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025년 1월의 기록

연말 여행과 1월에 읽은 책들

by 허니스푼

크리스마스-연말 여행을 하와이로 다녀왔다. 아름답고 좋은 곳은 많지만 하와이는 특별했다. 그곳의 바람, 햇살, 파도는 사람을 기분좋게 하는 최적으로 맞춰져 있는 듯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9시간의 비행은 마치 천국에서 지상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고, 돌아온 뉴저지는 싸늘하고 황량했다.


더 이상 나의 통제가 먹히지 않는 십대 아이들을 키우는 무력함과 매일 재택으로 혼자 일하는 막연함 속에서, 2025년 땅에 발을 붙이고 힘내서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


1. 2024년 신춘문예 당선소설집: 나는 단막극 드라마를 좋아한다. 한 시간의 짧은 상영시간 속에 완결된 이야기와 여운이 남는 감정. 단편소설도 그렇지 않을까. 신인 작가들의 에너지가 반짝반짝 빛나 밤을 비추어 줄 것을 기대하며 매일 밤 침대에 누워 몇 편씩 읽었다. 재미있게 읽긴 했는데 소재가 다 너무 비슷했다.


취업 안되는 청년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연인들, 작업조건 및 주거조건이 나쁜 젊은 부부들. 그리고 노인들. 홀로 죽어가는 노인들, 요양원에서 투병하는 노인들, 치매에 걸린 노인들, 병들어 자식에게 짐이 되는 노인들. 그리고 불우하고 가난한 어린시절. 24편의 소설 중에 덤프트럭 기사인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는 설정만 최소 두 편 이상이었다. 요즘 한국에서 사는 것이 그렇게 암울한 것일까, 아니면 요즘 소설들이 선호하는 소재와 흐름이 이런 것일까?


2. 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 지음): 작년 내내 들고만 있던 책을 이제야 끝냈다. 읽고 싶은 마음 절반, 읽기 싫은 마음 절반이라서 오랫동안 붙들고만 있었다. 술술 읽히는 책이다. 초반에는 핸드폰과 인터넷에 꼼짝없이 매여버린 우리의 정신상태를 충격적으로 묘사하고, 중반에는 개인의 의지 수준으로는 감당할 수 없이 우리의 두뇌를 하이재킹해버린 거대 테크기업들의 시스템을 폭로하고, 후반에는 우리가 정신적인 면역력을 잃고 테크기업들에 속절없이 끌려가게 된 배경을 점검한다.


현대사회가 주는 만성적인 스트레스, 일에 매인 과로 사회, 값싸고 자극적인 가공식품, 그리고 신체적, 심리적으로 자유로이 놀지 못하는 아이들. (마지막의 아이들 부분은 또 하나의 베스트셀러인 "불안 세대 (조너선 하이트 지음)"와 연결된다. 작년에 그 책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가 서문만 읽고 그만뒀다. 문제의식에는 너무나 공감하는데 그래서 도대체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라는 건지 내 마음에 부담만 백배로 더해서.)


이 책도 그렇다. 구구절절 공감해서 형광펜으로 줄을 치며 읽었지만 다 읽고 책을 덮은 마음은 편치 않다. 첫 번째 이유는 작가가 대안으로 제시한 방법이 너무 막막해서다. 역사 속에는 흑인 민권운동이나 페미니즘 운동, 노동조합 운동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 정부에게 법률과 정책을 바꿀 것을 오랫동안 요구하여 성공적으로 변화를 가져온 사례들이 있다. 그러나 내가 그 한가운데에 있을 때는 이 싸움이 너무나 막막하게 여겨져서 내가 오늘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과연 이게 변하기는 할지, 아니면 혹시 내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연 알 수가 없다.


혹시 내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게 바로 내가 마음이 편치 않은 두 번째 이유다. 기술이 너무 발달해서 젊은 사람들은 배움과 교제와 휴식의 모든 필요를 영상과 문자로 해결하는 것 같고, 세상은 더 많은 정보를 더 빨리 유통하고 더 많은 물건을 끊임없이 생산하여 어느 쪽에는 무한한 돈이 몰리지만 다른 쪽에는 지구가 망가지는 요지경이 되었다. 아니 지구가 망가지기 전에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것 같다. 운동부족과 불안은 이제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흔한 현상.


그런데 이게 세상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내가 나이들어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부족하고 세상의 흐름을 못 따라가는 노화의 문제라면? 내게 익숙하지 않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요즘 세상의 것들이 영 못마땅하니, 책이며 기사며 내 구미에 맞고 내 불안을 부추기는 것들만 계속 읽으며 맞아맞아 그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책을 다 읽었는데도 후련하지가 않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10월 하순부터 트위터 활동을 거의 접었고 핸드폰 금고를 장만해서 밤에는 핸드폰을 가둬두고 보지 않는데도 몸과 마음에 뭔가 달라졌다는 느낌은 별로 없다. 집중력이나 생산성이 늘어난 것 같지도 않고 에너지 레벨이나 행복의 느낌 또한 그대로다. SNS 좀 안하고 핸드폰 좀 안봐도 나아진 게 없다.


마치 인터넷과 핸드폰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모든 것이 좋았던 옛날로 돌아갈 것 같지만,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인터넷이 없었던 내 젊은 시절이고, 문제는 나의 노화일 뿐 인터넷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와이가 그립다. 자유로움과 새로움을 느낄 수 있었던 어떤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돌아온 곳에는 언제나 지루하고 끝나지 않는 일상이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