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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기억의 소환

흑역사 대 방출... 2

by James 아저씨

아주 오래전... 대학 때다.

ChatGPT Image 2025년 11월 26일 오후 04_55_33.png Chat GPT의 그림

전두환시절이었다. 오랜만에 휴교령이 해제되고 선후배들이 대낮부터 술을 먹고 있었다. 종로였던가... 그때만 해도 나는 술을 두 잔만 먹어도 얼굴이 빨개져 나는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인 줄 알았었다. 그럼에도 선배들이 술을 주면 덥석덥석 잘도 받아먹었다. 문젠 조금만 먹어도 졸음이 쏟아지고... 그날도 선배의 강권에 못 이겨 술을 마시는데 너무나 졸음이 몰려와 슬쩍 나가 바람을 쏘이러 나갔는데 화장실 벽 옆에 작은 트럭 하나가 세워져 있고 나는 너무 졸리고 힘이 들어 잠시 트럭에 올라가 쉬리라(?) 마음을 먹고 트럭 짐칸에 올라 누웠다(잠시 누워만 있다가 가리라... 맘을 먹고)그리고 얼마인지 모르지만 눈을 떠보니 하늘의 구름이 쉭쉭 지나가고 이게 뭐지? 왜 난 가만히 있는데 하늘의 구름들이 저리 휙휙 지나갈까... 이상하네... 하며 잠시 누워 생각을 해보니... 아뿔싸... 주점에서 술을 마시다 잠시 쉬러 올라온 트럭이 가고 있는 것이었다. 오 마이 갓~~~

이를 어째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일어나 운전석 창을 두드리니 운전사가 깜짝 놀라 길 옆에 차를 세우고는

내게 '개 0끼, 소 0끼... '하며 갖은 욕을 퍼부으며 뭔 짓이냐고 욕을 해대는데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무조건 죄송하다고 머릴 조아리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고 마치 금세 한대 칠 것처럼 소릴 지르던 운전사 아저씬 가라고 썩 꺼지라고 소릴 질렀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예요? 하고 물었더니... 세상에... 태릉입구?라고 한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 나는 술 마시다 도망친 건방진 후배가 되었고 가방도 술집에 있었고... 어찌어찌

나는 그곳에서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다시 술집엘 와보니 선배와 일행은 가버리고 내 가방을 맡겨 놓고 술을 마셨더란다. 기가 막혔다. 나는 낮술은 지금도 쥐약이다. 일단 얼굴이 빨개져 못 먹고 밤에 마시는 것보다

빨리 취하는 것 같고... 해서 낮술은 먹지 않는다.


대학로에서였다.

대학로란곳이 예전에 말 그대로 대학의 거리로 서울대 문리대와 의대, 간호대가 있고 마로니에 공원까지가 캠퍼스이던 시절을 생각해 거리 이름을 대학로로 만들었고 한때는 주말에 대학로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들어(80년대 중후반) 공연이 열리기도 하고 자유로운 문화예술의 거리를 추구했지만 이게 점점 도를 넘어 주말마다 난장판이 벌어지고 매일 수십 명이 술 때문에 옆의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오거나 하는 불상사들이 일어나기도 하는 광란의 거리로 변질되었다. 결국 그 주말 차 없는 거리는 폐지되어 그냥 차도가 되었다. 그 무렵이었다. 군에서 휴가 나온 후배 녀석들과 술을 마시는데 휴가 나온 장병이 뭔 돈이 있으랴... 나는 어엿한 직장인이었고... 후배 몇 명과 술을 먹고 3차까지 하고 집으로 갈 녀석은 가고 3명이 남았었는데 그야말로 탈탈 털어 술을 마셨고 집으로 갈 택시비도 없었다. 셋은 마지막 돈을 털어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하나씩 사서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술을 마셨다. 새벽이 될 때까지 술을 마시다 자연스럽게 셋은 각자 공원벤치 하나씩 차지하고 누워 잠이 들었다. 그런데 새벽이 되자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니 잠이 깨 이번엔 마로니에 공원의 미술관으로 가 그 입구에서 다시 잠이 들었다. 비를 맞지 않는 로비 입구였다. 거기서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이번엔 비질하는 소리가 쓱쓱 들리는데 미술관청소하는 미화원 아저씨가 빗자루로 잠자는 사람을 쓱쓱 밀어내듯 바로 누워있는 옆에서 비질을 하는 것이었다. 일부러 잠을 깨우려는 것처럼... 나는 벌떡 일어나 잠이든 후배 녀석을 깨웠으나 녀석들도 나도 아직은 술도 덜 깬 상태고 해장국은 둘째고 집으로 돌아갈 차비도 없었다는 것... 셋은 멍하니 공원에 앉아 그야말로 노숙자꼴로 벤치에 앉아 있었다. 게다가 이날은 주말도 아니고 평일이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고 노숙자처럼 꾀죄죄한 놈이 벤치에 앉아 있으니 지나가면서 힐끔힐끔 보기도 하고... 밤이면 술에 취해 공원에서 난장판을 벌이는 놈들 중 하나로 보기도 하는 것 같고...(제 발이 저려서) 무엇보다 나는 그때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신참으로 대학로에 직장이 있어 회사 사람들이 혹시나 볼까 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너무 창피했다. 난 그냥 일찍 출근하는 걸로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아무튼 그렇게 노숙도 해봤다.

