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나 앞에 있으면 저는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아요. 저도 처음 보는 제 모습을 발견하거든요. 자꾸만 통제하려 하고, 속 깊은 이야기를 잘 못하고, 표현을 숨기고 싶어 하는 게 저인데 그게 잘 안돼요. 마음껏 흐트러지고, 누구보다 솔직해지고, 심지어 때로는 당돌해진달까요. 잠잘 때 작은 소리에도 잘 깨서 지금까지 제 핸드폰은 소리가 난 적이 없었는데 혹시나 잘 때 전화가 올까 봐 제일 큰 소리로 높이기도 하고요. 친구들을 만나면 이두나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요. 사실 집중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이두나가 뭐하고 있는지 궁금하잖아요. 주말에 연락이 잘되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서운하기도 하고요. 그게 당연한 건데 왜 서운하지. 너의 주말을 가질 수는 없을까. 밤새 같이 있었는데도 헤어지기 싫어서 밥을 천천히 먹기도 하고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빈 그릇을 바라보면서 있지도 않은 국물을 떠먹기도 하고요. 제가 좋아하는 향긋한 향수 냄새와 섞인 제가 싫어하는 알싸한 담배 냄새가 오묘해서 세게 안기고 싶어지기도 하고요.
솔직히 안 좋아하려고 노력했거든요. 좋아하면 안 되는 사람이니까. 이두나를 만날 때마다 저는 자꾸만 다쳐요. 몸도 마음도 멍이 들어요. 그런데 이두나는 제 마음도 모르고 계속해서 제 이름을 불러요. 그러면 저는 서투른 대답을 할 수밖에 없게 돼요. 제가 열심히 밀어내면 한 발자국씩 다가오는 느낌이에요. 딱 한 발자국만큼. 저는 그 한 발자국에 무너지는 사람인데. 겨우 다잡은 마음을 금세 무너트려요. 처음에는 실수. 계속되는 후회. 그리고 욕심. 자꾸만 욕심이 나요. 우리 사이를 정확하게 정리해 줘. 우리 관계를 확실하게 말해줘.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묻고 싶어요. 그래서 생각해요. 내가 이렇게 감정적인 사람이었나. 왜 이두나랑 있으면 감정이 제일 앞서는 건지 궁금해요. 그러면서 내 앞에서만 흐트러진 이두나를 계속 보고 싶어져요.
실은 이미 제가 진 것 같아요. 이제는 저도 저를 잘 모르겠거든요. 그 사람을 놓지 않는 이유가 있겠지.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겠지. 저는 왜 이두나를 계속해서 이해하려고 할까요. 그러니까 귀엽다고 하지 말아 주세요. 좋아한다고 하지 말아 주세요. 장난이 한 스푼이라도 들어가 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온전히 진심인 마음일 때 말해주세요. 부탁이에요. 사귀자고 하지는 않을게요. 가볍게 만나기만 해주세요. 그렇게라도 이두나 옆에 있고 싶어요. 실컷 헷갈리게 해도 좋아요. 커다란 존재가 되는 것까지 바라지 않아요. 그저 쉬운 사람이어도 괜찮으니까. 그렇게라도 이두나 옆에 있고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