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따라 간다.
우리 부부는 첫째 아이를 임신하기 전까지 차가 없었다. 나는 겁이 많아 도로 주행을 나가지를 못해 국민 자격증인 운전 면허증조차 없었다. 남편은 대학원까지 졸업하느라 나는 여러 지역을 다니며 일하느라 우리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가진 돈이 많지 않았다. 세상 물정을 몰랐던 것이 다행인지 아닌지 결혼은 사랑하면 하는 것으로 알았던 우리는 작은 월세방을 얻어 신혼살림을 시작했고 나는 결혼한 지 한 달여 만에 임신했다.
아이도 태어날 것이었고 남편은 바로 옆 도시로 출퇴근을 해야 했기에 우리는 10년 된 중고차를 장만했다. 이것이 11년 전 일이다. 그동안 연년생으로 태어난 아들들은 그 차에서 점점 자라났다. 분유를 먹던 아이들은 과자와 사탕을 먹고 이제는 김밥과 햄버거를 먹게 됐다. 카시트가 하기 싫어 심술꾸러기 같은 표정으로 안전 밸트에 목이 걸쳐 있기도 했던 녀석들은 이제 핸들을 만지고 싶어 했다. 물놀이를 다녀온 날에는 옷을 갈아입는 탈의실이 되기도 했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 시스템 일부가 장착된 최첨단 자동차들이 앞다투어 출시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우리 집 자동차에는 여전히 카세트 테이프를 넣는 곳이 있었다. 천 소파의 얼룩은 수십 번의 청소에도 지워지지 않았고 과자 부스러기며 모래가 하루가 멀다 하고 떨어져 있는 바닥을 보노라면 한숨이 나오기도 했었다.
그런 자동차에 나는 ‘씽내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씽내이’는 내 고향 진주 사투리로 더럽다는 뜻이었다.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여행을 갈 때면 “씽내이. 오늘도 잘 부탁해.”라고 온 가족이 차를 쓰다듬으며 말을 건넸고 “씽내이 오늘도 힘내.”라며 남편이 무사히 오고 가길 바랐다.
돈이 있으면 너희 집 차부터 바꿔주고 싶다던 친정엄마의 바람 때문이었을까. 날이 뜨거우나 차가우나 시골 교회의 벤치에서 날마다 기도하시는 시어머님의 기도 때문이었을까. 은근히 씽내이를 무시했던 내 고약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연일 추운 날씨가 이어지던 지난겨울에 남편이 출근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전화했다. 차 사고가 났다고 말이다. 씽내이가 우리 집에 온 이후 계속 무사고였던 남편이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도로가 미끄러워 앞차를 박은 것이었다.
집 근처에서 사고가 났던 남편은 놀란 마음에 나에게 와달라고 했고 호기심이 많은 둘째는 나보다 더 빠르게 옷을 입고 따라나섰다. 견인차들과 차들이 도롯가에 즐비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니 큰 사고가 연달아 난 건가 싶어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사람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모두의 차도 크게 부서진 곳이 없었지만, SUV를 박은 우리 씽내이는 앞쪽이 다 박살 나 폐차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우리 부부와 둘째는 씽내이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뭉클했다. 오랜 함께한 물건에 정이 든다는 말이 맞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예쁜 이름을 붙여 줄 걸 그랬다. 직접 운전했던 남편 마음은 오죽했을까. 차를 바꿀 생각도 없이 그저 묵묵히 닦고 고쳐 써오던 남편은 친구를 멀리 떠나보낸 듯이 온종일 표정이 씁쓸해 보였고 폐차 직전까지 씽내이의 사진을 찍어 나에게 톡으로 전송했다. 폐차 후에 마지막으로 남은 이십만 원의 돈까지도 못내 아쉬웠다.
일요일마다 장애가 있는 친구를 교회까지 데려다주고 직장 생활에도 차가 필요했던 우리는 급하게 중고차 딜러를 하는 친구에게 연락해서 차를 물색했다. 씽내이를 보낸 아쉬움도 잠깐 새 차를 고르던 남편이 눈빛을 반짝이며 연신 내 의견을 물었다.
우리는 5년 된 중고 SUV를 샀다. 이제 많이 커버린 아들의 덩치를 담기에 다소 좁았던 씽내이와 다르게 이 차는 실내 공간이 널찍했고 검은 가죽 시트였고 엉덩이를 따뜻하게 데울 수도 있었다. 시승하면서 아이들은 연신 ‘우와~.’하며 감탄했고 잠깐 내려 차를 마신 찻집 주인에게 우리 집에 새 중고차가 생겨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그러자 찻집 주인은 딸네가 이사 가는 날 다섯 살배기 손녀가 집을 떠나기 싫어 울던 이야기를 하며 떠나는 아쉬움과 새로운 곳에서의 기대는 늘 반복되기 마련이라고 옛날 과자를 몇 번이나 리필해 주며 우리 가족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밥상머리에서 새 차의 이름 공모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며 우스갯소리를 해댔고 남편도 꽤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문득 아이들을 임신했을 때 건강하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튼튼이’, ‘튼실이’라고 태명을 지었던 것이 생각났다.
“우리 차 이름 튼튼이 어때? 튼튼하게 우리 집에 10년 넘게 있으라고. 우리 아들도 태명이 튼튼이여서 이때까지 잘 자랐잖아.”
그때부터 우리는 차를 타면 “튼튼아, 오늘도 안전하게 잘 다녀오자.”하고는 차에게 말을 건넨다. 작년에 합격해 놓은 운전면허 필기 합격증을 들고 용기를 내어 운전면허시험장에 등록해야겠다. 튼튼이가 우리 가족과 함께하고 아들들이 장성할 때까지 쉬지 않고 달릴 테니 나도 남편이 자랑하는 열선 핸들의 따듯함을 한 번쯤은 느껴 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