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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희 Nov 16. 2022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삶의 마지막을 함께해줄 사람

아름다운 죽음

평소에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하고 눈여겨 보곤 한다. 그 날도 언제나 그렇듯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유퀴즈에서 유품정리사 분이 나오는 편을 보게 되었다. 유품정리사. 처음 들어보는 직업이었다. 너무나 생소하면서도 동시에 직업의 이름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기도 했다. 그리고 문득 지난날의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누구보다 건강하신 할머니였지만 연세가 드시면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고 상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악화되었다. 나 혼자 마음의 준비를 조금이나마 하고 있었던 올해 겨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렇게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 장례식장에 가보았다. 장례식장의 자리를 며칠동안 지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장례지도사님을 뵙게 되었다. 그는 할머니의 몸을 구석구석 깨끗이 닦아주신 후 반듯하게 수의를 입혀주셨고, 관 속은 온통 꽃으로 가득채워 주셨다. 할머니가 꽃길을 걸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예쁘게 꾸며놓으셨다고 했다. 할머니의 관 위에 직접 메세지도 쓸 수 있게 해주셨고, 마지막으로 손편지도 함께 넣을 수 있게 해주셨다. 그의 작은 한 마디와 작은 손길 하나하나에서 따스한 정성이 묻어나왔다. 그는 누구보다 예의를 차렸고, 진지했으며, 고인을 향한 존경심을 담았다. 그 때문인지 처음으로 죽음이 고귀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언젠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도 이렇게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오랫동안 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천천히 맞이하는 후회없는 죽음.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내 곁을 지켜주는 죽음.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죽음이 아닐까. 먼 훗날에는 죽은 이들과 연결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꿈꿔본다. 직접 만날 수는 없어도 편지로, 또는 홀로그램으로 서로 못다한 이야기를 잠시나마 나눌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 그러면 비로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과 함께하는 세상이 오리라고 믿는다.

​​

남 일이 아닌 내 일

이제껏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으로, 교통사고로, 여러 수많은 이유들로 죽는 사람이 넘쳐나는 것을 보고, 듣고, 알고 있으면서도 죽음은 나와 먼 존재라고 생각해왔다. 나는 아직 어리니까. 나는 단 한 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으니까. 그러다 한때 그것이 알고싶다라는 프로그램에 빠졌던 때의 기억이 피어났다. 이 프로그램에는 범죄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피해자들이 많이 나오곤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피해자들 중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으리라고. 나 또한 다를 게 없었다. 내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죽을지 나조차도 모르는 일이었다. 늦은 새벽에 길을 걸어도 아무런 걱정이 없던 나에게, 혼자 잠자리에 들어도 하나도 무섭지 않던 나에게, 조금의 경각심이 생겼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는 더이상 죽음이 남 일 같지 않다. 내 일 같다. 언제 불현듯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위해 나는 한 방울의 후회도 없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더 많이 기뻐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웃고싶다. 그리고 이 건강한 기운을 내 옆에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넘치도록 나누고 싶다.


​​작은 별들을 위하여

우리는 올해 자그마치 몇 개의 별들을 잃었다. 그들은 왜 스스로가 별이 되었을까. 그 선택에 대해서 나는 아무런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없었다. 내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크기의 거대한 슬픔이겠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죽은 이후에 어떻게 되는 것은지 모르기 때문일텐데,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는 그토록 무서운 선택을 해버린걸까. 이제는 살아있다는 게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나라는 작디 작은 존재가 아무렇지 않게 숨을 쉬는 것이 그저 당연한 것만은 아닌 것이다. 나의 주변 사람들, 그리고 나 또한 그것이 자의이든 타의이든 예고 없이 갑작스레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내 주변에 있는 누군가가 나도 모르게 더이상 살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아직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언젠가는 사라져야 하는 순간이 찾아 오겠지만, 그 언젠가가 부디 지금은 아니길 바란다. 그래서 당분간은 계속 숨을 쉬어주었으면 한다. 그 당분간이 지나고, 지나고, 또 지나도 계속 그 숨을 내뱉어 주었으면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으니, 간절히 살아만 주었으면 한다. 오늘도 살아있​느라 참 고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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