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찹쌀떡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어렸을 때 기억만으로 마음까지 쫀득할 수 있다. 피부가 하얗다 못해 시꺼먼 속살마저 내비치던 찹쌀떡. 나는 당시 유별나게 깔끔 떨던 성격이었음에도 떡에 발린 하얀 가루 묻히는 건 예외였다. 엄마는 내가 찹쌀떡만 주면 울음도 멈추고 악착같이 먹었다고 한다. 사실 내가 언제부터 좋아하게 된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먹다 보니 이 떡 괜찮네 같은 깨우침의 과정은 없었으니까. 마치 처음부터 각인된 본능처럼 그에게 끌렸다. 곤충 음식은 질색팔색 하면서도 번데기는 국물까지 빨아먹는 것과 비슷한 이치가 아닐까. 아주 오래전부터 접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던 세 살 버릇과도 같은 식성이었다.
내가 기껏해야 5살이나 6살쯤 되었을 때다. 엄마는 저녁을 차려주시고는 요란하게 설거지까지 마쳤다. 그리고는 오늘도 잠들기 위한 루틴 마냥 흔들의자에 앉았다. 거실 이곳저곳을 느긋한 끄덕임으로 채우고 있었고 나는 발을 까닥이며 거실 카펫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흔들의자가 조명에 비춰 만들어낸 그림자 박자에 맞춰 동요를 흥얼거렸다. 너무 일상적이다 못해 행복하기까지 한 저녁시간. 슬그머니 내려앉은 어둠 때문에 유리창이 거울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엄마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의자를 잠시 멈췄다가 다시 흔들기를 반복했다. 마치 침묵을 몰아낼 준비를 하는 사람처럼 입술에 침을 발랐다.
“아, 찹쌀떡 먹고 싶네”
“엄마 나도 먹고 싶어”
“옛날에 니 가졌을 때 찹쌀떡이 그래 묵고 싶더라”
“여기는 그 압살떡 아저씨가 없네”
“응? 압살떡이 먼데?”
엄마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쿡쿡 웃었다. 잠시 목을 가다듬으시더니 그 떡장수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압~~ 살~~ 떠~~ 억!!”
엄마 입에서 웬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시작은 느슨했지만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고 결말은 야무지게 닫히는 그런 소리였다. 사투리 같으면서도 그 뜻을 알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나는 큰 목소리에 놀라 눈이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아파트에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큰소리였다. – 엄마 목소리 중 저때보다 더 컸던 기억은 아직 없다 – 변조된 목소리가 신기했고, ‘찹쌀’이 ‘압살’로 변하는 순간이 재미있었다. 엄마한테 다가가 다시 해보라며 졸라 댔다. 엄마는 자신도 큰 목소리에 놀랐는지 창가에서 떨어지며 입에다 검지를 가져다 댔다.
잠시간 정적이 흘렀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는 슬그머니 다시 흔들의자에 앉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서 압살떡의 옛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대단한 비밀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처럼 소곤대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의 이야기는 저기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한 떡장수의 메아리로부터 시작한다.
단칸방 살던 시절, 좁은 골목 덕에 옆집 저녁상 숟가락 얻던 소리까지 들리던 때가 있었다.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싸구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나지막한 노랫가락이 골목을 매웠다. 찹쌀떡 장수의 존재를 그때 처음 들었다 한다. 분명 외침이었지만 조용히 메아리치는 음성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 그때는 세탁이나 계란, 두부 등을 외치며 파는 사람이 많았다 – 시간이 지날수록 외침은 가까워졌고 조금 기괴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그 떡장수가 자전거 타며 헐떡이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의 거리가 되자 압살떡의 진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압~~ 살~~ 떠~~ 억!!”
“여보 방금 들었나?”
“어 들었지, 압살떡이 모고?”
