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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는 그림이 전부가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 <인간의 조건>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by 뭉클

의실이다.

그는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 편이다.

건성건성 듣다가 그가 말을 시작한다.

"자, 이제 내가 비장의 무기를 꺼낸다, 나만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을 가지고 있다, 나의 성공사례는 마법이다, 내가 너희들에게 그 마법을 보여줄 것이다, 내 오랜 경험으로 문제의 원론을 알려줄게."

그리고 혼자만 알턱이 없을 당연한 각론이 상대의 동의 없이 무차별적으로 이어진다. 특히 그가 아름다운 미소를 장착하고, 자아도취에 빠져 고조된 음성으로 꼼짝 말고 들어, 안 그럼 나 속상할 거야 무언의 시선을 보내온다면, 그래서 그 속에 꼼짝없이 갇혀버린다면, 째깍째깍 시간은 침묵 속에 흐르고, 귀는 마음에 두고 넋은 사라져 버리는 그런 순간에 도달하게 되겠다...

이것은 지나간 어느 날 현실의 재현이다.

우리는 살면서 종종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

답정녀, 답정남, 나 홀로 대화의 주도권을 움켜쥐고 끊임없이 일방직진는 사람들.

특히 그가 범접할 수 없는 나이와 정점의 사회적 지위를 가졌다면 더 말할 것이 없다.

말의 질이나 양을 가늠할 필요도 없다. 기약 없이 이어지는 말의 힘에 눌려, 공기는 한없이 무거워지는 중이므로. 이따금 끼어드는 상대의 말은 쉽게 흩어지고, 자기 말만 견고하게 공간을 메운다.


벨기에 출신 화가, 초현실주의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인간의 조건>을 본다.

창가에 이젤이 놓여있다. 캔버스에는 창밖 풍경이 그려져 있다. 그림 속 풍경은 실제 풍경과 하나로 이어진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우리 눈은 혼란스럽다.

우리는 지금 창밖을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젤 위에 놓인 그림을 보고 있는 걸까.

눈은 분명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데 머릿속에서는 자꾸 경계가 무너진다.
현실과 재현이 섞이고, 실재와 관념이 뒤엉킨다.

르네 마그리트는 묻는다.

“당신이 보는 세계는 진짜인가, 아니면 당신이 해석한 그림인가?”

우리가 보는 것은 언제나 조건적이다.
우리 눈앞의 사물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다. 우리의 경험과 언어, 가치관을 거쳐 각자 해석된 모습이다.

그렇기에 창밖의 나무를 본다고 믿지만, 실은 내가 마음속에 그려놓은 자기 나무만 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르네 마그리트가 말하는 인간의 조건이다.

이제 나를 본다.

그림은 내 일상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동료의 말을 듣고 있다 싶었는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가 예전에 해봤는데, 내가 보니까, 내 생각에는, 나는 말이야, 그건 말이지... "

그야말로 나 때는 말이지의 향연이다.

자녀와 가족에게 다정한 대화를 시도하지만,

" 했어 안 했어, 맞아 안 맞아, 이래야 돼 저래야 돼, 있었어 없었어, 그래 안 그래, 이거야 저거야..."

알고 보니 죄다 추궁형 설교였다.

도대체 이런 일방적이고 가치 없는 수다의 무례와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어디서든 편안해지고 거침없어지고, 살아온 세월만큼 경험이 많다며 내 선택이나 판단이 나을 거라는 오해, 말이 많아지는 만큼 귀는 닫고 사는 태도, 세상은 더 커지고 달라지는데 변화하거나 고민하지 않는 좁은 시선,

결국 창밖이 아니라 내 그림 속 풍경만 바라보고 취해 있는 이것들이 현재 내가 가진 조건인가 보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시간이 만들어 주는 "나이"는 내 조건들을 한층 단단히 굳혀버릴 수도 있겠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이 사실을 일깨워 준다.

마그리트의 〈인간의 조건〉이 내게 속삭인다.
“네가 보는 그림이 전부가 아니다.”

결국 나이 들어가며 경계해야 할 것은 내 안의 인간의 조건을 계속 자각하는 일이다.

내 그림이 전부가 아님을 인정할 때, 타인의 그림도 함께 보인다.

주름은 늘어도 시선은 겸허하게 언제나 창밖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겸허한 시선은 내가 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내 그림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타인의 그림도 함께 보인다. 그렇게 시선이 유연해진다.

그 유연함이야말로, 우리가 붙잡아야 할 인간의 조건이다.

회의실의 그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존 스튜어트 밀의 다음과 같은 문장을 들려주고 싶다.

“어떤 문제에 대해 가능한 한 가장 정확한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상이한 의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다양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그 문제를 이모저모 따져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누구나 이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모든 인간의 삶이 어떤 특정인 또는 소수 사람들의 생각에 맞춰져 정형화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누구든지 웬만한 정도의 상식과 경험만 있다면,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보다는 자기 방식대로 (his own mode)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1859),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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