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군데만 해외로 떠날 수 있으면 어디로 갈래?"
"일본!"
해외여행을 떠나고 싶은 나라 일순위는 언제나 망설임 없이 일본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일본어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을 접했고 교실 속 티비로만 보던, 칠판 속 글자로만 보던 일본이 궁금해졌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일본은 나에게 꿈만 같은 존재였다. 교과서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실제로는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곳. 하지만 작년 겨울, 일본을 갈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 황금같은 시간과, 충분한 돈과, 함께할 친구까지 완벽하게 존재했던 최초의 기회.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그 기회를 마침내 잡아낸 나는 망설임 없이 곧장 떠났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오사카로.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달랐다. 일본 사람들은 모두 우리나라 사람들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웃긴 생각이지만 실은 한국인인데 나 몰래 모두가 일본인인 척 연기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좌측보행으로 길을 걸어가고, 지갑을 열때마다 동전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버스를 뒷문으로 타며 어리둥절할 때마다 그제서야 내가 오사카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스미마셍과 토이레와 도코 데스카. 그리고 휘황찬란한 네이버 번역기, 화룡점정으로 바디 랭귀지만 있으면 오사카에서 어떤 대화도 문제없이 거뜬하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삼박 사일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외국어로만 대화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오사카에서 마지막 날 묵었던 숙소에서 만난 그 사람이 떠오른다. 우리는 매일 같이 아침 일곱시에 기상했다. 그리고 마치 짜놓은 것처럼 밤 열한시가 되면 칼같이 들어오곤 했다. 그렇게 이틀은 가성비가 좋은 호텔에서 어찌저찌 잠을 자고, 밤늦게 들어왔기 때문에 정말 잠만 자고, 마지막 날 숙소는 일본의 온천인 료칸이 있는 값비싼 호텔에서 자기로 했다. 배고픈 우리에게 저녁에는 온소바를 먹여주고, 뜨끈하게 료칸을 즐기고 나오면 요구르트와 하드까지 떠먹여주는 무시무시하게 좋은 숙소였다. 역시 돈이 좋아를 외치며 들뜬 마음으로 온소바를 먹은 배를 두드리며 막 료칸을 가려고 하는 찰나, 숙소에서 세금이 두 번 결제가 되었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프론트로 한 달음에 달려가 열심히 번역기를 돌리며 상황을 설명했지만, 일본인 직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알 수 없는 일본어만 남발할 뿐이었다. 친구와 함께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한국어로 열렬히 논쟁을 펼치던 도중, 프론트의 커튼을 뚫고 한 남자가 등장했다. 그리고 잠깐 슬로우 모션. 그제서야 내 귀에 꽂힌 말.
"무슨 일 있으세요?"
눈물겨운 조국의 언어를 들은 순간 일시정지된 채 그 사람의 뒤에서 한 줄기 빛이 비춰졌다. 오사카에서 마주쳤던 수많은 한국인들이 다시금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한국인처럼 생긴 일본인들..이 아니라 편의점에서 맛좋은 삼각김밥을 추천하던 한국인들, 자판기 앞을 서성거리던 한국인들,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어 주던 한국인들. 수많은 한국인들을 만났지만 이렇게 반가운 한국인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제대로 방언이 터졌다.
"아니그게아니라저희가카드로결제를했는데세금이두번결제됐다고알림이와서요서이걸어떻게해야하는ㅈ.."
띄어쓰기없이말할게한국인인것같애. 평소에는 힙합에 히읗자도 모르던 내가 숨도 안쉬고 띄어 쓰기 없이 폭풍 랩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사카에서의 공식적인 첫 한국어 대화였다. 그 사람은 유창하게 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깔끔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여태껏 이런 일이 처음이라며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그 말에 나는 그에 어울리는 대답 대신 어쩌다 홀로 오사카로 건너와 호텔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지, 잠들 때마다 한국에 사는 부모님이 보고싶지는 않은지, 비 오는 날에 김치찌개에 소주 한 잔이 그립지는 않은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입술 끝까지 차올랐지만 겨우 참아냈다. 결국 존경 어린 눈빛과 함께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이며 아쉽게 대화는 끝이 났다. 그대신 지금도 오사카를 떠올리면 꼬리표처럼 그 사람이 함께 따라오곤 한다. 불현듯 마주쳤던, 빛이 나던 그 구세주가.
오사카는 참으로 가까운 곳이다. 이렇게 가까운 곳을 진작에 오지 못한 나를 무척이나 원망하고 싶을 만큼. 우리나라에서 오사카까지의 물리적인 거리보다 내 마음부터 오사카까지의 거리가 조금 더 멀었나 보다. 조금만 용기를 냈더라면 더 일찍 올 수 있었을텐데. 언제쯤 다시 오사카를 찾을 수 있을까. 기약없는 기다림이 계속되겠지만, 언젠가 다가올 그 날을 향해 기꺼이 살아갈 테다. 오사카에서 걸었던 잊지 못할 팔만보. 그 무수한 발걸음에 담겼던 설렘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그 무수한 발걸음이 안타깝게도 회사를 향하고 있지만, 기필코 머지 않은 날 다시 오사카를 찾고 말테다. 서울역에서 캐리어를 끌고 가는 사람이 내가 되고야 말테다. 그렇게 나는 아직 오사카의 추억 속에 살고 있다. 나는 아직, 오사카에 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