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봄이 왔다는 순간을 느꼈던 때는 언제일까. 사계절 중에서 봄은 제일로 설레는 계절이다. 차디찬 겨울이 지나고 조금씩 눈이 녹고, 연한 바람이 불고, 귀여운 꽃들이 피어난다는 이유이다. 나는 봄이 참 좋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봄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한 가지 확고한 사실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 생일이 있다는 것. 내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면, 비로소 봄이 다가오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귀여운 초등학생 시절, 생일이 다가오면 엄마와 함께 정성 가득한 생일파티 초대장을 만들곤 했다. 같은 반 친구들을 몽땅 집으로 초대해 맛난 음식을 먹으며 선물을 잔뜩 받는 생일파티가 교실에서 한창 유행이었기 때문이다. 이날을 위해 엄마는 며칠 전부터 친구들이 좋아할 만한 떡볶이, 김밥, 떡꼬치, 돈가스 등 여러 음식들을 분식집 버금가게 준비했고, 나는 내 생일파티 초대장을 받은 친구들이 몇 명이나 올지 마음을 졸이며 생일을 기다렸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어떡하지에 대한 걱정은 어느새 커다란 말풍선이 되어 매일 밤마다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생일을 기다리다 보면, 다행스럽게도 꽤 많은 친구들이 내 생일을 가득 채워주었다. 고맙게도 평소에 각별하게 친하게 지내지 못했던 친구들도 많이 와주곤 했다. 선물 하나와 조그만 편지 한 장. 막상 편지를 열면 생각보다 그렇게 빼곡하게 채워져 있지는 않았다. 그저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자는 말, 경희야 너는 참 착해. 라는 말. 어쩌면 이 작은 한마디가 작게나마 더 착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돼주었을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반듯반듯한 글씨보다 삐뚤빼뚤한 글씨에서 더욱이 진심이 묻어 나오는 법이니까.
생일파티에서 크게 친하지 않았던 친구에게 받았던 선물이 다시금 떠오른다. 현관문에 매달아 놓는 종. 지금이 되어서야 이 선물을 왜 주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가끔은 자신을 떠올려 달라는 뜻이었을까. 아무리 힘이 들어도 집에 들어오는 순간만큼은 경쾌한 소리로 나를 맞이해주고 싶었던 걸까. 거의 이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때 받은 종을 보며 이제야 생각한다. 그래. 내 생일을 친구들이 빈틈없이 채워주었구나. 친구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라왔구나. 그렇게 외롭지 않게 생일을 보냈고, 외롭지 않게 봄을 맞이했구나. 내 손에서 친구의 손으로 내가 만든 정성스러운 생일파티 초대장이 전해졌을 때, 초대장을 들고 수줍은 미소를 띤 채 성큼 내 생일파티에 와주었을 때. 따뜻하게, 다정하게, 그렇게 봄이 왔다. 4월 13일 하루뿐인 내 생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