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별소녀 Oct 07. 2021

행복하자. 우리

"정림아, 새옹지마가 무슨 이야?"


아버지가 갑자기 물으셨다. 몇 초간 잠시 생각했다.

'한자를 잘 아시는 아버지가 새옹지마의 뜻을 모르실 리가 없는데... 왜 물어보시지? 물어보신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의아해하며 새옹지마의 뜻을 자세히 설명해 드렸다.  


''옛날에 어떤 노인이 키우던 말이 집을 나갔는데 얼마 후  말이 다른 말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데요. 그런데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떨어져서 다리를 다쳤데요. 그런데 마을에 전쟁이 일어나 남자들은 다 전쟁에 나가게 되었고 노인의 아들은 다리를 다쳐서 전쟁에 나갈 수 없어서 목숨을 건졌데요.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은 인생을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는 뜻이에요."


이야기를 다 들으신 아버지의 얼굴은 어딘가  어두워보였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그로부터 개월 . 아버지가 우리 가족 모르게 어딘가에 전재산을 투자했고 투자 실패로 빚더미에 앉게 되자 일수에. 사채에. 아버지가 받을 수 있는 빚이란 빚은 다 받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평생 그런 식이었다. 한탕주의에 젖어 엄마가 힘들게 야채장사를 해서 벌어놓은 돈을 하루아침에 허공에 날려버렸다. 엄마가 돈을 버는 사주라면 아버지는 터는 사주라고 점쟁이가 얘기했다. 밑 빠진 독에 계속해서 물을 붓는 꼴이었다. 빚더미에 앉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뒷수습은 엄마 차지였다. 엄마는 아버지의 도박빚을 갚기 위해 길거리에서 노점 장사를 하시게 되었고 얼굴과 손과 발에 동상이 걸리면서까지 힘겹게 자식들을 뒷바라지하셨다. 엄마가 고생할수록 아버지에 향한 내 미움과 원망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이번이 벌써 5번째이번엔 빚이 우리 가족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달했다.


"엄마, 이제 그만하자. 나는 당장 결혼할 생각도 없고 나중에 결혼을 하더라도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반대하는 결혼이라면 안 할게. 엄마도 희생 그만하고 남은 인생 행복하게 살아."


내가 죄인인 것 같았다. '나만 없었더라면 엄마가 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진작에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어렸기 때문에 엄마는 가정만은 지키고 싶어 하셨다. 나중에 내가 커서 결혼할 때 부모님의 이혼이 행여나 걸림돌이 될까 봐 엄마는 속상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조차도 꾹꾹 누르고 또 억누르며 참고만 살아오셨다. 엄마의 행복은 1순위가 아니라 늘 포기의 대상이었다.


오랜 설득 끝에 부모님은 결국 이혼하셨고 우리 가족은 깨진 유리조각들처럼 산산조각 나 버렸다. 아버지는 계속된 거짓말로 이미 깨져버린 우리 가족을 겨우겨우 붙들어 놓고 싶으셨겠지만 이미 곪을 대로 곪아버린 우리 가정은 더 이상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되었다. '아버지가 좀 더 일찍 사실을 털어놓으셨다면 가 달라졌을까?' 아마도 갚아야 할 빚은 조금 줄어들었겠지만 이 모든 상황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매일같이 일수업자와 사채업자가 집으로 들이닥쳤다. 빚 독촉에 나는 하루하루를 가슴 졸이며 버텼다. 누군가는 현관문을 두드리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고 내가 외출할 때면 뒤를 미행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다. 엄마는 결국 아버지의 빚을 모두 떠안는 조건으로 이혼을 하셨고 아버지는 집을 나가셨다. 그렇게 나와 엄마는 단둘이서 살게 되었다. 부모님의 이혼. 빚더미. 가난이 더해지면서 그해 겨울은 몸과 마음이 너무나 추웠다. 돈이 없어서 보일러를 틀 수 없어서 집안에서도 옷을 여러 겹 껴입고 양말을 겹겹이 신어도 발이 시리고 입에서는 입김이 나왔다. 


부모님이 이혼하실 당시. 두 분 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국민학교도 제대로 못 나오셨기 때문에 복잡한 이혼 서류를 작성하시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보였다. 그래서 내가 이혼 서류를 작성하게 되었다. 자식이 부모님의 이혼 서류를 쓰다니... 마치 내 손으로 두 분을 갈라서게 만든 것 같아 죄책감이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귓가에 환청이 들렸다.


"뛰어내려!"


6층 베란다에 서서 1층을 내려다보았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이 모든 고통이 다 끝날까? 하지만 혹시 완전히 죽지 못하고 살아남게 되면? 혼자 남은 엄마는 어떻게 하지?' 하는 아찔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환청이 들려서 놀랐고 무서웠다. 그날 일은 나 혼자만 알아야 하는 비밀이 되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다행히 환청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내 마음도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정림아, 엄마랑 같이 죽을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번엔 엄마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엄마의 얼굴은 슬픔으로 얼룩져있었다. 엄마는 이혼 후에 본인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큰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려와서인지 그 충격으로 쓰러지셨고 없던 심장병을 얻으셨다. 어떻게 해서든 엄마를 살려야만 했다. 같이 잘 살아보자고 엄마를 일으켜 세워야만 했다. 이렇게 죽기에는 너무나 억울했다. 남은 인생을 행복만 맛보며 엄마와 살고 싶었다.

 

"싫어, 엄마. 난 안 죽을 거야. 난 아직 25살이고, 결혼도 안 해봤고, 해보고 싶은 게 아주 아주 많아. 내가 시집도 안 가고 늘 엄마 곁에 있을게.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아빠가 진 빚 갚는 거 많이 도와줄게. 엄마, 나쁜 생각하지 말고 나랑 같이 오래오래 살자. 나도 예전에 엄마 아빠가 이혼하자 아파트에서 뛰어내려!라고 환청도 들리고 죽고 싶었는데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어. 엄마도 시간이 지나면 지금보다 괜찮아질 거야. 엄마 힘내... 내가 있잖아... "


엄마는 그 당시에 내 앞에서 울거나 힘든 내색을 거의 하지 않으셨다. 그랬기에 더욱 엄마가 안쓰러웠다. 아마도 내가 없는 곳에서 눈물을 흘리고 계셨을 것이다. 생전 안 드시던 술을 이혼 후에 처음으로 드시기 시작했다. 그런 엄마가  낯설었지만 스트레스를 그렇게라도 고 계신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엄마에게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너무 불안했다. 그래서 엄마 앞에서는 유독 많이 웃고 밝아지려고 노력했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찾아오듯이 엄마와 내게도 웃을 수 있는 날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나도 엄마가 곁에 있어서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얻었듯이 엄마도 내가 있기에 포기하지 말고 지금의 혹독한 시련을 잘 이겨내기를. 앞으로는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매일 밤 잠들기 전. 기도했다.


''엄마, 앞으로는 내가 믿음직한 남편. 든든한 아들. 애교 많고 살뜰한 딸. 다정한 친구 할게.

그러니 제발 포기하지 말고 남은 인생 나랑 같이 행복하게 살자. 엄마, 아프지 말고...''



 

작가의 이전글 점박이 복숭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