8FKexDlG4pD.jpg 인터넷 이미지

역시 대학로 시절... 이건 정말 최악의 흑역사...

90년대 초쯤... 내가 선배가 되어 신입직원들, 인턴사원들 주름을 잡고 있을 때였다. 대학로 주변의 당시 술집들이 방으로 되어 신발을 벗고 들어가고 방문을 닫고 술을 마시며 노래도 부르고 우리끼리 게임도 하며 술을 마실 수 있었다. 방에선 목이 터져라 노랠 부르며 탁자를 젓가락 장단으로 탁탁 치며 노랠 불러 젖히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합창이 되고... 그러면 술집 주인아주머니가 지청구를 했고 그때만 잠시 목소리가 줄었다 또 어느새 목이 터져라 소릴 질러대며 노랠 하기도 했었다. 때론 아주머니께 뒤통수를 맞는 애들도 있었다. 그날도 내가 술을 사겠다고 애들을 불러 모아 술집에서 노랠 부르고 신나게 술을 마시다 화장실을 가려 나가다 길에서 다른 부서 직원을 만나 그 일행이 있는 술집에서 술 한잔을 얻어먹고 뭐 그곳에서 좀 있다 다시 우리 자리를 오려는데... 엇? 우리가 술 먹던 집이 어디였지? 기가 막히게 그 집이 생각나지 않았다. 분명 이 골목에서 어디쯤 일 텐데... 거짓말처럼~ 기억이 안 났다. 하는 수 없이 평소 내가 다니던 술집을 일일이 다 들러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웬걸, 평소 내가 다니던 술집엘 다 가봐도 우리 일행이 없었다. 당황이 되는데... 정말 어딘지 기억은 안 나고 요즘이야 핸드폰이 있으니 금방 물어보면 될 일이지만 그땐 그것도 안되니... 결국 점점 범위를 넓혀가며 술집들을 찾아다녔다. 성대 앞까지 가보고 그러나 끝내 나는 그 술집을 찾지 못했다. 그러니 결론은 후배들을 불러 놓고 술을 진탕 마시고 줄행랑을 친 파렴치한 선배가 된 것이다. 나는... 어찌해야 좋을까...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누군가 화장실이라도 간다고 나왔다 나를 만날 수 있다면... 하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술집에서 화장실 나오길 기다리며 술집 주변을 배회하기도 했다. 이러다 술이 다 깰 것 같았다. 결국 그들을 찾는 걸 포기하고 밤이 늦어 집으로 갔고 다음날 출근하여 후배들 얼굴을 보자 그들의 눈에선 푸른 광선이 나올 것 같은 이글거리는 경멸의 눈초리들이 나를 쏘아보았다. 그 상황을 비굴하게 설명을 하고... 후배들에게 굽신거리며 이해를 시키려 했지만 싸늘한 그들의 눈초리에 나는 울고만 싶어졌다. 세상에 기가 막히게도 그 집만 안 들어가 보고 다른 집들만 열심히 찾아다닌 것이었다. 뭐에 씌었던 것 같다... 어쩌자고 그 집만 빼놓고 다른 집들만 열나게... 결국 한참 시간이 지나고 그 사이 몇 번의 술을 더 사주고 오해를(풀었는지)풀고 그네들과 다시 거리가 좁혀졌고 예전의 술 잘 사주는 선배로 돌아갈 수 있었다. 수십 년이 지나 이제 50대가 된 그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땐 나를 인간으로 보지 않기로 했었다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고 하며 말이다.


비슷한 기억은...

나이가 좀 들어 40대가 되었을 때다. 어떤 단체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위한 문화재청과 연계한 고궁 해설사 교육을 받을 때였다. 매주 교육이 끝나면 뒤풀이를 할 때였는데 1,2차를 하고 소수 정예가 남아 종로 5가 포장마차에서 3차를 할 때였다. 그때 종로 5가엔 밤이면 포장마차가 줄을 지어 장사를 할 때였고 아무튼 그렇게 술을 마시다 화장실을 가려고 나와 어떤 건물에서 볼일을 보고 왔으나 이 많은 포장마차 중 어느 집에서 나왔는지 기억에 안나 일일이 다 열어 보고 다녔다. 그러다 어떤 술 취한 일행과 시비가 붙었고 목소리가 커지고 그러자 다행히 바로 옆 포차에서 내 목소리를 들었던 일행이 나와 구출(?)을 해준 적이 있었다. 자세한 기억은 안 나는데 기분 나쁘게 포장을 들어 내가 그들을 째려봤다는 게 그들의 시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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