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하루키의 수필집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즐겨 읽는다.
수록된 글 중에 ‘누가 믹 재거를 비웃는가’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롤링스톤즈의 리드보컬 믹 재거에 관한 일화다.
믹재거가 한창 젊었을 때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단다.
“나이 마흔다섯에도 ‘Satisfaction’을 부르고 있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에서-
그러나 40년 넘게 믹 재거는 여전히 그 노래를 부르고 있어 세간에 놀리기 좋아하는 일부팬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날엔 늙음을 모른다. 어찌 알겠는가.
흰머리가 늘어나고, 주름이 깊어지고, 몸과 마음에서 왕성한 기운이 빠져나가는 나이 듦의 세계를, 젊은 날엔 상상조차 못 한다.
하지만 그런 날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 결국은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날이 오고야 만다.
쉰 00이 되었다.
이런 격언이 있단다.
50세가 넘었는데 아침에 일어날 때 어디 아픈 데가 없으면 당신은 이미 죽은 거다. 이 정도면 삐걱대는 몸뚱이라도 감사해야 할 판이다.
종합검진 결과 통보서를 받았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근력운동을 하십시오.
당뇨에 대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경미하게 증가하였습니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소견들이었다.
그리고 상담결과 의사의 권고는 간단했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삼십 분 넘게 꾸준히 운동하세요.”
그 한마디가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운동?
달리기라도 해야 하나.
대한민국은 지금 달리기 열풍 속에 있다.
러닝 인구가 천만 명을 넘어섰다는 기사처럼, 아침, 저녁마다 러닝화와 러닝복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공원과 강변을 점령한다. 특히 새로 부임한 대장은 새벽 다섯 시면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아파트 주변을 혹은 학교 운동장을 두 시간 가까이 달린다고 했다.
해가 뜨기도 전 몸을 움직이며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은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달리기는 이제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건강과 자기 관리를 위한 생활 방식이자,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시간과 계절의 교차 속에서 생겨나는 고민과 상처들을 묵묵히 견뎌내는 힘을 준다.
“나는 신체를 끊임없이 물리적으로 움직여 나감으로써,
어떤 경우에는 극한으로 몰아감으로써,
내면에 안고 있는 고립과 단절의 느낌을 치유하고 객관화해 나가야 했다.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직감적으로.”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문학사상 -
달리기는 작가로서의 하루키에게 강인한 체력과 집중력 그리고 지구력을 선사했다.
그는 여전히 착실하게, 꾸준히 진지하게, 달리고 있다.
여기 무라카미 하루키가 운동화를 신고, 얼굴과 목덜미에 선크림을 바르고, 시계를 맞추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있다.
그때 나는 부엌에서 다른 방식으로 달리기를 시작한다.
장을 잔뜩 봐와서 레시피를 펼쳐놓고, 오랜 시간 낯선 요리에 도전한다.
니트롱 장갑을 끼고 라흐마니노프를 들으며 냄비를 닦고, 빈 양념통을 채우고, 냉장고를 비우고,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나는 책 목록을 찾아 주문하고, 다시 청소에 매진한다. 유튜브 땅끄부부의 유산소 체조를 tv 큰 화면에 띄워놓고 뒤뚱대며 내 맘대로 체조를 시작한다.
이렇게 육체적으로 소모되는 피로가 오히려 좋다.
그런 날은 쉽게 잠들고 쉽게 눈을 뜬다.
몸의 피로가 까닭 있게 또는 까닭 없이 미워지고 거슬리는 마음들을 쓸어내린다.
그릇을 닦으며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한다.
결국 누구의 탓도,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멀어지는 사람들을 애써 붙잡을 이유도 없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굳이 밀어낼 필요도 없다.
시간은 우리에게 어떤 것도 처음 그대로 허락하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씻겨 나간다.
나라는 인간에게 있어 계속 달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을까......
서머셋몸은 "어떤 면도의 방법에도 철학이 있다"라고 쓰고 있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매일매일 계속하고 있으면,
거기에 뭔가 관조와 같은 것이 우러난다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나도 몸의 주장에 진심으로 찬성하고 싶다.
... 솔직히 말하면 매일 계속해서 달린다는 것과 의지의 강약과의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별로 없다는 느낌마저 든다. 내가 이렇게 해서 20년 이상 계속 달릴 수 있는 것은, 결국은 달리는 일이 성격에 맞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그다지 고통스럽지는 않다'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좋아하는 것은 자연히 계속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것은 계속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거기에는 의지와 같은 것도 조금은 관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 해도,
아무리 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오래 계속할 수는 없다.
설령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오히려 몸에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문학사상
시간은 늘 무심하게 흘러가지만
그 안에서 나는 나에게 어울리는 대로 몸을 움직이며 살아간다.
크게 의미 있는 일이 아니어도 괜찮다.
흰머리가 늘어가도, 몸이 조금씩 느려져도,
이렇게 나만의 방식으로 꾸준히 달리고 있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여간 멋진 일이 아닌가.
그리고,
나는 무라카미의 이 구절을 오래 품는다.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문학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