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은 것도 끝이 있다.
2월 프레지던트 데이 연휴 동안 버몬트의 킬링턴 스키장에 다녀왔다.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산장 호텔이 있어 같은 곳에서 삼 년째다. 이전에는 5박6일로 충분히 일정을 잡았는데, 이번에는 연휴가 길지 않아 3박4일이었다.
일년에 한 번 가족의 전통이라 여기고 들뜬 마음으로 네 시간 거리를 달려갔는데 올해 스키여행은 좀 아쉬웠다.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도 속편 넘어 3편까지 만들면 평범해지는 법. 겨울의 가족 스키여행을 종료해야 할 날이 때이르게 찾아와 버린 것일까?
우리가 도착한 다음 날부터 24시간 동안 눈이 왔다. 겨울 산속에 눈은 무섭게 쌓였다. 말로만 듣던 파우더 스노우. 그런데 파우더 스노우를 즐기는 건 고급 스키어들에게만 해당되는가 보다. 초중급의 우리들에게는 채 굳지 않은 눈밭에 발이 푹푹 빠져서 스키를 타기도 부츠 바람으로 걷기도 어려웠다.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스키를 타는데 막막했다. 나는 원래도 스릴이나 스피드보다는 겨울 산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으로 스키 타고 유람하는 느낌을 좋아했다. 고글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혼자가 되어 겨울 산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고독한 자유. 그런데 올해는 자유로움보다 조난당할 듯한 두려움이 더 컸다. 물론 슬로프에서 다칠 수는 있어도 조난당할 일은 없다. 그런데도 펑펑 쌓이는 눈에 시야는 희미해지고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내 인생에 섀클턴의 남극 탐험에 가장 가까운 경험이 지금 이것이 아닌가 싶었다.
다음날은 더 나빴다. 눈은 그쳤는데 강풍이 불었다.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 대부분의 리프트가 운행을 중단했다. 리프트가 줄어드니 이용할 수 있는 슬로프의 조합도 줄었다. 재미도 없는데 너무 추웠다. 추운 바람을 맞으며 눈 위에서 어느 쪽 슬로프로 갈지 망설일 때마다 조난당해 동상에 걸리는 이야기들만 떠올랐다. 몇 년 전에 인상깊게 읽었던 데이빗 그랜의 <궁극의 탐험>, 그리고 수잔 레드펀의 <한순간에>를 계속 생각했다.
<궁극의 탐험> 20세기 초반의 남극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을 평생의 롤모델로 삼았던 사람이 백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자취를 따라 하나하나 그의 탐험을 재현하다가 남극 횡단을 눈앞에 두고 결국 죽는다. "지옥은 추운 곳이다" 라는 소제목에 섬뜩했던 기억이 난다.
<한순간에> 열한 명의 일행이 눈오는 험한 산속에서 조난당한다. 누구는 죽고, 누구는 크게 다치고, 누구는 동상으로 신체 일부를 잃는다. -- "사람들은 불에 타죽는 게 최악의 죽음이라고들 하지만, 아니야. 얼어 죽는 건 불에 타죽는 것보다 더 끔찍하고 훨씬 오래 걸리거든. 온 몸 전체가 한 번에 세포 하나씩 차례차례 얼어가는 동안 너무 고통스러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어쨌든, 내게도 그다지 신나는 스키가 아니었는데 우리 딸에게도 그랬다. 춥기도 했겠지만 엄마랑 동생이랑 같이 타는 스키가 시시했던 것 같다. 스키 스쿨에 넣자니 열 살 언저리의 어린 아이들 뿐이라서 유치하고, 엄마랑 동생이랑 타자니 조금 가다 멈춰 기다리고 다시 가다 멈춰 또 기다리니 재미가 없고, 혼자 타자니 그럴 거면 여기까지 왜 와서 추운 겨울에 무슨 고생이람.
함께 온 일행들 중 실력 좋은 어른들이 몇 명 있어 고급 슬로프에서 앞장서 인도하고 같이 온 친구들이랑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며 떼지어 스키를 타야 실력도 늘고 재미도 있을 텐데, 아쉽게도 우리 부부는 그런 기회를 제공할 수가 없다. 우리의 스키 실력도 미천하고, 주변에 같이 스키 여행을 다닐 가족들도 마땅치 않아서.
작년까지는 스키 스쿨에서 배우고, 엄마랑 동생이랑 같이 스키 타고, 밤에는 온가족이 호텔 로비 난롯가에 모여앉아 보드게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는데, 갑자기 아이가 그것보다 쑥 자라버렸다. 스키의 재미는 줄었는데 날은 고되고 추우니 더 의미가 없었겠지. 딸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차피 아빠는 스키를 타지도 않는데, 우리 이거 타자고 네 시간씩 운전해서 올 가치가 없는 것 같아."
나랑 딸이 둘 다 스키여행의 즐거움에서 깨어나니 갑자기 허무해졌다. 남편은 스키를 타지 않지만 가족들의, 가족들과의 즐거움을 위해 기꺼이 오는 사람이라서 우리가 즐거움에서 벗어나면 그도 마찬가지. 나흘만에 집에 돌아가는 길이 아쉽거나 뿌듯하기보다는 살짝 다행스럽다는 걸,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는 걸, 서로 알면서도 티는 내지 않고 조용히 집에 돌아왔다.
우리가 내년에도 이 산장호텔에 돌아올까?
문제는 13살 아들은 아직 스키여행이 즐겁다는 것이다. 나와 반대로 일 년만에 이 아이는 스키 실력이 더 늘었다. 그동안 스키를 탄 것도 아닌데, 몸이 커지고 움직임이 좋아지니 스키 실력도 저절로 느나 보다. 담력도 더 좋아져서 아들은 이제 작은 봉우리에서 점프도 하려고 든다. 이 아이만 분위기 파악을 못한 채 "바이바이 킬링턴! 내년에 또 보자!" 를 외친다.
내년 겨울에는 어떡하나. 아직 자기의 때가 다 지나지 않은 둘째를 위해 온 가족이 다시 와야 할지.
내년 크리스마스까지 10개월의 시간이 남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을까. 아이들이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어떤 기회가 생기기를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