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발리 비건 여행ㅣ비건 아이스크림 모음
덥고 습한 날씨에 지친 친구가 아이스크림 가게를 보며 말했다. 내가 비건을 지향한 후로 먹을 수 있는 게 한정적이라는 걸 잘 아는 친구는, 나와 있을 때는 아무 데나 들어가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나 역시 메뉴를 확인하지 않는 이상 아무 데나 들어가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그런데 발리가 어떤 곳인가. 비건들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곳이 아닌가.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한번 들어가 볼까?”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깔끔한 분위기를 풍기는 젤라토 시크릿. 밖에서 봤을 때 비건 표시 같은 게 없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어가 본 것뿐.
그런데 있었다! 심지어 꽤 많았다!
비건 젤라토
레몬 진저
패션 후르츠
오트 밀크 트리플 베리 소스
용과 시나몬
망고
오트 밀트 초콜릿 캐러멜 헤이즐넛
Oatmilk Chocolate Caramel Hazelnet
* 비건
소르베류는 대부분 비건이니 그러려니 하겠는데 초코 아이스크림이 비건이라니! (초코쟁이가 이걸 놓칠 순 없지.) 감격하며 먹어봤다.
맛있다. 식감도 적당히 꾸덕하고 맛있는데, 너무 달다… 머리가 아파질 정도로 달다… 우붓에서 미쿡 단맛을 느낀 순간 처음 두세 스푼까지 아주 맛있게 먹었고, 그다음부터는 남기기 아까워서 먹었다… 먹으면 먹을수록 물 마시고 싶어지는, 그런 단맛이었다.
우붓 여행을 검색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투키스.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인데 그렇게들 맛있다더라. 코코넛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여기 아이스크림은 맛있다는 후기가 대부분이었다.
맛있다는 건 충분히 알았으니, 비건인지 아닌지가 너무 궁금했다. 코코넛 아이스크림이라 비건일 것 같긴 한데, 우유 같은 거 넣은 코코넛 아이스크림도 많으니까 방심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 어떤 후기에서도 비건 정보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직접 물어봤다.
비건 맞다고 한다! (소리 질러!)
Tukis Coconut Ice cream
* 비건
투키스 기본 아이스크림에 와플 하나 꽂힌 거 주문했는데, 정확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메뉴를 잘 찍어놓아야 하는 이유)
하도 맛있다고 하니까, 거기다 비건이라고 하니까 주문까지는 했는데, 사실 난 코코넛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코코넛 향을 안 좋아하는데, 한국에서 출시된 비건 아이스크림 중 코코넛 향이 났던 것들은 다 불호일 정도였다.
그런데 놀랐다. 너무 맛있어서. 코코넛 향이 과하지 않으면서도 코코넛 특유의 감칠맛은 느낄 수 있었다. 코코넛 아이스크림이라기보다 코코넛의 감칠맛이 도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다고 해야 할까? 달기도 적당해서 아주 좋았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위 토핑들(생코코넛 과육, 말린 코코넛, 코코넛 가루 등)이 아이스크림과 잘 어우러져서 씹는 재미가 있었다.
기본 아이스크림 말고도 메뉴가 다양했는데, 이걸 다 못 먹어본 게 한스러울 지경이다. (이렇게 맛있을 줄 알았으면 여행 첫날부터 찾아갈 걸 그랬다…)
만약 우붓에 가실 분들이 있다면, 여행 초기에 투키스에 가서 기본 아이스크림을 맛보고, 본인 취향과 잘 맞는다면, (저처럼) 후회하지 않도록 매일 가시길..!
발리 여행이 끝나고 돌아가던 날, 덴파사르 공항에서 아이스크림 부스를 발견했다. 아이스크림이 당겨서 비건 메뉴가 있는지 물어봤다. 역시나, 있단다! (발리 사랑해요)
비건 아이스크림 & 소르베
페레로
민트 초콜릿
다크 초콜릿
망고
파인애플 코코넛
Mango & Mint Chocolate
* 비건
내가 고른 건 망고와 민트 초콜릿. 망고는 그렇다 쳐도 (한국에서는 망고 아이스크림도 비건이 아닌 경우가 많지만) 민트 초코가 비건이라니! (발리, 자꾸 이렇게 감동시킬 거야..?)
그런데 이 민트초코… 진심으로 감동했다. 너무 맛있어서. (눈물 날 뻔) 제일 놀란 부분은 민트가 인공향으로 첨가된 것이 아니라, 진짜 민트 허브가 들어갔다는 것. 민트를 잘게 다져 넣었고, 초코칩도 콕콕 박혀있었다. 이러니 맛이 없을 수가 있냐고. 내 인생 최고의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을 맛보았던 순간이었다. (망고는 그냥 망고맛이었다.)
만약 민초파가 있다면, 그런데 발리 덴파사르 공항에 갈 일이 있다면, Le Petit Jemma를 찾아가세요. 그리고 민초 아이스크림을 꼭 드세요! 저는 민초로만 두 스쿱 주문하지 않은 걸 후회했습니다.
비건을 지향한 후로 해외 나갈 길은 다 막혀서 한국에서만 지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아이스크림 영역은 어느 정도 포기했었다. 한국에서 대체육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지만 아이스크림은 우유가 안 들어간 제품을 찾아보기 힘드니까. (청포도 맛 아이스크림에도 우유가 함유되어 있으니 말 다했지…)
‘우유 없이는 아이스크림을 만들기 힘드나 보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자리 잡았나 보다. 그런데 발리에서 그 모든 선입견이 깨졌다. 비건으로 안 되는 게 없었다. 꾸덕꾸덕한 초코 아이스크림도 가능했고 (예상보다 너무 달아서 당황스러웠지만) 웬만한 밀크 아이스크림보다 맛있는 코코넛 아이스크림도 있었다. 심지어 논비건+비건 인생 통틀어 최고의 민초 아이스크림도 비건으로 맛볼 수 있었다!
불가능한 줄 알았더니 안 하는 거였나 보다. 이제 한국도 비거니즘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어서 맛있는 비건 아이스크림이 종류별로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