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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희 Mar 25. 2023

봄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

처음으로 봄이 왔다는 순간을 느꼈던 때는 언제일까. 사계절 중에서 봄은 제일로 설레는 계절이다. 차디찬 겨울이 지나고 조금씩 눈이 녹고, 연한 바람이 불고, 귀여운 꽃들이 피어난다는 이유이다. 나는 봄이 참 좋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봄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한 가지 확고한 사실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 생일이 있다는 것. 내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면, 비로소 봄이 다가오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귀여운 초등학생 시절, 생일이 다가오면 엄마와 함께 정성 가득한 생일파티 초대장을 만들곤 했다. 같은 반 친구들을 몽땅 집으로 초대해 맛난 음식을 먹으며 선물을 잔뜩 받는 생일파티가 교실에서 한창 유행이었기 때문이다. 이날을 위해 엄마는 며칠 전부터 친구들이 좋아할 만한 떡볶이, 김밥, 떡꼬치, 돈가스 등 여러 음식들을 분식집 버금가게 준비했고, 나는 내 생일파티 초대장을 받은 친구들이 몇 명이나 올지 마음을 졸이며 생일을 기다렸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어떡하지에 대한 걱정은 어느새 커다란 말풍선이 되어 매일 밤마다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생일을 기다리다 보면, 다행스럽게도 꽤 많은 친구들이 내 생일을 가득 채워주었다. 고맙게도 평소에 각별하게 친하게 지내지 못했던 친구들도 많이 와주곤 했다. 선물 하나와 조그만 편지 한 장. 막상 편지를 열면 생각보다 그렇게 빼곡하게 채워져 있지는 않았다. 그저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자는 말, 경희야 너는 참 착해. 라는 말. 어쩌면 이 작은 한마디가 작게나마 더 착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돼주었을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반듯반듯한 글씨보다 삐뚤빼뚤한 글씨에서 더욱이 진심이 묻어 나오는 법이니까.


생일파티에서 크게 친하지 않았던 친구에게 받았던 선물이 다시금 떠오른다. 현관문에 매달아 놓는 종. 지금이 되어서야 이 선물을 왜 주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가끔은 자신을 떠올려 달라는 뜻이었을까. 아무리 힘이 들어도 집에 들어오는 순간만큼은 경쾌한 소리로 나를 맞이해주고 싶었던 걸까. 거의 이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때 받은 종을 보며 이제야 생각한다. 그래. 내 생일을 친구들이 빈틈없이 채워주었구나. 친구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라왔구나. 그렇게 외롭지 않게 생일을 보냈고, 외롭지 않게 봄을 맞이했구나. 내 손에서 친구의 손으로 내가 만든 정성스러운 생일파티 초대장이 전해졌을 때, 초대장을 들고 수줍은 미소를 띤 채 성큼 내 생일파티에 와주었을 때. 따뜻하게, 다정하게, 그렇게 봄이 왔다. 4월 13일 하루뿐인 내 생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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