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리터러시 열여섯 번째 이야기
문명의 생성과 번영의 수수께끼를 풀어낸 현대의 고전, 『총, 균, 쇠』의 저자를 직접 만날 기회가 찾아왔다.
사실 나는 아직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로서, 매번 고등학교 필독서 목록에 오르고 서울대 도서관 대출 최장기 1위 기록을 지닌 이 책을 늘 곁눈질하며 겉표지만 스쳐 지나간 적이 많았다.
그런 내가 그것도 직장과 가까운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는 오픈 세션에서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를 만난다고 하니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서울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 무대에 오른 그는 자주색 슈트를 입고 있었다. 1937년생으로 이제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세월의 무게를 당당히 이겨낸 듯 정정해 보였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90세를 앞둔 고령에도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감수하며 한국까지 와서 목소리를 낸 이유였다. 그것은 자신이 평생 연구해 온 지식과 통찰을 직접 전하고 인류에게 경고를 남기려는 학자의 사명감,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행동을 촉구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이라는 무대 역시 빠른 변화 속에서 인류 공통의 과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였기에, 그의 메시지는 더욱 특별한 울림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첫째는 새로운 팬데믹과 신종 질병이었다. 코로나19가 남긴 교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언제든 또 다른 전염병이 등장할 수 있음을 경고하며, 백신과 치료제를 넘어선 국제적 의료 협력과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것보다 더 큰 위기를 이어갔다.
둘째는 지구 온난화였다. 기후위기는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어느 한 나라의 정책이나 이해득실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그는 탄소 배출 감축과 재생에너지 전환은 전 세계적인 합의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순간, 우리가 무심코 내뿜는 작은 배출들이 거대한 지구적 위기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셋째는 다소 의외였던 어족 자원의 고갈이었다. 그는 한국이 세계에서 1인당 물고기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라고 언급했다. 그 순간 머릿속 뇌정지가 일어났다. 정말 우리가 그렇게까지 많이 먹는가? 삼면이 바다라서?, 혹은 인구가 비교적 적어서 그런 것일까?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실제로는 ‘수산물 전체’ 소비량 기준으로 일부 연도에서 1위를 기록한 것이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2013~2015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수산물 소비량은 약 58.4kg으로 세계 1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김·미역·다시마 등 해조류까지 포함한 수치였다. 단순한 해프닝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 경험은 내게 중요한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바다를 얼마나 깊이 소모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는 어족자원의 고갈은 가난한 나라의 기회를 앗아간다는 뼈 있는 말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그는 핵전쟁의 위험을 말했다. 냉전은 끝났지만, 여전히 수천 개의 핵무기가 존재한다. 세계 곳곳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오늘, 그 그림자는 인류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핵을 보유한 국가도 그것을 사용한 순간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핵으로 국가적 힘을 과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네 가지 위기 자체보다 정작 말하고자 했던 이유를 끝에 언급했다.
“이 위기는 어느 한 나라가 홀로 해결할 수 없다. 인류가 함께 책임지고, 국제적 연대를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그의 목소리는 체육관을 넘어 전 세계로 가고 싶어 했다. 팬데믹도, 기후도, 바다도, 핵무기도 국경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해법 역시 국경을 넘어야 한다.
다이아몬드 교수 강연은 우리가 지구 공동체로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되묻게 하는 시간이었으며, 동시에 작은 개인으로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한 순간이었다.
거대한 위기를 마주할수록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연대와 합의, 그리고 책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마음에 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