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을 가장 좋아했다. 급식을 먹을 때 수요일이 가장 맛있는 메뉴가 나오는 황금 요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때, 내 책상 위에는 선을 따라 반듯하게 오린 급식표가 붙여져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에 매달 다른 색깔의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은 채, 친구들은 쉬는 시간에 내 자리를 스쳐갈 때마다 급식표를 힐긋 보며 오늘의 메뉴를 스리슬쩍 훔쳐 갔다. 그러지 못한 날이면 4교시가 끝나갈 때쯤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눈을 마주치고는 입모양으로만 다섯 글자를 말하는 스킬을 시전하곤 했다.
‘오 늘 뭐 나 와?’
수업 시간에 난데없이 시작된 스피드 퀴즈. 나는 오늘의 메인 메뉴를 입모양으로 열심히 설명했다. 오늘은 수요일. 오늘은 가장 맛있는 메뉴가 나오는 날. 오늘은 최고의 날. 밑줄을 따라가 보니 밑줄 끝에 자리한 메뉴는 다름 아닌 쌀국수였다. 실망스러움이 가득함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수요일이라면 자고로 달콤한 카레라든지, 오동통한 우동이라든지, 짭짤한 수제햄버거가 등장해야 하는 요일인데 갑자기 쌀국수가 내 식판 위를 차지하려고 하다니. 이때는 쌀국수의 맛을 알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고 졸업작품을 찍으러 라오스를 갔을 때, 당연히 매끼를 라오스 음식으로 해결해야 했다. 내 첫 해외여행지였던 라오스. 같이 간 친구들은 라오스 음식이 입맛에 잘 안 맞는 듯 거의 모든 음식을 남기곤 했다. 나 혼자 전생에 라오스인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음식을 싹쓸이했지만, 유일하게 쌀국수는 예외였다. 다른 맛있는 음식이 많을뿐더러 좋아하지 않으니 먹고 싶지도 않아서 굳이 쌀국수를 맛보려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곳이야말로 쌀국수의 본고장인 만큼 쌀국수 천국이었거늘. 그때도 여전히 쌀국수의 맛을 알지 못했다.
더 시간이 흘러 대학교를 졸업하고 밤새워서 술을 마시고 해장을 할 음식을 찾고 있을 때, 함께 있던 해장메이트의 추천으로 갑자기 기억 저편에 있던 쌀국수가 훅 들어왔다. 쌀국수의 어떤 기운에 끌렸던 걸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원래였으면 당연히 다른 음식으로 해장을 하자고 했을 테지만 웬일로 저항 없이 쌀국수 집으로 향했다. 단지 뜨끈한 국물이라면 무엇이든 괜찮을 것만 같았다. 첫 내돈내산 쌀국수. 어쩌면 정식적으로 쌀국수를 먹게 된 셈이다. 그리고 쌀국수에 눈이 번쩍 뜨였다. 주구장창 나오던 급식에서도, 진또배기 쌀국수를 맛볼 수 있는 라오스에서도 내 마음을 흔들지 못했던 쌀국수는 웃기게도 해장을 하려고 먹으려는 평범한 날 늦바람이 불었다. 국물을 한 입 먹으면 마치 해변가 옆에 있는 사장님이 맛있고 쌀국수가 친절한 동남아의 로컬 쌀국수 가게에 온 것만 같은 짜릿한 기분. 이 기분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지금은 누구보다 자주 쌀국수를 즐기고 있다. 좋아하지 않았던 음식을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좋아하지 않았던 음식을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날은 정말 우연히 찾아오나 보다. 그렇게 나는 삶이 지루할 때면 고수를 팍팍 넣고 내가 싫어했던 쌀국수를 한 움큼 가득 먹는다. 쌀국수는 지루한 나를 안고 어디로든지 데려다주니까. 쌀국수가 나와서 얼굴을 찌푸렸던 지난날의 수요일들을 떠올리며 늦었지만 쌀국수에게 심심한 사과를 건넨다. 이제서야 쌀국수의 맛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