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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트라우마가 된 그 아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그 남자아이

by 정수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 20년 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너에게 글로써 전한다.




나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아이 이름 세 글자를 단 한 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다.

지옥에 있다고 하더라도 내 현실보단 낫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사실은 이미 지옥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우연히 성인이 되어 버스에서 만난 나와 가장 친했던 동창이 그 아이에게 물었다고 한다.

왜 그렇게 그때 우리를 괴롭혔는지 물었고 근데 대답은 참 쉽게 나왔다고 한다.


"기억 안 나"

수많은 괴롭힘과 학교폭력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치부되었고 그 아이는 어색한 듯 웃어넘겼다고 했다.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오랜만에 만난 그 아이는 이전과 다르게 순해 보였고 차분해 보였다고 했다.


기억 안 난다는 말로 스스로 면죄부를 주면서 편하게 살았겠구나. 나는 그 자리에서 깊은 허무감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내 삶은 때때로 행복감이 찾아왔을 때에도 그걸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삶이었다.

행복하면 늘 치욕스러운 과거들로 행복을 온전히 누리기보다는 불행이 곧 찾아온다는 불안감에 매여 살았다.

언제나 그렇듯 당한 사람은 생생한 기억으로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가해자들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나는 그럼에도 용서하고 싶었다. 용서하면 이제는 내가 자유로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폭력 앞에 무기력하고 대응하지 못해 답답하고 혐오스러웠던 나 자신도 용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나를 용서할지라도 가해자인 그 아이는 용서하지는 못할 거 같다.


사람을 칼로 잔인하게 찌르는 것만이 죽이는 게 아니다. 수 없이 받아내야만 했던 모욕, 수치심, 조롱 그 모든 것들은 내 영혼을 갈기갈기 찢었다. 나는 그저 살아만 있는 사람일 뿐, 영혼은 이미 없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이미 삼십 대 중반이 되어가는데도 나는 그때 그 교실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정한 사진과 함께 진지한 연애를 한다는 소식을 오래전 우연히 들었어. 좁은 동네다 보니 듣고 싶지 않은 소식도 듣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결혼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앞으로 사는 동안만큼은 누군가를 해하거나 괴롭게 하는 일은 하지 않고 살길 바란다.


그리고 때때로 너무 많은 행복을 갖지는 않길 바란다. 그럼 너무 불공평하니까.


나는 극도로 피곤한 날에 잠자리에 들면 늘 똑같은 악몽에 시달린다.

그리고 20년이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한 해도 빠짐없이 그 꿈을 꾸고 있다.


장소는 졸업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중학교, 복도 가장 끝에 있던 3학년 5반 교실과 교탁 앞 세 번째 자리에 앉아 있는 내 뒷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내 등을 대고 쉴 새 없이 욕설을 퍼부어대는 그 아이.

그리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저 방관하는 같은 반 친구들까지 모두 생생하게 그려진다.


"야, 야 대답하라고 했지 시발 무시하냐?"

"내 말 무시하지 말랬지, 야 미친년아 야 대답하라고"

"뒤지고 싶냐 야 못 들은 척하지 말라고 미친년아"


수업 종이 친 이후에도 영어 선생님이 들어오지 않자 처음엔 조용했던 우리 반이 웃고 떠들고 심지어는 뛰어다니는 소리들로 시끄러워졌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처음에는 내 등뒤로 야, 야 하면서 내 이름을 계속해서 불러댔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뒤를 돌아보면 미친년 또는 시발년 등의 욕과 함께 왜 쳐다보냐면서 내 얼굴에 대한 심한 모욕을 할 거다. 그래서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처음엔 이름을 부르다가 나중엔 미친년, 시발년이 나의 이름이 되었다.

그럼에도 내가 대답하지 않자 내 의자를 계속해서 발로 차고 있다.

처음엔 작게 차다가 나중엔 내가 앞으로 밀려날 만큼 세게 발로 치면서 목소리를 높이면서 욕을 하고 있다.


수많은 소음들 중에서 그 애 목소리가 가장 큰데도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잠시 지켜보기만 했을 뿐. 결국 내가 돌아봐야지만 이 모든 게 끝날 것만 같아 버티고 버티다 결국 뒤를 돌아봤다.


