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떠나보내며

아픔 없이 훨훨 날길

by 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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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어떻게 이 감정을 처리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다. 10월 1일부터 두 번의 고비가 있었고 응급실도 갔었는데 그땐 이게 돌아가시기 전의 전조증상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하루 까무러치시고 그다음 날엔 괜찮고, 또 다음날에도 살짝 까무러쳤다가 의식을 되찾고 음식도 잘 드시고 걷기도 잘하시고 대화도 잘 하고. 그저 컨디션이 좋지 않은 탓에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추석을 맞았고 추석 음식도 잘 드셨고, 삼촌도 오셔서 하루 자고 다음날 할머니랑 사진도 찍고. 그렇게 두 아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셨다. 덕분에 엄마와 나도 대전에 갈 수 있었다. 할머니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불안했지만, 괜찮을 거라고 애써 위안을 삼으며, 그래 자꾸 이러저러한 핑계로 미루다 보면 외할머니는 언제 봐?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추석 당일에 엄마와 대전으로 출발했다. 대전에 도착해서 재밌게 놀고, 저녁에 아빠와 통화할 때 오늘 컨디션 괜찮았다고 들었다. 밥도 잘 드시고. 그렇게 추석 다음날이 되었고 외가 쪽 사촌들과 커피 한 잔까지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아빠랑 할머니가 호두과자를 잘 드시니까 '호두과자 사 가야지'라며 마음을 먹고 서울로 출발했다. 대전 톨게이트를 지나기 바로 직전,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의식이 없으셔서 응급실 간다고. 아.



엄마가 나지막이 '설마, 돌아가시는 건 아니겠지' 읊조렸고, 나는 '에이 설마 아닐 거야. 어제 음식도 잘 드시고 대화도 잘 하셨다는데, 치매가 있었지만 두 아들도 잘 알아보고' 했다. 하필 명절이라, 차가 너무 많았다. 그러고 나서 명절 근무 중인 동생에게 연락을 했다. 지금 당장 빨리 1시간 안에 갈 수 있는 사람이 동생뿐이었다. 삼촌은 수원에 있고, 지금 당장 출발하더라도 우리랑 비슷한 경로에 있기에 많이 밀릴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처음에 동생에게 그냥 알고 있으라는 식으로 말을 했지만 동생이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바로 뛰쳐나왔다고 했다. 그 순간이 동생에게 제일 고마운 순간이었던 것 같다. 아빠를 혼자 두지 않고 옆에 최대한 빨리 있어준 것이. 그렇게 한 시간쯤 기어가고 있을 때쯤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쯤인지, 조심해서 오'라고. 전화를 끊고 나서 엄마가 아빠 목소리가 이상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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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아침식사를 하려 깨웠다고 했다. '엄마 잘 잤어?', '응', '일어나서 씻고 밥 먹자', '그래 밥 있어?', '응 씻고 나면 식탁에 가면 있어. 일단 세수하고 가자'

할머니를 그렇게 화장실로 데려갔고, 세수하고 씻기는 중에 갑자기 억 하며 의식을 잃었다고 했다. 그 순간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내가 속절없이 눈물을 흘리는 대목이 이 부분이다. 우리가 아무도 없었고, 아빠 혼자 119에 신고도 하고 할머니를 깨우려는 그 모습이 상상이 되니까. 하필 우리가 아무도 없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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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 즈음에 돌아가신 것 같다. 동생이 아빠에게 도착을 하고 나서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는데, 목소리가 이상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엄마와 내가 걱정할까 봐 아빠가 말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별말 없이 그렇게 끊었는데 아빠와 동생 둘 다 거짓말에 소질이 없는 편이라 엄마는 이때 직감을 했다고 한다. 둘의 목소리가 평소와 너무 달라서. 이천쯤 왔을까, 동생과 다시 통화를 하는데 이때 이실직고를 했다. 할머니가 아까 2시쯤에 돌아가셨다고. 우린 고속도로에서 감정을 숨기려 다른 얘기도 하고 할머니 얘기하면서 울기도 하고. 그렇게 최선을 다해 고속도로를 달렸다.



