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는 나
어쩐지 요즘 사는 맛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 회사를 다닌다는 핑계로 점심밥은 간단하게 먹고, 살이 쪘다는 핑계로 저녁밥도 간단하게 먹는 요즘이다.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분명 점심 시간일 테다. (물론 퇴근 시간 제외!) 처음 다녔던 회사에서는 점심 메뉴를 정하는 쏠쏠한 재미가 유일한 낙이었거늘. 서울로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고 나서는 점심시간이 조금 달라졌다. 바로 사내 카페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는 것. 사실은 점심을 먹는다기보다는 끼니를 때우는 것에 가깝다. 매일 다른 메뉴의 점심을 사 먹는 것은 들뜨는 만큼 쉽지 않은 일일 뿐더러 밥값은 금값처럼 치솟았고, 점심을 먹고 하루 종일 앉아서 노트북만 두드리다 보면 속이 더부룩해져서 안 그래도 하기 싫은 일을 더더욱 하기 싫어지는 현상이 찾아온다. 그래서 점심시간을 살짝쿵 바꾸어 보기로 결심했다.
열두 시가 땡 하면 간단하게 밥을 먹는 사람들, 일명 간단파들이 스멀스멀 모이기 시작한다. 멤버는 매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그렇다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 어떠한 강요도 없이 자발적으로 자신이 가져온 메뉴. 밥이든, 빵이든, 과자든 크게 냄새가 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가져온다. 나는 가끔 엄마가 김밥이나 유부초밥, 샌드위치를 싸주실 때도 있고 인터넷에서 주문한 칼로리 낮은 간편밥을 먹을 때도 있고, 집에 굴러다니는 빵을 요긴하게 챙겨올 때도 있다. 그렇게 모두가 수줍은 표정으로 오늘의 메뉴를 꺼내든다. 그리고 매일 보는 사람들끼리 매일 가져오는 다른 메뉴를 보며 왁자지껄 이야기를 시작한다. 누구라도 요리 솜씨를 뽐내 맛깔나는 음식을 가져온다면 그날의 첫 주제는 바로 그 메뉴가 주인공이 된다. 아무래도 이렇게 간편하게 먹다 보면 밥을 다 먹고도 삼십 분이 넘게 남는다. 보통은 앉아서 한 시가 될 때까지 일하기 싫어를 외치며 시시콜콜 담소를 나누지만, 때로는 가볍게 산책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같이 재미난 게임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 시가 되면 누구보다 쿨하게 헤어진다. 가벼운 메뉴와 비례하듯 가볍고 즐거운 꽉 찬 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워 똑같은 고민에 빠진다. 내일은 또 어떤 음식을 가져갈까. 내일은 또 어떤 음식들을 가져올까.
가볍게 끼니를 해결하는 것에 만족스러워하며 살아가고 있었건만, 요즘 사는 맛을 읽으니 먹는 것에 진심이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다시금 떠오른다. 어쩌다 이렇게 먹는 것에 소홀해져 버린 걸까. 결국 내가 요즘 살아가는 맛은 무엇이 되어버린 걸까. 음식에서 요즘 사는 맛을 발견하곤 하던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매일 다른 걱정들이 부풀어 오르던 출근길 지하철에서 틈틈이 요즘 사는 맛을 읽으며 걱정 대신 입맛을 다신다. 다행스럽게도 어쩐지 입맛이 도는 듯하다. 무거운 생각들은 잠시 내려 두고 나에게 지금까지 고생했다는 의미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내 입에 잔뜩 채워 줘야겠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고생하라고 말해줘야겠다. 오롯이 나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니까. 요즘 먹는 맛을 돌아보니 신기하게도 요즘 사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요즘 나를 살아가게 하는 맛은 무엇일까. 그리고 당신의 요즘 사는 맛은 어떠할까. 나처럼 달콤 쌉싸름한 맛이 나고 있을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