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최적의 탈출
블라인드는 사막의 아침 햇살을 가리지 못했다.
사막의 첫 아침, 잠에서 깨어 덮고 있던 눈가리개를 벗으니 햇살이 한가득 눈부시게 눈을 뒤덮어버렸다. 기대하지 못했던 너무나도 강하고 많은 햇살이 얼굴 전체로 빨려 들어와 버려 마치 한 대 얼얼하게 맞은 것 같았다.
눈가리개를 벗은 뒤 습관처럼 귀마개를 빼려고 귀에 손을 대었는데, 처음부터 하고 잠이 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강렬한 햇살과 고요함. 그제야 내가 사막에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드디어 번아웃에서 벗어나 함께 해야 했던 사람들 무리에서 벗어난, 한 번쯤 꿈꿔보았던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그리고 아무 계획도 정하지 않은 사막에서의 휴식시간이 시작되었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침이 아니라 해가 중천에 뜬 시간이었다.
사막은 해가 있고 없을 때의 차이가 극명하다는 정보 덕분에, 내 딴에는 기특한 아이디어가 생각났다며 마침 서랍장에 넣어두고 쓰지 않던 두툼한 거위털 이불을 집을 막 나서기 전에 얼른 큰 가방에 넣고는 집을 떠났다.
사막에 도착한 첫날밤, 방을 한가득 메우는 에어매트리스를 설치하고는 뿌듯한 마음에 가방을 열어 이불을 꺼내보니... 세상에 어쩌면 두툼한 거위털 이불은커녕 얄따란 이불 커버만 급하게 달랑 가방에 넣어 가지고 와버린 것이었다.
밤에는 아직 하루 종일 후끈후끈 달아오른 사막의 열기 때문에 에어컨을 틀어야 해서 다행이었지만, 예상했던 대로, 새벽 내내 어찌나 쌀쌀하던지... 잠에서 깨어 뒤척이다가 결국 가지고 온 긴팔 후디를 껴입고 양말도 꺼내 신고 얇은 이불 커버를 온몸에 밀착해 둘둘 감고서는 연신 팔과 다리를 비벼댔다. 그렇게 새벽 내 인상을 쓰고 꼼지락 대다가 어느새 잠이 깊게 들었었나 보다.
블라인드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 햇살이 한가득한 방 안은 새벽에 쌀쌀해서 뒤척이며 잠이 들지 않았던 시간이 꿈인가 싶게 이미 후끈 데워져 있었다. 그 강한 햇살에 눈을 겨우 반쯤 뜨고는 긴팔 후디를 느릿느릿 벗으면서 방문을 열었다. 아직 아무런 가구가 없는 작은 집은 그저 휑하고 바닥에는 버석버석 모래가루가 밟혔다. 창문 밖에는 드넓은 황야와 저 멀리 보이는 돌 언덕,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와... 나는 이 강렬한 태양 아래 사막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만들어 놓은 작은 콘크리트 상자 안에 들어있구나... 하는 생각에 왠지 자연인으로 돌아간 듯한 낯선 설렘에 싱긋 미소가 지어졌다. 더군다나 코로나 비대면 시대에 모든 집들이 각각 5 에이커(약 6000평)에 하나씩 떨어져 있어서 누군가와 접촉할 일도 없어서 의도하지 않은 최적의 시간에 최적의 탈출이었던 것이다.
사방이 뻥 뚫린 광활한 대지를 바라보며 흐뭇해하다가 갑자기 집 안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이 작은 콘크리트 상자 안에 갑자기 갇힌 기분이 들어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간, 머리 위에서 직각으로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 덕분에 그 콘크리트가 열심히 달궈져 공기가 후끈하게 익어대고 있는 바람에 숨이 턱 하고 막혔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얼른 두 방과 거실, 그리고 화장실과 뒷문에 있는 창문이란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맞바람이 제법 솔솔 불어왔고, 길 건너의 이웃이 설치해 놓은 풍향계는 빙글빙글 신나게 돌아가고 있었다.
신발을 신고 안경 위에 선글라스를 대충 얹혀 쓰고 밖으로 나갔다. 지난밤에 도착했을 때에는 깜깜해서 보지 못했던 멀리 떨어진 이웃집들과, 집 사이 어설프게 설치 해 놓은 철장 울타리들, 그리고 말라서 죽어버린 것인지, 혹은 그냥 그렇게 가까스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몇 개의 선인장 나무들, 그리고 너무 생뚱맞은 작은 동그란 호박들이 여기저기에 자라고 있었다.
시원한 물 한잔과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은데, 아직 집에 냉장고도 없고 앉을 의자도 없었던 터라 일단 차를 타고 가까운 동네 번화가 도로로 나가는 일로 첫 번째 날을 시작 해야 했다.
현관문 앞에 주차해 놓은 차를 열어보니 차 안의 열기는 어마어마했다. 마치 달걀 한팩을 차 안에 종일 넣어두면 태양열로 완숙된 달걀들을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차문과 창문을 모두 활짝 열어 열기를 좀 진정시키는 동안 철장 울타리 대문에 걸려있는 자물쇠를 열고 엉성하게 감아놓은 큰 쇠사슬을 빙빙 돌려 풀어 철장 울타리를 활짝 열어서 차가 나갈 수 있게 했다. 사실 나갈 때와 들어올 때 자물쇠를 열고, 두꺼운 쇠사슬을 푸르고, 또 잠그고 하는 것이 참으로 귀찮았지만, 워낙 사람이 띄엄띄엄 사는 동네인지라, 집에 있어도, 집 밖에 외출을 해도 꼭 어설프지만 철장 대문을 자물쇠로 잠가 놓는 것이 그래도 마음이 놓였다.
한번 집에서 나와 번화가 도로까지 나와서 일을 보려면 차로 30분을 비포장 도로와 포장도로를 지나 달려가야 했다. 일단 큰 마트에 가서 3리터짜리 물을 몇 통을 집어 들었다. 워낙 큰 규모의 마트에 인구밀도가 적은 동네라, 마트 안에서도 사람들을 스치는 일이 별로 없었다. 점심시간이 지나 출출했던 터라 델리 섹션에 가서 간단히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원래는 각 한 개씩 만들어 먹으려고 했는데, 직원이 만드는 샌드위치 하나가 2명도 족히 배부를 사이즈길래 하나를 반으로 컷팅해서 하나씩 들고 차에 돌아가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샌드위치와 차가운 캔커피를 즐기며 다음으로 갈 장소를 내비게이션에서 찾았다. 일단 집안에 깔려있는 모래가루와 먼지를 치울 수 있는 청소기와 걸레, 행주 등을 사야 했고, 냉장고와 세탁기도 사야 했다.
이삿짐도 없이 시작하는 터라 모든 것이 처음 시작점에서의 출발과도 같았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나라에서 나라로,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을 하며 살아왔지만 나도 모르게 늘 당연한 기회로 대도시에서 대도시로 옮겨 다녔다. 가까운 거리에 늘 모든 시설들이 있었고 필요한 큰 물품들은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다. 오히려 차를 소유하는 것이 번거로울 정도였기 때문에 늘 차가 없이 지냈고, 그것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이 곳의 첫 시작은 새로운 작고 큰 도전들을 통해 시나브로 터득하게 되는 인내와 배움들이 있었다.
모든 것들이 빠르게 변화하고 쉬운 2020년, 사막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 Photo by 선인장. Mojave Desert, U.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