결국 나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안치실로 할머니는 들어갔다. 원래는 보려고 했는데 너무 그냥 상온에 계시면 좋지 않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집에 가서 짐을 챙겨서 가기로 했다. 문 앞에 도착을 했는데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손이 떨렸다. 문을 열고 싶지 않았다. 그치만 문을 열어야 했다. 집으로 들어선 순간 그 순간의 급박함이 너무 느껴졌다. 화장실에 널부러져있는 수건과 슬리퍼, 그 앞에 잔뜩 까져있는 제세동기 비닐들, 주삿바늘, 약통 그 모든 다급함을 울음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대충 정리를 하고 할머니의 영정사진과 몇 개의 옷가지를 챙겨 병원으로 갔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 울음을 참으며 장례식 관련된 모든 것들을 처리하며 연락하는 아빠가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마주하는 순간 둘은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하필 이날 집을 비운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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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관식을 했다. 조문객들과 정신없이 인사를 하고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슬픔은 조금 사라지고 실감이 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러다가 문득 둘째 날에 현실을 실감하게 한다. 입관식을 하러 안치실에 갔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수의를 입고 있었고 얼굴을 보자 평소 주무시던 모습과 똑같았다. 고통 없이 편안해 보였다. 그리고 손을 잡았다. 할머니는 손발이 찬 편이라 내가 손을 잡아주고 발을 만져주면 따뜻하다고 좋아했다. 치매 때문에 내가 손녀인지 누군지도 모르면서 '니 손은 따뜻하다~'하면서 배시시 웃던 할머니였는데. 근데 지금은 손이 너무 차갑고 발이 너무 차갑고 내가 잡아줘도 아무 말도 없었다. 손 모양도 그대론데. 그저 평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19년도에 요양병원에서 퇴소한 이후로 계속 집에서 모셨고, 23년부터는 같은 집에 살았다. 치매 때문에 표정이 거의 없었는데 그거보다도 더 평안한 표정이었다.



염을 하면서 우리는 문밖으로 나가있었다. 하필 장례식장이 할아버지를 보낸 곳과 같아서. 할아버지 염할 때 나는 할머니랑 이 공간 똑같은 장소에 있었는데. 창문 너머로 '지금 뭐 하는 거야, 우리는 왜 안 들여보내줘?'라고 아무것도 모르고 물어보는 할머니랑 같이 있었는데. 기분이 너무 이상하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후회되는 것투성이였다. 뭐가 그리 귀찮다고 할머니랑 대화 한마디 더 안 했을까. 염을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제 우리 할머니 치매도 없고 아프지도 않고 허리도 안 아프고 이제 자유롭다고. 그렇게 되뇌었다. 이제 진짜 안 아프고, 자유롭고, 공부도 하고 싶고 이거저거 다 하고 싶어 했던 우리 할머니 이제 다 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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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이북 출생이다. 황해남도 연안군.

강화 교동도에서 고작 뱃길로 5km 거리 밖에 안되는 연안에서 만석꾼 집안의 딸이었다. 그러다가 전쟁이 발발했고 아들만 데려간다는 할머니의 아버지의 말에 악착같이 자기도 같이 가겠다고 쫓아 내려왔다고 했다. 그렇게 그 시대의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남동생, 우리 할머니 외 일가친척들이 김포 부근에 자리를 잡았다. 같이 내려온 남동생 할아버지도 두 달 전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치매가 있어서 그 소식조차 몰랐다. 근데 어떻게 딱 두 달 후에 또 이렇게 본인 남동생을 쫓아가셨는지. 두 분 다 치매가 있으셨는데 외삼촌 할아버지는 본인의 딸을 보고 우리 할머니 이름을 불렀고, 우리 할머니는 본인의 아들들을 보고 남동생 이름을 그렇게 불렀다. 우애 좋은 남매여서였을까, 어떻게 가시는 길도 이렇게 금방 같이 가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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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제승화원에서 할머니의 유골을 받았다. 키도 작고 살도 많이 빠져 유골도 조금이었다. 디스크 수술한 쇳덩이가 나왔고 나머지 유골을 잘 싸주었다. 그 순간 가루가 살짝 폴폴 날렸는데 자유롭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거동이 불편해서 어디 한 번 나가는 것이 불편했었는데 이제 훨훨 날아 다닐 수 있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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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원으로 출발했다. 할아버지 가실 때도 그랬는데 장례식 내내 비가 오다가 발인하는 날 화창했다. 남은 우리 5명 힘들지 말라고 마지막으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할아버지 때는 코로나여서 하지 않았던 봉안식을 하고 할아버지 옆으로 모셨다.


이렇게 금방, 3년 만에 같이 모시게 될 줄 몰랐다. 공교롭게도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 다 92세까지 사셨네. 우리 할머니는 임플란트도 없이 다 본인 치아시고 잘 드시고 화도 잘 내시길래 100살까지 사실 줄 알았다. 92세도 물론 장수지만, 그래도. 현충원에 할아버지도 있고, 할머니 남동생 할아버지도 계시고. 가시는 길 평안히 가셔서 꼭 다시 만나서 가족끼리 의지하면서 잘 지내시기를. 치매 때문에 받지 않아도 되었을 오해 같은 거 더 이상 받지 않기를. 하고 싶었던 공부도 마음 껏 하시고 잠꼬대로 부르시던 엄마도 만나시고 사랑받으면서 지내시기를.



할머니 안녕!

나 첫 손녀라고 예뻐해 줘서 고마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