"왜.. 왜 그래 하지 마"

"뭘 하지 마 미친년아, 진짜 뒤지고 싶냐? 시발년이 한 번만 더 내 말 무시하면 죽여버릴 줄 알아"


위협적인 목소리와 큰 덩치로 위압감에 휩싸인 나에게 시간은 1초가 1분 같고 1분이 1시간 같게 느껴진다. 제발 벗어나고 싶은 그 순간 교실에 선생님이 들어오면서 한창 웅성웅성 시끄러웠던 소리는 정리된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잠에서 깬다. 꿈이라는 걸 자각할 때쯤에도 나는 한동안 소리 내어 눈물을 흘린다. 그 꿈이 너무 생생해서,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내가 너무 불쌍해서 나는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그 아이의 괴롭힘의 시작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내가 신고 있던 실내화를 밖으로 던진다거나 치약을 얼굴에 묻힌다거나 지나가면 조롱했다.


나는 바보 같게도 그게 진짜 그 아이 말 그대로 장난인 줄 알았다.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2학년 때는 친한 친구들도 좀 있었다. 두루두루 잘 지내고 있는 상황에서는 심하게 나를 괴롭히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3학년이 되니 친한 친구들과 끝과 끝의 거리가 될 만큼 나만 가장 거리가 먼 반으로 배정받았다. 그때부터 괴롭힘은 심해졌다. 이유는 없었다.


그 아이는 나 외에도 자신보다 키가 작고 약한 존재인 친구들도 사정없이 괴롭혔다. 나는 여자라서 위협적인 행동을 받거나 의자 다리를 발로 차거나 때릴 듯한 행동을 취하는 경우였다.


그러나, 같은 반 남자애는 숨을 못 쉬게 목을 조른다거나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 아프다고 그만하라고 해도 웃으면서 계속 폭력을 썼다. 늘 장난이라는 식으로 웃으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걸 즐거워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190이 넘는 거구의 키로 치졸하게 자신보다 힘이 약한 애들만 골라서 괴롭혔다. 심지어 영어 원어민 선생님한테까지 수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언제나 방해했다.


선생님이 울면서 교실 밖을 나갔을 정도였다. 늘 사람들을 괴롭히고 괴로워하는 상대를 보고 즐겁게 웃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가 변했다는 말은 절대 믿지 않는다.

반성하거나 조금의 미안함도 느끼지 않고 살고 있을 거라는 것도 확신한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나는 그 아이를 용서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거다.

너의 행복을 바라거나 행운이 가득한 삶을 바라기 위해서가 아닌 오직 나의 해방을 위해서.


이 글을 완성시키는 데에 나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만큼 지독했던 내 과거를 돌아보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아직도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그 아이에 대한 분노의 불씨가 언제 다시 지펴질지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 지옥의 순간에서 기필코 벗어나고 말 것이다.

아직도 여전히 그 아이가 평생 괴롭게만 살다 영원히 행복을 모른 채 사라져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그 생각을 할 때면 마음이 가벼워지거나 한결 편해진 적도 있지만 마음 한편은 찝찝한 감정이 남아있었다.


그 아이의 불행을 바라면서 시간을 보내는 순간은 너무 길었다.


나는 늘 자책하기만 했던 나 자신을 이제는 사랑해 줘야겠다.

아직도 그 교실에 갇혀 무섭게 떨고 있는 15살 나에게 따스한 체온을 전해주기 위해 손을 맞잡아 주고 싶다.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가서 15살 나를 만난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너는 잘못한 게 없어, 그럼에도 살아남아줘서 고마워"


살아줘서 더 서로를 아껴주는 소중한 가족을 만나게 해 줘서 고맙다고.

비록 내가 작은 재도 남지 않을지라도 모든 걸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그런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를 만나게 해 줘서 고맙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흐릿해지겠지만 완전히 잊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제는 내게 온 행복을 온전히 누리면서 살아가기 위해 나아갈 것이다.


비록 불안감이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고 작은 그림자처럼 나를 쫓아다닐 수도 있겠지만,

그 작은 그림자 뒤에 은은하게 찾아오는 빛을 놓치지 않고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가 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나에게도 분명 온전한 행복을 느끼는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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