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지스할머니의 평범한 일상
우리 집 복도 벽면에는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 <마을 축제>가 걸려 있다.
이 그림은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붓질마다 깊게 스며든 시간의 향기가 느껴진다.
마치 오래된 연속극 같고, 추억의 앨범 같다.
빛바랜 원색의 색감 너머로 출연자들이 북적대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장면들이 하나씩 살아나서 축제가 시작된다. 이 마을은 축제 중이다.
빨강, 초록, 파랑, 노랑 등 다채로운 복장의 사람들이 작은 점처럼 그림 여기저기 모이고 흩어져 있다.
도로 위에는 축제를 보러 나온 사람들의 마차와 말들이 가득하다.
푸른 제복 차림의 마을경찰관들이 말과 마차 행렬을 교통정리하고 있다.
색색의 풍선을 한 아름 들고 걸어가는 남자가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말의 가격을 흥정하는 사람들, 초록색 양산 아래서 물건을 고르는 사람, 천막 안에 둘러앉아 식사를 나누는 사람들, 우유를 짜는 농부와 초지의 소떼들이 그 곁을 채운다.
마을의 건물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각자의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아이들은 주변을 맴돌며 장난을 치고, 멀리서 들려오는듯한 종소리는 축제의 흥겨움을 더한다.
이 모든 장면들은 멈춰 선 그림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삶의 파노라마 같다.
도대체 모지스 할머니는 어떤 사람이었길래, 평범한 일상을 이토록 빛나는 마법의 순간으로 바꿔놓을 수 있었던 걸까?
"나는 구석구석 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늘에서부터 산까지 다음은 언덕, 그다음은 집과 성, 그리고 사람들까지 그리죠."
- 아트메신저 이소영 지음,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홍익출판사.
에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즉 모지스 할머니는 75세라는 늦은 나이에 붓을 들어 101세 생을 마감할 때까지 무려 1,600여 점의 작품을 남긴 미국의 국민 화가였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은 평범함 속에 숨겨진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도록 우리를 이끄는 나침반이 되었다.
"월요일은 빨래하는 날,
화요일은 다림질과 수선,
수요일은 빵을 굽고 청소를 하고,
목요일은 바느질,
금요일은 정원일...
이런 일들은 우리 집에서도 이웃의 집에서도 반복되었어요."
- 아트메신저 이소영 지음,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삶이란 곧 이러한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고 연속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녀의 그림 속에는 대단한 서사 대신, 매일 해마다 반복되는 마을의 풍경, 축제, 아낙네들의 빨래하는 날과 동네 사람들의 퀼팅 모습, 메이플 시럽 만드는 날 등 지극히 평범한 삶의 조각들이 담긴다.
이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그저 지루하고 고단하다고 생각되던 일상들이 서서히 다른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다. 그저 기계적으로 흘려보내던 순간들이, 가치 있는 무언가로 반짝이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일상을 살펴보자.
아침을 시작으로 가족을 돌보고, 직장에서 가열차게 맡은 일을 한다. 퇴근 후에도 집에서는 또 다른 노동이 이어진다.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피로는 쌓이고, 어떤 사람에겐 번아웃이 찾아온다.
매일 같은 역할에 갇혀버린 듯한 루틴 속에서 문득 생각한다.
내 일상은 의미 있는 걸까, 가치 있는 일을 하기에 너무 늦어버리는 건 아닐까, 나의 시간은 그저 무채색으로 흘러가버리는 건 아닐까...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것이다.
모지스 할머니는 이러한 모든 고민과 망설임에 따스한 위로와 용기를 건네준다.
"사람들은 늘 내게 늦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사실 지금이야말로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에요.
진정으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이죠."
- 아트메신저 이소영 지음,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일흔다섯에 붓을 들고 백한 살까지 쉼 없이 그림을 그리며, 그녀는 이런 말도 건넨다.
"삶은 당신이 만드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아트메신저 이소영 지음,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모지스 할머니는 고된 노동의 삶 속에서도 사람들과 함께 한 추억들을 소중히 길어 올렸다.
느리지만 따뜻하고 낭만적이었던 그 시절의 사람들을 한 땀 한 땀 그림 속에 되살려 놓았다.
할머니의 그림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특별해지고, 우리의 평범한 삶이 소중해지는 순간이 내가 있는 바로 "지금 여기" 라는 따뜻한 격려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단순한 화가를 넘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길을 보여주는 멘토였다.
그녀는 국민 화가가 되었고, 그녀의 작품은 단순한 그림을 넘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그 자체가 되어 미국인들을 넘어 세상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 속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속삭임과 웃음소리에 일상의 고단함이 비로소 누그러진다. 일상의 노동이 더는 누추하거나 시간 도둑처럼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우리 삶의 의미를 채워주는 소중한 과정이 된다.
때로는 조급한 욕심을 밀어내고, 모지스 할머니처럼 그저 평범한 삶의 이야기 속에서 나답게 살아가는 힘을 만들어보자.
그녀의 그림 속 길과 나무, 마을회관과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그네들의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에 귀 기울이듯, 우리 자신의 소소한 일상에, 그리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작지만 따뜻한 울림에 마음을 기울여보자.
계절이 바뀌고 다시 돌아온다. 꽃이 피고 지고, 다시 피어나는 자연의 순리처럼. 우리 일상도 그러하다.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특별하지 않아도 가장 소중하고 빛나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