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집에 가면 보통 모두의 만장일치로 탕수육을 주문한다. 그리고 슬며시 탕수육이 나오면 암묵적으로 잠시 동안 조용한 침묵이 흐른다. 누군가 탕수육 소스를 들고 부먹이세요 찍먹이세요? 라고 묻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구상에는, 적어도 우리나라 안에서는 분명 탕수육을 먹을 때 찍먹을 선호하는 사람이 더 많은 듯해 보인다. 사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탕수육 소스를 부으려는 시늉이라도 하면 즉시 마치 심한 말을 들은 것처럼 얼굴을 심히 찌푸렸다. 내가 찍먹파였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대부분 탕수육은 찍어 먹으니까. 내 의지대로 판단한 것이 아닌, 남들을 따라 선택한 음식 취향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듯이 입맛도 바뀌어가는 법.
이전 회사에서 근무를 할 당시, 우리 팀 팀장님은 중국집과 사랑에 빠져 계셨다. 점심에는 오늘 중국집에서 짜장면 어때! 저녁에는 오늘 중국집에서 짬뽕 어때! 라며 우리를 한결같이 중국집으로 끌고 가셨다. 다행히도 탕수육은 언제나 빠질 수 없는 별미. 테이블마다 잊지 않고 탕수육을 꼭 시켜 먹었다. 그러다 야근을 하느라 여느 때처럼 중국집에서 저녁을 먹게 된 어느 날, 자연스럽게 탕수육을 주문했고 팀장님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물었다. 다들 탕수육 소스 부어도 괜찮지? 아무리 팀장님이라고 할지라도 찍먹파로서 당당하게 안 괜찮다고 말하려는 찰나 모두가 괜찮다고 대답하는 바람에 안 괜찮다에서의 안은 자연스럽게 묵음 처리가 되었다. 그렇게 괜찮다는 입과는 다르게 전혀 괜찮지 않은 눈빛으로 팀장님을 쳐다보았고, 팀장님이 자연스럽게 탕수육 소스를 부으시는 모습을 보자마자 내 동공은 그 무엇보다 빠르게 흔들렸다. 다른 팀원들과 눈을 마주치며 지금 나만 찍먹인지 신호를 보냈지만 아무도 나와 눈을 마주쳐 주지 않았다. 탕수육 소스를 붓는 사람을 실제로 처음 본 충격에 적잖이 빠진 나는 이미 바삭바삭하지 않을 것 같은 탕수육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인가. 소스를 부어서 먹으니 오히려 더 맛있는 것이 아닌가! 소스를 부어서 먹으니 소스가 탕수육에 더 촉촉하게 배어 깊은 맛이 날 뿐더러 일일이 탕수육을 찍어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탕수육은 부먹이구나. 유퀴즈에서 나온 과학자님이 탕수육은 부먹으로 먹어야 한다는 말씀이 진짜였구나. 단지 찍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로 내가 따라갔던 게 맞았구나.
이 자리를 빌려 팀장님께 소소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팀장님, 저 그 이후로 탕수육에 당당히 소스를 부어 먹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부먹파들 모두 자신감을 가지고 들고 일어납시다. 그리고 굳건한 찍먹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막상 당신도 먹어보면 좋아할 수도 있답니다. 일단 한 번 잡숴보세요. 부먹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부먹도 사랑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