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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모으고 남기는 것

프레임 리터러시 : 열네 번째 이야기

며칠간 야근을 하고 늦게 퇴근하다 보니, 집으로 발을 딛는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현관에는 고양이 화장실 모래가 나와 있고 거실 소파와 탁자 그리고 바닥에는 책과 서류, 옷가지 널브러져 있다.


최근 회사의 급한 일을 처리하느라 나는 어디에 없는 듯 공허했다. 그 감정이 그대로 집안에 옮겨온 듯 했다.


집은 크기가 정해져 있다. 몇 평, 방 몇 개라는 숫자 안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런데 물건은 언제나 쉽게 들어와 공간을 차지한다. 우리가 정해진 공간에서 정리와 비움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이유이다.


한 번 놓아두면 어느새 자리를 차지하는 옷장, 책장 등 그런 가구는 물건을 정리하는 틀일 뿐이다. 서랍 속 작은 물건 하나라도 제자리를 잃는 순간, 집은 금세 어수선해진다.


정리를 미루다 보면 폭탄 맞은 듯 어질러지고, 그때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해진다.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매일 경험하고, 배우고, 쌓아간다. 그러나 정리하지 않으면 기억은 뒤엉키고, 감정은 먼지처럼 쌓인다. 다 쓰고도 붙잡아 두려는 집착은 삶을 무겁게 하고, 유효기간이 끝난 계획은 내려놓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니 삶에도 정리와 비움이 필요하다. 그것은 마음의 여백을 만드는 일이고, 다시 시작할 힘을 마련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지금 끊어져 버렸다.


그러면 비움만으로 충만해질까? 꼭 그렇지도 않다. 삶은 결국 무엇을 수집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상승하기도 한다.


책장에 꽂힌 책들이 한 사람의 취향을 말하듯, 우리가 모으는 경험과 기억은 곧 개성을 드러낸다. 여행에서 찍은 사진, 사랑하는 사람과 나눈 대화, 깊은 밤 홀로 읽은 문장들. 그것들은 단순한 수집품이 아니라 나를 빚어내는 흔적이다.


무분별한 채움이 아니라, 나에게 소중한 것을 가려 모으는 선택적 수집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비움이 공허로 남지 않고, 삶의 무늬가 된다.


오늘도 글을 쓴다. 누군가 읽어줄지 모르는 글, 책으로 출간된다는 보장이 없는 글, 이 글쓰기가 나를 돕는 것인지, 아니면 버려야 할 일인지 스스로 묻는다.


정리 없는 수집은 혼란이 되고, 수집 없는 비움은 허무가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 둘의 균형이라고 했는데 내가 쓰는 이 동화와 에세이들이. 집이 정리와 비움으로 숨을 쉬듯, 수집으로 의미를 얻기를 바란다.


거실 소파에서 널브러진 책과 서류들을 치우며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제한된 공간을 가진 존재일지 모른다. 그러니 끊임없이 비우고 정리하며, 동시에 나만의 수집을 이어간다. 그것이 결국 삶을 단정히 하고, 개성을 빚어내며, 나라는 사람을 남기게 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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