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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

by 채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 장기하와 얼굴들 「별일 없이 산다」

질투란 생각보다 더 오래, 은근하게 남아 있는 감정이다. 예컨대, 내 또래가 외제차를 샀다는 소식을 들으면 괜히 그렇게 배가 아프다. 하지만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이 좋은 차를 뽑았다는 소식은 이상하게 아무렇지도 않다. 그건 그저 ‘그럴만하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도대체 우리의 질투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지라르(Rene Girard)는 인간의 욕망을 모방 본능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았다. 인간의 모든 욕망은 고유한 것이라기보다는 타인을 모방하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따라 하고 싶은 모델’을 정하고, 그 모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가령, 우리의 모델이 예쁘고 멋진 연예인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가 좋은 차를 타고, 좋은 곳에서,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욕망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비슷한 차, 비슷한 곳, 비슷한 음식이 욕망의 목록에 오른다.


물론 이러한 모델이 연예인 같이 아주 멀리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부러울지언정 배가 아파 구르지는 않는다. 배가 아플 정도의 질투는 가까움에서 발생한다. 즉 질투는 나와 비슷한 사람인데, 나보다 더 잘 사는 것 같을 때 생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그래서 정확하다. 상식적으로 재벌이 땅을 사서 배 아픈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를 바로 이 질투라는 보편적인 감정에 연결시켜 볼 수 있다. “네가 깜짝 놀랄 얘기”는 바로 누군가가 “사는 게 재밌다”는 것, “이렇다 할 고민 없다”는 것, “하루하루가 즐거웁다”는 것이다.


“사는 게 재밌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하루하루가 즐거웁다”

이 평온한 선언이 누군가에게는 질투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남이 별다른 고민 없이 잘 산다는 소식만 들어도 배가 아파 잠 못 이룰 수 있다. 누구나 그 정도로 치사한 마음을 품을 수 있다.


질투라는 건 그러니 반짝반짝 빛나는 어떤 것만을 향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상 속에서도 그것은 스멀스멀 흘러나온다.


나는 비전일제 대학원생이라 연구와 일을 병행해야 한다. 그래서 일을 아예 하지 않거나, 훨씬 적게 하며 연구에 몰두하는 선생님들을 보면 부러움이 삽시간에 밀려온다. 하루 종일을 연구에 온전히 쏟을 수 있는 그녀들의 여유가 너무나도 갖고 싶은 것이다. 혹은 교수님께 살갑게 다가가는 친화력이 부러울 때도 있다. 나는 여전히 교수님이 어려우니 말이다.


사람마다 질투 버튼은 다르다. 하지만 우리가 욕망하는 모델이 무엇이든, 질투라는 것은 이다지도 보편적인 감정이다. 누군가의 외제차 사진을 확대해 보는 것부터, 누군가의 느긋한 일상에 갑자기 질척한 감정이 스며드는 순간까지. 질투는 여기저기 얼굴을 들이민다.


사소한 순간에도 그것은 스멀스멀 등장한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찌질해진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별일 없이” 살고, 그의 목소리는 너무 얄밉다. 내가 갖지 못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 때때로 야속하다.


다시 지라르로 돌아와 보자. 그래서 우린 왜 질투할까? 질투란 누군가를 따라잡아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에서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부러워하고, 흉내 내고, 질투한다. 누구에게나 다 치기 어린 마음이 있다. 그러니 우리, 오늘 서로가 찌질해 보여도 좀 참아주자. 그저 더 좋아지고 싶은 우리의 욕망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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