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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노희경 <디어 마이 프렌즈>,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by 뭉클

새벽녘에 갑자기 잠에서 깰 때가 있다.

방 안을 가르는 어둠과 고요함에 문득 곁에 남편을

찾는다.

어떤 날은 가볍게 어깨를 흔들어 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손가락을 코끝에 대보기도 한다.

잠결이지만 확인이 되면 역시 아무 일 아니다 하며 다시 잠이 든다.

나이가 들면서 어느 날부터인가 자연스레 새겨진 습관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는 경험으로 알게 된다.

누군가를 잃는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얇고 막연한 그림자처럼 마음속에 일렁이고 있음을.

노년에 가까워질수록 부부의 의미는 젊은 시절의 사랑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서운함을 견디고, 서로를 다독이고, 말로 설명되지 않는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누면서

시간과 함께 천천히 다른 이름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결국 나의 행동은 남편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이고, 내가 아직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마음이다.

내 마음의 진심이 가장 조용하게 닿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영원한 친구라고 부른다.

내가 흔들릴 때 말없이 어깨를 내어줄 사람,

내 두려움의 움푹한 자리를 비난 없이 들어주는 사람,

그리고 삶이 버거울 때 숨을 고르게 해주는 사람이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런 존재가 남편이나 아내가 아니더라도 한 명만 더 있다면 인생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서로의 가장 깊은 곳을 알아주는 친구가 곁에 있어, 함께 성숙해 가는 시간을 살아갈 수 있다면 노년의 고립쯤은 두렵지 않을 것이다.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다시 보았다.

노년을 떠올리면 흔히 떠오르는 단어는 고립이다.

드라마〈디어 마이 프렌즈〉는 바로 이 지점,

노년의 쓸쓸함과 고립감이 어떻게 사람을 슬프게 하는가를 감정의 필터 없이 보여준다.

나도 홀로 된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며, 고립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날카롭게 다가오는지 실감하고 있다.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고, 친구들은 하나둘 요양원으로 떠나고, 사회적 역할은 빠르게 줄어들 때 엄마가 느낄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집 안의 정적이 깊어질수록 더 무서운 것은 고독 자체가 아니라, 더 이상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감각인 것 같다.

〈디어 마이 프렌즈>의 희자(김혜자)가 겪는 고립감이 심장을 베듯 아픈 이유는 마치 내 엄마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나이가 때에 이르러 퇴직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시간의 공백이 아니라, 관계의 공백이었다.

직장이 제공하던 일상적 대화, 작은 농담들, 존재감을 올려주던 인정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이다.

러한 관계의 공백은 우울감과 무기력, 자기 기능 저하, 사회적 회피 등으로 이어진다.

고립감은 생각보다 훨씬 물리적이며, 그 영향은 삶 전체를 서서히 시들게 한다.

그뿐인가.

요즘 노인들은 젊은 가족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조용한 어른이 되도록 끊임없이 학습된다.

갑작스러운 방문을 삼가고, 연락을 줄이고, 잔소리하지 않고, 자녀의 육아나 집안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런 배려는 종종 말수를 줄이고, 부탁을 삼가고, 아픈 일조차 숨기게 만드는 침묵의 기술이 된다.
가까운 가족들의 삶에조차 짐이 되지 않으려 발을 뺄수록, 노인은 관계 밖으로 밀려나 고립되는 것이다.

결국 노년의 고독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부담 주지 않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는 가족과 사회적 압박이 만든 구조적 결과 같다.


드라마〈디어 마이 프렌즈>는 이러한 노년의 고립을 해결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 드라마가 건네는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다.

거창하거나 장엄하지도 않다.

그들은 서로의 집을 오가며 밥을 나눠 먹고, 자주 안부를 묻고, 사소한 것으로 다투고, 다시 화해하며, 병원에 함께 가고, 옛 추억을 공유하고, 별것 아닌 일에도 서로를 부른다.
결국 그들은 서로의 시간을 채워줌으로써 서로의 존재를 복원한다.

