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로의 위로
다음 글은 의학적인 내용을 내포하고 있지 않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당신에게 자신이 우울증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운 요즘, 상대방이 마음이 아프다면 더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세상에 그 누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사정과 입장을 전적으로 공감해주는 것을 싫어할까? 세상 모두는 사랑을 원한다. 하지만 무작정 '불쌍하다'라고 여겨지기는 싫다. 나에게 필요한 건 네 입장을 이해한다는 위 로지, 너의 상황이 불쌍하다는 동정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람들이 쉽게 던지는 말들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
첫 번째로 살펴볼 유형은 다른 사람들 중에 누구누구는 너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인데 잘 지낸다. 객관적으로 세상에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네가 우울해하냐. 나도 이렇게 안 좋은데 너는 왜 우울해하느냐. 는 비교를 통한 환기형이다.
누군가의 슬픔은 오롯이 누군가의 슬픔 그 자체로 이해해줘야 한다.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사정’이 낫다고 예를 들면서 행복하라고 이야기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게 있을까? 더군다나 나보다 사정이 나쁜 사람을 희생양 삼아 행복을 찾으려는 일은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비교를 통한 환기를 통해서 가장 크게 얻을 부작용은 나보다 나은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더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나도 심리상담사에게서 객관적으로 나보다 불행하고 못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불행해하느냐고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이유도 없는데 우울한 무능력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집에 와서 한참을 울었다.
지금까지 잘해왔는데, 지금도 잘하고 있는데, 와 같은 칭찬형이다. 이런 칭찬형이 무슨 문제가 될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칭찬에는 큰 문제가 있다.
우울증 환자는 살아가는 것이 죽는 것보다 무섭다. 지금까지 잘해왔다면, 지금은 못하고 있는 걸까? 앞으로는 잘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힘내'라는 단순한 말은 우울증 환자에겐 '네가 힘을 냈다면 달라졌을 것'이라고 받아들여진다.
우울증에 좋다는 각종 요법들을 추천해주는 경우다. 혼자서 여행을 떠나라. 매일 운동을 해라. 커피 좀 줄여라. 등등이 있다.
상황을 해결해 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다. 상황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크다. 나 자신의 문제들이 나를 좀먹어 생긴 이 병을 해결하기 위한 뱃사공을 바라지 않는다. 이러한 권유형은 나의 우울증을 '작아 보이게' '별거 아닌 것처럼'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는 것을 내포한다. '이것만 한다면 나을 텐데 큰 문제는 아니다.' '이건 금방 해결할 수 있다.'는 느낌을 심어주고 싶은 것은 알겠지만, 심적으로 힘이 들고 무기력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그것을 무언가 하나 바꾼다면 해결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면 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준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력의 부재로 인해 우울증을 앓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자기 자신이 제일 싫은 우울증 환자를 또다시 탓하게 된다.
건강검진차 방문한 병원에서 운동을 안 해서 우울증이 왔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정기적으로 운동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울하다. 내 노력이 부족해서 우울해하며 약을 먹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흘렀다.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견디기가 힘든데, 내 노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왜 들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네가 죽고 나면 부모님은 어떡해? 식구들은 어떡해? 직장 동료들은 어떡해? 와 같은 협박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가족에 대한 유대가 깊은 편이므로 가족들은 어떡하고? 부모님 생각해야지, 자녀 생각도 하며 버텨야지, 라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협박형은 또 우울증 환자가 자신에게 화살을 되돌리는 역할을 한다. '너 때문에 남게 될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견디기 힘들고 나 자신의 삶을 더 이상 지속하기 힘든 사람에게 짐을 더 지워주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이게 무슨 위로냐, 이게 무슨 힘이 될까 싶은 말들이었다. 그저 내 곁에 있어준다고, 네 곁에 있겠다고 말하는 저 문장들은 지금 서문으로 읽어도 눈물이 핑 돈다. 누군가가 슬픔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을 때 그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은 그 슬픔이 사실 깊지 않노라고 너는 거기에 빠져 죽지 않을 것이라는 말 대신 슬픔에 흠뻑 젖은 네가 햇빛에 마를 때 까지 춥지않게 외롭지 않게 곁에 있어주는 행동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하지만 세상은 나 혼자서 살아가야만 한다. 아무도 내 생각과 마음을 온전하게 이해해주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고독하고 외로운 동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과 사람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은 사람으로 치유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어도 곁을 내어주겠다는 누군가의 믿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