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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Jul 27. 2022

60세 넘은 아빠의 저장 강박증

정리 에피소드


언젠가 친구가 아버지에 대해 말했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빠가 물건을 사들이며 안방에 쌓아놔. 이제는 장롱 위까지 물건이 가득이야..."






공간에 대한 심리를 배우면서 '저장 강박증'이란 말을 알게 됐다.



저장 강박증
: 절약 습관이나 취미로 모으는 수집이 아닌, 물건을 쌓아두면서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행위



어떤 엄마는 아기가 코 푼 휴지까지 서랍장에 보관하고 있고 아이에 대한 애착이 옷을 사주는 일이 되어서 방에는 아이 옷으로 가득하다는 사례도 듣게 되었다.



내가 컨설팅하면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것은 60대 이상의 퇴직한, 우리네 아버지들에게 많이 보이는 증상이었다. 생필품들을 현관부터 쟁여두는 어머님도 있었다. 이런 경우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온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는 상실감에서 오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소환하고 싶은 두 분의 아버지가 있다.


퇴직을 하고 자신들의 물건들을 점점 늘려나가서, 결국 어머니들은 안방에서 밀려나 거실 생활을 하고 계셨다.




하나. 구멍을 채우는 아버지



내가 방문했을 때 젊은 고객님, D님은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셨다. 목소리가 작은 분인가 했는데 얼마 안 있어 방에서 버럭 큰소리치는 남자 음성에 깜짝 놀랐다. 아버지가 정리하는 것을 반대하시는 것이었다. 10년 전에 퇴직하시고 이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안방은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오래된 TV, 장롱 안과 책상 위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마치 만화책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었다.



아버지가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신다고 한다. 음식점에서 쓸 법한 큰 기름통, 각종 소스들, 식품들이 많았고 청결상태가 좋지 못했다. 베란다는 죽은 화분들이 왼쪽부터 끝까지 가득하다.



해외에 있다가 들어온 따님, D님은 이제는 더 이상 안된다며, 정리를 강행했다. 하지만 현장 당일까지 아버지의 반대로 취소하지 않을까 불안했다.




당일 아침,

아버지는 부재중이셨다. D님의 진두지휘로 할머니 방의 가구들부터 비워내고, 물건들가득  방들의 바닥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이 있었다.


현관에 놓인 장화에 따지 않은 와인이 하나씩 꽂혀 있다. 그리고 책상 밑의 구석에 어울리지 않는 플라스틱 세제통이 있어 꺼내보았다. 칼로 중간 부분을 도려내어 만들어진 문이 있었고 그 문을 열어보니, 안에는 볼펜들이 가득 넣어져 있다.



상실감의 크기를 느낄 수 있었던

할 말을 잃었던 순간이다.



오후에 아버지가 등장하셨다. 나는 전담 마크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가갔는데 아버지도 큰 결심을 하신 태도셨다. 나는 너무나도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 고객님께 소품들의 양을 보여드리며 비우기 작업에 착수했다.



비우기를 하며 내게 "미안합니다."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신다. 아버지는 어떤 심경이신 걸까...?




정리 

D님이 보낸 메시지에는,


"아빠가 서재에서 안 나오세요. 계속 책상 의자에 앉아 계세요."



아버지는 책상  오랜만에 보는 물건들과 하나씩 대면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실까?



나는 결코 짐작하지 못할 아버지 고객님의 심경이지만, 분명 긍정적인 바람이 불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D님의 문자에서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두울. 침대 밑, 연장이 한가득



여기 100%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한 따님, M님이 있다. M님은 결혼을 해서 출가를 했지만 거실에서 생활하는 엄마를 위해서 안방에 침대와 화장대를 놓아드리고 싶다는 바람에 정리를 신청했다.


집에는 다른 형제 가족들도 함께 살고 있었는데, 효심 가득한 M님이었다.


안방에는 크고 무거운 침대가 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주변으로 아버지의 자전거가 전시되어 있고 장롱에 못 들어간 아버지의 옷들은 자전거 위로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큰 침대를 비우고 싱글 침대 두 개를 놓자고 오랜 기간을 설득해 온 M님이지만 아버지께서는 절대 버릴 수 없다며 완강하게 거부하신다. 역시나 현장 당일에도 마음은 바뀌지 않았고 M님께 새로운 정보를 들었다.



"저 침대 밑에 아빠가 쟁여둔 연장이 가득해요~~~!"


무겁고 위험한 연장이 침대 밑에 있다는 말에 섬뜩한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연장을 장난감처럼 다루시는 아버지의 취미 중 하나로 저 공간이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다.




먼저 안방의 자전거를 빼내기 위해 베란다의 오래된 물건들을 비우고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싱글 침대가 일찍 도착해서 안방에 자리를 제대로 못잡고 다른 물건들 비우기가 한창일 때였다.



아버지께서 결단을 내리셨다!



침대를 뺄게요.



와우와우.




우리 엄마는 침대 밑에 물건을 두면 안 좋다는 이야기를 옛날에 어디선가 들으시고는 서랍이 있는 침대 구입을 꺼려하셨던 분이다. 미신을 믿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엄마를 설득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크고 무겁고 위험하기도 한 연장 위에서 누워서 잔다는 것은 기운을 빼앗기는 일이다.



아버지를 정말 많이 칭찬해 드렸다.  이후로 아버지는 부산. 왜냐하면 침대 아래에 있던 소중한 장난감들을 이동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아파트 경비실과 얘기해서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고 한다.





우리 일반인들도 정리를 시작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컨설팅을 시작할 때 나의 첫마디는,


"큰 용기를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다.



그런데 오랜 세월을 일만 하시며 여유를 즐기실 줄 모르시다가 퇴직한 후의 말도 못 할 상실감은 감히 가늠조차 할수 없다. 그래서 그 부분을 채우기 위해 물건들을 모으기도 하는데, 이러한 안정감을 버리고 이제 정리를 하겠다는 마음가짐은 몇 배로 큰 용기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정리 후,

이제 안방에는 호텔과 같이 싱글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예시 사진) 아버지와 어머니 침대




과거로부터의 매듭을 짓는 일

그리고 현재의 소중함을 깨닫는 일



정리는 내가 소유한 물건들은 물론, 옆에 있는 가족들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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