드라마를 통해 본 노년의 고립은 제도보다 더 필요한 것이 관계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그 관계는 결국 사람만이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드라마에서는 그런 관계를 친구, 디어 마이 프렌즈라고 부른다.

우리는 주변에서 다양한 관계의 유형을 본다.

좁고 깊게 사귀는 사람,

적지만 확실한 몇 명을 곁에 두는 타입. 신뢰의 밀도는 높지만, 관계망은 좁다.

넓고 가볍게 연결되는 사람,

다양한 사람들과 느슨하게 연결되며 고립을 자연스럽게 완화하는 타입이다.

필요할 때만 연결되는 사람,

친밀감은 적지만 기능적 관계로 유지되는 경우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유형의 사람이 좋은가가 아니다.

이 관계들을 들여다보고, 어떻게 가꾸어갈 것인가이다.

노년의 삶을 지탱하는 힘은 스스로 가꾸어가는 '디어 마이 프렌즈’ 다

드라마 속 인물들이 유독 부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눈만 돌리면 그들은 사방 여기저기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서로에게 '디어 마이 프렌즈'가 되는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집 <대성당> 중에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위로가 되는>이란 단편이 있다.

대략 줄거리는 이러하다.

생일케이크의 주인공인 아이가 생일날 교통사고로 죽었다.

빵집 주인은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가 사경을 헤매고 있던 사흘동안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빵집 주인은 계속 전화를 해댄다.

주문일에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는다고... 주문케이크는 취소할 수 없다고...

빵집주인의 냉정함에 오해를 품고 케이크를 찾으러 온 아이의 부모와 빵집 주인이 드디어 대면하는 장면이다.

" 내게는 아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 당신들의 심정에 대해서는 간신히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라오, 부디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빵집 안은 따뜻했다.
하워드는 탁자에서 일어나 외투를 벗었다. 그는 앤이 외투를 벗는 것을 도왔다.
빵집 주인은 그들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에서 일어났다.
그는 오븐으로 가더니 몇몇 스위치를 껐다. 그는 컵을 찾아 전기 커피 메이커에서 커피를 따랐다, 그는 크림이 든 종이곽을 탁자 위에 놓았고, 설탕 종지도 가져왔다.
"아마 제대로 드신 것도 없겠죠."
빵집 주인이 말했다.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그가 말했다.
......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오. 더 있소. 다 드시오, 먹고 싶은 만큼 드시오,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 여기에 있으니."
그들은 롤빵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앤은 갑자기 허기를 느꼈는데, 그 롤빵은 따뜻하고 달콤했다. 그녀는 롤빵을 세 개나 먹어 빵집 주인을 기쁘게 했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경 써서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지치고 비통했으나 빵집 주인이 하고 싶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빵집 주인이 외로움에 대해서, 중년을 지나면서 자신에게 찾아온 의심과 한계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들에게 그런 시작을 아이 없이 보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말했다. 매일 오븐을 가득 채웠다가 다시 비워내는 일을 반복하면서 보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중에서, pp. 126~128에서 발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바로 이런 따뜻한 빵냄새 나는 위로의 관계이다.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늙은 친구들처럼,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외로운 그들처럼,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행동들에서 서로에게 '디어 마이 프렌즈'가 되어 주는 것이다.

"건강과 안부를 묻는 문자 한 번,
밥 한 끼를 함께 먹는 일,
오래된 사진을 꺼내 웃는 시간,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대화를 나누는 저녁,
당신 옆에 앉아 밥은 먹었어? 하고 물어주는 사람..."

이런 사소한 움직임들이 관계와 우정의 끈을 조용히 이어 줄 것이다.

늙는다는 건 외로워지는 게 아니라, 마침내 사람의 소중함을 제대로 배우는 시간이다.

우리의 디어 마이 프렌즈는 남편일 수도 있고, 내 동료일 수도 있고 오랜 고향, 학교 친구일 수도 있을 그들이다. 그들을 만나고, 지키고,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부터 연습해야 한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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