 무리해서 다 하려 했겠지. 특히 내가 출퇴근을 시작한 후로, 누군가가 집에 있으면서 아이들 라이드를 도맡아 하고, 강아지를 하루 세 번씩 산책시키며, 설거지라도 틈틈이 하고 있다는 게 큰 도움이 된다.


남편이 집안일을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아이들의 일상을 직접 겪는 것이다. 남편은 직장에 다닐 때는, 내가 아이들에 대해 하루종일 관찰하고 경험하고 고민한 내용을 틈나는 대로 남편에게 가르친다는 느낌이었다. 가끔은 말로 설명하기 너무 귀찮거나 아무리 설명해도 전달되지 않는 것이 있어, 손가락을 남편의 머리에 가져다 대고 아이들에 대한 모든 것을 다운로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다.


남편은 처음에는 고등학생 딸과 자주 싸웠다. 보다 못해 딸 라이드는 내가 하겠다며 남편을 못 나서게 한 적도 여러 번이다. 어느 날 갑자기 매일 종일 집에 있게 된 50세 한인 교포 직장인의 눈에는 16세 미국 고등학생 여자애의 말투, 옷차림, 친구관계, 스마트폰 모든 게 못마땅했으니까. 본인은 야단을 쳤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보기엔 시비였다. 아침 등교길에 욱해서 소리지르고 오후에 후회하고, 오후 하교길에 또 욱해서 소리를 지르고 저녁에는 후회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남편이 아이들에 대해 현실적인 눈높이를 갖기 시작했다. 판단하지 않고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그때부터 내 삶이 훨씬 가벼워졌다. "도대체 그동안 아이들을 어떻게 키운 거야?" 같은 망언이 싹 사라졌다. 참 이상하게도, 아이들에 대해서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다가도 남편이 아이들을 까대기 시작하면 아이들보다 남편이 꼴보기 싫다. 아이들은 완벽한 존재가 아닌데, 그 아이들을 여기까지 끌고 오는 데 본인은 도대체 무슨 기여를 하고 무슨 고민을 했다고 이렇게 남일처럼 아이들을 후려치고 나를 깎아내리는가. 이제는 이런 일이 사라졌다.


결국 나의 생활은 많이 소박해졌다. 한때 잘나갔지만 지금은 평범한 남편, 뾰족한 성취 없이 평범한 아이들, 전업과 취업을 반복하며 파트타임 계약직으로 이어온 커리어, 생활하기에 충분한 딱 그만큼의 가계소득. 그러나 많이 벌어 많이 쓰는 대신 적게 벌어 적게 쓰는 가계로, 많이 투자하고 많이 기대하는 대신 적게 투자하고 적게 기대하는 육아로, 생활의 규모를 다이어트하니 생활의 질이 높아졌다.




가정생활과 육아 사이에 좌초해서 불행해지지 않으려고, 아니 도대체 그걸 둘러싸고 여자의 삶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고 싶어서 관련 서적을 많이 읽은 편이다.


<엄마는 미친 짓이다 Perfect Madness>(2005)와 <타임푸어 Overwhelmed>(2014)가 십 년에 한 번쯤 나오는 대표작. 그 사이에 전세계 모든 고학력 엄마들 사이에 한바퀴 돌았을 아틀란틱의 전설적인 기사 <Why Women Still Can't Have It All>(2012)이 있었고, 가장 최근에는 저자에게 결국 노벨 경제학상을 안겨준 <커리어 그리고 가정 Career and Family>(2021) 까지 읽다 보니 어느새 20년이 지났다.


지금의 기준으로 옛날 책을 다시 읽으면 어떨까 싶어서 시간을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엄마는 미친 짓이다>와 <타임푸어>를 다시 읽었는데, 스마트폰이 아예 없었던 2000년대 초반에도 지금과 모든 것이 똑같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미국 중산층은 가파르게 오르는 주거, 보육, 교육비로 허덕이고, 각종 플레이데잇과 액티비티를 기획하고 쫓아다니며 엄마들은 어려서부터 아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통제하게 되고, 그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점점 더 이기적이고 연약해져 간다고 20년 전 책에서 저자는 한탄한다.


불안을 기반으로 한 극성육아는 지난 30년 동안 미국 엄마들을 일과 가정 사이에서 미치게 했는데, 이는 단순히 엄마들이 욕심을 내려놓고 치맛바람을 부리지 않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스마트폰을 안 사주면 요즘 아이들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중산층이 무너지고 내 세대 뿐 아니라 자녀 세대까지 경쟁은 무한대로 심해지는 세상에서 부부 두 사람이 가정과 자녀양육의 모든 책임을 오롯이 떠맡아야 한다는 것이지만,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비판함으로써 개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니 나도 다 알면서도 이 물결 속에 휩쓸려 살아온 것이고. 그냥 휩쓸리며 고통스러워할 수 없어서 각종 책을 읽으며 상황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 거고.


그렇게 예전 책을 다시 읽다가 지금 내가 느끼는 행복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 가족을 물질적으로 부양하면서, 동시에 아이들에게 충분한 관심과 보살핌을 줄 수 있다.적절한 수준의 집안일과 직장일 사이에 충분한 여가를 낼 수 있어, 책을 읽고 악기를 배우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면서 살고 있다. 성인 여성으로서 누리는 인간다운 삶이다.


남편이 고연봉일 때는 내가 버는 게 하찮아서 의미를 찾기 어려웠지만,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면서 내 경제적 기여의 의미가 커졌다. 아이들은 나이가 들어 손이 덜 가기도 하지만, 물리적인 라이드와 사춘기 아이들을 상대하는 정신적인 육아를 남편과 같은 눈높이에서 공유하니 내게 몰리는 부담이 줄었다. 그렇게 남긴 시간과 에너지를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하는 데 매일 조금씩 쓸 수 있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완벽한 균형을 가진 삼각형이 되었다. 욕심을 부려 삼각형의 크기를 키울 생각은 없다. 한 변이 너무 길어지면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른 변도 길어져야 하고, 그렇게 큰 삼각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이 들어야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내려놓아서 행복해졌다.


하지만 내려놓기가 쉽지는 않다. 남편은 회사를 그만두고서야 멈출 수 있었고, 아이들은 공부도 예체능도 그저 그래서 쉬이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사라져 버린 내 꿈과 커리어를 인정하는데도 여러 해 걸렸고.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꽤 컸고 내집을 마련하고 어느 정도 저축도 한 다음이니, 내려놓을 만한 여유가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내 앞에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인다. 그 안에서 이런저런 재미와 의미를 찾으며. 그러다가 적당히 작고 균형잡힌 삼각형이 만들어진 순간이 왔다.


이게 지속되는 동안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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