“얄궂네, 여기 이 동네는 압살떡이란 걸 파는갑다"
처음에는 웃지 않았다. 지역특산품 중에 압살떡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서로는 눈치를 보며 그런 건 없다는 것을 확신 후 웃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그 떡장수가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았던지 숨죽이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꺽꺽 참으며 웃고 있었다. 엄마는 잠시동안 웃음기를 거두더니 아빠를 문 밖으로 밀어냈다.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려는 사람처럼 압살떡에 갈증을 눈빛에 담아 보냈다. 아빠는 슬리퍼 차림으로 압살떡의 움직이는 자전거를 쫓았고, 떡을 맛본 엄마는 그때부터 임신 중 당기는 음식으로 찹쌀떡을 추가하게 되었다. 단칸방에 살면서도 그때는 찹쌀떡 하나로도 그렇게 행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엄마는 흔들의자를 멈추더니 예리한 추측을 이어갔다. 그 떡장수는 ‘찹쌀떡’이라는 말을 가장 적은 힘으로 가장 크게 내야 하는데 거센소리(격음)가 있어 발음을 뭉갰을 것이라는 게 엄마의 주장이었다. 온 동네를 찹쌀떡으로 수놓으며, 퇴적풍화작용을 정면으로 받아낸 혓바닥이 압살떡이 되고 만 것이다. 그때는 어려서 무슨 말인지 도통 몰랐지만, 엄마가 웃는 탓에 덩달아 웃기는 했다. 엄마는 이야기를 한다기보다는 혼자 추억을 감상하기 위한 방편으로 나를 곁에 두는 것 같기도 했다. 다섯 살배기를 앉혀놓고 할 말은 아닌 것 같았으니까. 지금도 내가 그때의 말과 상황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아마 포근함과 행복한 기운이 최대치로 올라간 덕분에 내 기억 속 책갈피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 그때부터가 아닐까? 나는 엄마의 뱃속에서 압살떡이란 외침을 듣고 웃고 있었으며, 이어 쫀득하면서도 달달한 팥앙금 덕분에 극락을 오가지 않았을까. 마치 내가 좋아하니 엄마가 좋아했거나 그 반대의 경우처럼 말이다. 엄마 말로는 내가 태어나서 갓난쟁이 때 여기 아파트로 이사 왔다고 한다. 나에게 주택에 살던 기억은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파트로 이사 오고 나서 찹쌀떡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맛깔나게 씹어 삼키던 모습을 보며 신기해했다고 한다. 예전부터 즐겨 먹던 사람처럼 말이다. 어쩌면 달콤 쫀득한 찹쌀떡을 외면할 아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떡을 먹는 상상만으로 당시 엄마의 냄새와 포근함에 묻어 날 수 있다는 기분은 흔치 않을 것이다.
엄마 뱃속에서의 기억, 너무 어렸을 때의 기억은 생각나지 않는다. 언제부터가 내 기억의 시작점인지 또한 떠올리기 어렵다. 정말 집중해서 기억해 봤자 4살 후반이 전부인 것 같다. 그렇지만 갓난쟁이 때 기억과 기분은 분명 어딘가 있을 것이다. 내 몸 어딘가 구석구석에 우리가 해석할 수 없는 옹알이로 쓰여 있을 것만 같다. 언젠가를 위해 영원히 간질 할 수 있을 추억을 위한 것처럼. 어쩌면 언젠가 벌어질 일에 대한 타입캡슐이 아닐까. 누가 그러더라 엄마와 같이 살던 때가 더 이상 현실에서 감각할 수 없을 때가 되면, 서서히 가슴속에 발현되는 아련함 때문에 살 수 있다고. 아직 겪어보지 못했지만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한 통증이 아른거리기도 한다.
그때가 되면 어딘가 저장된 이 감각이 가슴속 액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한입 크게 베어 먹으면 과거의 포근함이 온몸을 감싸며 나를 위로하는 것처럼 말이다. 엄마의 추억과 추측이 적당히 배합된 독백을 떠올리고 있자니 그 압살떡의 외침이 어디선가 들려올 것 같기도 하다.