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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

by 채이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 브로콜리 너마저 「졸업」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영국 여행을 떠났었다. 9박 10일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코스였고, 갓 졸업했기에 덮어놓고 놀 수도 있었지만 마음이 그렇게 편하지는 않았다. 초, 중, 고부터 대학교까지 줄곧 학생 신분으로 살아왔기에, 한순간에 소속이 사라진다는 건 정말 낯설고 불안했다. 졸업은 아무것도 약속해주지 않았고, 마음은 불편하고 어지러웠다.


네 개의 졸업장을 들고, 우리는 어디로든 팔려가고 싶어 다들 안달이 났었다. “어디든 들어가야지”를 입버릇처럼 되뇌며 ‘누가 날 써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다채로운 꿈같은 건 취업이라는 현실 앞에 색이 바랬다. 자격증, 토익, 시험 이런 것들에 우리는 목을 맸다. 내 졸업장이 쓸모 있기를, 내가 ‘어떤 쓸모’이기를, 그래서 스스로 밥벌이할 수 있기만을 원했던 것이다.


졸업의 혼란과 불안을 생각하면 늘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이 떠오른다. 대학 교육까지 잘 마친 개인에게 주어지는 졸업은 아주 ‘축하’할 일이지만, 동시에 엄청난 불확실성에 내던져지는 일이기도 했다. 나를 보호하던 울타리가 사라지고, 정신 차려보니 허허벌판에 홀로 서있는 그런 기분. 개척은 물론 본인의 몫이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덕원은 서울대를 나온 것으로 유명하다. 무려 서울대를 나온 덕원도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아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다고 하고 있으니, 졸업 후의 초조함은 우리 사회 청년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임엔 틀림없다. 삶의 방향은 누군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갑자기 온전히 주어진 24시간은 자유로웠고 벅찼다. 우리는 헤매고, 버티며, 눈앞에 놓인 일들을 해내고, 그저 결과를 기다렸다.


누구는 면접을 보고, 누구는 시험공부를 하고, 아니면 워홀을 갔다. 더 나은 곳으로 ’팔려가기 위해‘ 우리는 정말 애를 썼다. 내가 저 사람보단 ‘쓸모 있는’ 사람임을 끝없이 증명하도록 요구받던 우리는 더 높은 점수, 더 잘 쓴 자소서, 더 유려한 답변 같은 것들을 익혔다. 팔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많았는데, 이상하게 이 방향이 옳은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전전긍긍했다.


취업 준비라는 건 참 길고도 불확실한 여정이었다. 우리는 자소서를 읽어주고, 함께 면접 준비를 하고, 피드백을 줬다. 돌이켜보면 서로가 더 ‘잘 팔릴 수 있게’ 도움을 줬던 셈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둘씩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축하를, 누군가에게는 위로를 건넸다. 우린 그때를 어떻게 정신이 멀쩡한 채로 버텼을까?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졸업한 지 한참이 지난 지금, 이제 우리는 어디로든 모두 팔렸다. 그 시절 면접을 보며 덜덜 떨던 친구가 면접관이 되어 더 어린 친구들을 만난다. 나 역시 취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었지만 스스로 밥 벌어먹고 살고 있다. 서로 응원하고 때론 질투도 하던 우리는 어느새 각자의 자리가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 되었다. 다들 바쁜 직장인, 프리랜서, 혹은 사장님이 되어버려 1년에 한 번 만나기도 쉽지 않다.


졸업장을 들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팔려가기 위해 서글프게 작별 인사를 나누던 우리는, 지금도 각자의 시간표대로 각자의 고민을 안고 산다. 어쩌면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어디론가 떠밀리는 기분도 느낄 것이다.


회사에 팔려가고 싶어 수없이 문을 두드리던 그때의

우리를 기억한다. 그 불안과 혼돈을 견디고 결국 해내준 친구들이 참 멋있기도 하다.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를 팔 수밖에 없었지만, 그 지난한 과정을 버텨준 우리는 여전히 우리로 존재한다.


그래서 다들 잘 살고 있을까? 젊은 청춘들이 졸업장 하나 딸랑 들고 여기저기 팔려가기를 강요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어디에 있더라도 우리 이 미친 세상에서 행복하자. 우리 모두,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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