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꼭 살아서
지푸라기라도 잡아서
내 이름을 기억해 줘
- 악동뮤지션 「물 만난 물고기」
내정자가 있는 면접에 간 적이 있었다. 입실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 지원자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전화를 하던 직원을 봤을 때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멋모르던 나는 나름 최선을 다해 1차 면접을 치렀다. 면접은 이틀 동안 진행되었다. 2차 면접에서 면접관들이 던졌던 질문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코로나 안전 수칙 10가지를 말해보세요.”
직무와 아무런 관련 없는 질문을 눈하나 깜짝 않고 하던 그들을 봤을 때 드디어 깨달았다. 아, 여긴 나를 위한 자리가 아니구나. 누군가를 위해 마련된 쇼구나. 말문이 막혔다. 대충 다섯 가지 정도를 지어낸 뒤 황급히 면접장을 나왔다. 그다음 질문이 뭐였는진 생각도 나지 않는다.
집에 돌아올 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애썼던 마음, 노력, 이런 것들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면접에 왔던 수십 명의 시간이 허무하게 낭비되었다. 나는 너무 분했다. 엉뚱하게 누군가의 엑스트라가 되어 버린 하루는 최악이었다.
주변 어른들에 억울함을 토로하니 “세상이 그런 것”이라,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몇 년이 지난 일이지만, 나쁜 건 그 사람들이지 내 잘못은 아니다.
한바탕 휩쓸고 간 폭풍의 잔해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마지막 작품
독백의 순간을 버티고야 비로소
2019년 9월, 악동뮤지션은 앨범 [항해]를 발표했다. 지금은 명반 딱지가 붙어있는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무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이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물 만난 물고기」다. 폭풍의 잔해 속에도 “날아가는 생명들”이 여전히 살아내야 하는 우리들의 모습처럼 느껴지는 까닭이다.
그 최악의 면접 이후, 나는 취업을 아예 접어버렸다. 학생들을 가르칠 좋은 기회가 생겨 20대에 자영업자가 되었고, 지금도 열심히 운영 중이다. 치사한 어른들이 선사해 준 최악의 하루는 나름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울고불고하던 “독백의 순간을 버티고야“ 지금은 하고 싶은 공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그냥저냥 살고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서“ 살아야 하는 어른이 돼버린지도 한참이다. 친구들의 취업 일화를 듣다 보면 억울한 일은 참 비일비재하다. ‘세상이 그런 거라’ 나를 위로하던 그 말처럼 세상은 정말 그런 걸까?
그래도 아직은 믿어주고 싶지 않다. 물 만난 물고기들처럼 “우리가 노래하듯이,” “우리가 말하듯이,” “우리가 헤엄치듯이 살길” 바랄 뿐이다. 그날, 함께 들러리를 섰던 수십 명의 지원자들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행운을 빈다. ‘세상이 그런 거라’는 그들의 말보다는, 우리 지푸라기라도 잡아서, 죽기 살기로, 꼭 살아요. 이왕이면 행복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