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카페인, 주말에는 알코올
출근을 시작한 지 6주가 지났다.
출퇴근 일정은 빡빡하지 않다. 주3회 사무실에 나가고 오후 4-5시 사이에 집에 돌아온다. 나머지 시간은 재택근무. 다행히 남편이 하루종일 집에 있어서 아이들 일상에 구멍은 나지 않는다. 통근길은 운전해서 3-40분 정도인데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 내내 집중하고 일만 해서 그런지 집에 돌아오면 지쳐 있다.
돌아오면 잠시 쉬거나 남편하고 수다를 떨고, 날이 좋으면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나서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둘째는 평일에는 따로 라이드가 없고 첫째만 매일 저녁 액티비티가 있는데 밥은 내가 운전은 남편이 한다. 첫째가 보통 6시-6시 반 사이에 나가기 때문에 저녁을 일찍 먹는다. 아이를 보내고 나서는 플룻연습, 또는 수영장에 다녀온다. 둘 다 하는 날도 있다. 틈틈히 설거지를 하고 부엌을 정리한다. 아이가 9시 또는 10시에 집에 돌아오면 배고파해서 남은 저녁을 또 한 번 차려 주기 때문에 부엌을 닫는 시간은 꽤 늦어진다.
밤에는 책을 읽다가 자는 건전한 날이 있고 넷플릭스를 보다가 자는 방탕한 날이 있다. 넷플릭스를 보는 것 자체는 괜찮은데, 드라마를 보다가 자리에 누우면 빨리 잠이 안 오고 누워서 또 전화기를 보게 되니 방탕해진다.
목요일 쯤엔 와인을 한 병 딴다. 와인잔을 옆에 두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책상에 앉아서 잡무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넷플릭스를 본다. 남편이랑 나눠 마시는데 내가 2/3, 남편이 1/3 정도 마신다. 홀짝홀짝 와인 한 병을 비울 때쯤이면 주말이 끝난다.
사는 낙이 이 정도다. 직장일과 밥해먹고 치우는 걸 마치고 나서 의욕이 날 때는 플룻 불고 수영하고 뿌듯해하기. 그리고 의욕이 안 날 때는 책 읽고 드라마 보는 것.
올해는 대하소설 <화산도>를 읽고 있는데 총 12권이라서 한 달에 한 권씩 읽고 있다. 4월에는 아이들 봄방학 동안 좀더 집중할 여유가 나서 구병모의 <파과>와 백수린의 <눈부신 안부>를 읽었다. 그리고 서유미의 <끝의 시작>. 작년 봄방학 때 읽었는데 4월에 너무 잘 어울리는 소설이라서 이 달이 가기 전에 다시 읽었다. 드라마는 6부작 <악연>을 한 주말 동안, 16부작 <폭싹 속았수다>를 2주일에 걸쳐 봤다.
아침에는 커피 없이는 잠이 안 깨고 몸이 처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침에 뜨거운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을 뽑아 오전 내내 마신다. 스트레스를 받은 날에는 오후에 던킨에 들러 우유와 설탕을 넣은 차가운 아이스커피를 마시는데, 정신을 번쩍 들고 기분이 좋아지는 게 카페인의 힘인지 사각사각 씹히는 설탕의 힘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던킨 아이스커피도 어느새 인이 박여 요즘에는 효과가 예전같지 않아서 자제하는 중이다. 의지를 발휘해 자제하는 건 아니고, 마셔도 스트레스는 사라지지 않고 혈당 오르는 느낌만 나니 돈 $3.51이 아까워서 덜 마시게 된다.
낮에는 카페인, 주말에는 알코올의 힘으로 살고 있다.
플룻과 수영은 하고 나면 기분이 좋지만 안하면 못 배기는 정도는 아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습관이 들지 않는다. 어차피 이제는 나 자신을 계발해서 인생을 더 나아지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별로 없기 때문에 굳이 습관을 들이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의지력도 에너지라서 함부로 쓰지 않는다. 그냥 내게 해당되는 최소한의 수준 또는 기준을 자연스럽게 지키며 산다.
나는 이렇게 물처럼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지만 아이들은 한창 꽃처럼 피고 있다. 우리집의 에너지는 다 아이들로부터 나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